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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Mar 30. 2024

밀항(密航)①

제주에서 밀항이란 낱말은 슬프고 아프다. 제주4․3항쟁 전후에 군경의 검거 광풍을 피하려고 일본으로 도망쳐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는 돈을 벌기 위해 바다를 몰래 건너야 했다. 목적지는 일본이었다. 내 고향 마을 구엄리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구엄집 마당-고모부, 아버지, 어머니, 숙부

1947년 3•1절시위 사건 이후로 좌익 진영에게 우익마을 1호로 낙인 찍힌 구엄리는 4•3사건 첫날인 1948년 4월 3일 미명에 오름마다에 봉기를 알리는 봉화가 오르자마자 무장대의 습격을 받았다. 우익 반동으로 찍힌 사람들의 집은 불타고 가족들도 목숨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인물 몇은 육지로 튀거나 일본으로 밀항을 하였다.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반공이 강화되었다. 도피한 인물들의 집이나 가까운 인척들은 감시받는 기분으로 살아야 했다. 연좌제는 촘촘했고 철저했다. 일본에 가서 높은 직에 있는 조총련계 친척을 만나고 온 사람들이 어디론가 잡혀가서 며칠씩 조사를 받고 험한 꼴이 되기도 했다. 침묵의 서약 때문인지 그들은 풀려나서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흉흉한 소문은 바다 안개처럼 마을에 조용히 퍼져 나갔다.   

  

섬나라는 4․3사건과 이어 터진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한층 살기가 팍팍했다. 관광이란 말도 없던 때였다. 주식은 보리밥이었고, 방귀 좀 뀐다 하는 집이면 몇 줌 곤쌀을 뿌려 섞는 반지기 정도였다. 귤 농사가 없던 산북(山北) 해변 시골 동네 구엄리는 날이 갈수록 어려움이 더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섬사람들에겐 육지보다 일본이 오히려 돈을 벌기엔 더 쉬운 곳이었다. 1930년대 이전에는 섬나라 사람의 4분의 1가량이 일본을 오고 갔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면서 오사카 취업을 위한 일본입국이 막혀버렸다. 해방 이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경제호황이었던 일본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몰래 숨어들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제주 해안에서 직접 배를 타고 일본밀항을 감행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부산 근해에서 출발하였다. 섬사람들은 제주해협을 건너 먼저 부산으로 간 다음 밀항조직이 운행하는 선박에 몸을 맡긴 채 현해탄을 건넜다.      


밀항은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야밤에 접선해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산에서 영도는 제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제2의 제주였다. ‘영도에서 번 사람은 육지를 나가면 망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제주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말이 떠돌게 된 것은 영도가 제주 사람들의 울타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의 밀항을 돕는 조직도 영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일본 해안에서 접선이 되면 사람들은 오사카의 '작은 제주도'라 일컫는 이쿠노쿠(生野區)와 쓰루하시(鶴橋) 등지에 사는 친척 집이나 지인의 거처로 숨어들었다. 이쿠노쿠는 제주에서 밀항한 대부분의 이민 1세가 모여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는 밀항자가 몰래 취업할 수 있는 샌들공장, 고무공장, 유리공장, 금속하청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폐지와 고철줍기, 밀주(密酒)도 주요 직업이었다.  

    

4․3사건 와중에 한반도 육지로 몸을 피했던 아버지는 세상이 조용해지자 귀향을 해서 곧 입대했다. 군대 입대는 이념세탁이기도 했다. 만기제대를 하고 시골 면서기도 잠시 했지만 그만두었다. 이후 농사도 지어보고 구판장도 하면서 노력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식들을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해였다. 1967년 이른 봄 3월에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마을을 떠나 부산으로 건너갔다. 동네 다른 두 남자도 함께였다. 그렇게 아버지는 밀항자가 되었다.

일본 고모부와 신사 앞에서
일본 부부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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