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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Feb 02. 2024

제주4·3과 대동청년단

2020년 5월 14일 한라일보 <김양훈의 한라시론>

4·3 발발에서부터 반세기 넘게 침묵의 강요와 자료의 파기, 
그리고 사실 왜곡이 이어졌다. 시간은 진실의 적이다.

제주의 오월은 아름답다. 바람 부는 날, 출렁이는 보리밭 푸른 물결을 제대로 표현할라치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말고 또 있을까! 그러나 1948년 제주의 봄은 슬프게도 피바람의 시작이었다. 김달삼 무장대 사령관과 김익렬 제9연대장이 어렵사리 맺은 4·28평화협상이 사흘만인 5월 1일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대동청년단이 저지른 ‘오라리 방화사건’은 평화협상을 방해하기 위한 파괴공작이었는데, 미군정의 작전명은 ‘메이데이’였다. 김익렬 연대장은 방화 주동자인 오라리 연미마을 출신 대동청년단원 박 아무개를 검거해 9연대 영창에 집어넣었다. 그는 김익렬 연대장이 해임된 후 신임 박진경 연대장에 의해 풀려나 경찰관이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장병들의 불만을 샀고, 박진경 대령이 부하들에게 암살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김익렬 후임으로 부임한 박진경 연대장(맨 오른쪽)은 1948년 6월 18일 새벽에 부하들에게 암살당한다.

제주의 대동청년단과 서북청년단은 제주4·3 초기 토벌대의 일원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우익단체였다. 대동청년단은 제주 토박이 우익청년 조직인 반면, 서북청년단은 영락교회 청년부 중심의 이북출신만으로 조직된 극우반공 단체였다. 서북청년단이 저지른 엽기적 만행은 증언이 많은 데 비해 토착 단체인 대동청년단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조사와 연구가 미약한 편이다.    

  

해방공간의 제주에는 광복청년회와 독립촉성청년연맹 지부가 있었다. 이 두 우익단체가 대동청년단 제주지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헤게모니 싸움으로 심한 갈등을 빚었다. 이 갈등은 미군정 방첩대가 개입하여 김인선을 단장으로 하는 조직으로 통합되었다.     


대동청년단 제주조직은 읍면 단위 각 지역으로 확산이 되었고, 4·3이 발발하면서 단원들은 경찰지서에서 철야 근무를 하는 등 ‘경찰보조단체’로 활약하게 된다. 지난 4월 총선 기간, 여당 후보자 부친의 대동청년단 표선면 총책 이력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논란은 대동청년단의 토벌 활동을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지만, 선거가 끝나고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어느 후보 쪽이든 증거 자료가 부족했다. 

제주4·3 발생 초기 평화협상을 벌였던 김익렬 연대장(좌)과 김달삼 무장대 사령관(우)

김익렬 연대장은 생전에 남긴 실록 유고에서 제주4·3의 자료가 미비하고 부정확한 이유를 세 가지 들었다. ①사료를 정확히 기록해야 할 관리들이 4·3사건의 발생원인과 진상이 사실 그대로 보도되면 자신들의 과오나 죄상이 역사에 영원히 남을까 두려워한 것 ②당시의 사건책임자들이 이후 정부의 고관 또는 정치적 지도자로서 상당한 기간 세력을 가졌던 것 ③제주 지식인들이 무능하고 무기력해서 진상을 세세히 알면서도 후환이 두려워서 보신을 위해 덮어둔 것.      


4·3 발발에서부터 반세기 넘게 침묵의 강요와 자료의 파기, 그리고 사실 왜곡이 이어졌다. 시간은 진실의 적이다. 늦었지만 제주4·3 과정에서 대동청년단이 벌인 토벌활동에 대하여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진실을 위한 추적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공평한 응보를 위한 정의로운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그것을 구하고 기억하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 

     

인간의 과거 평판만으로 역사적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국가 명령에 순응하는 모범적 시민도 역사 속 악행을 저지른다고 주장했다. 

1949년 군과 경찰의 선무공작에 의해 산속에 숨어 있다 하산한 제주도민들, 이들 중 상당수가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했다.

제주시 일도1동 소재 서북청년회 본부 옛터
폐허가 된 옛 성산포 서북청년단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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