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의 진심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화가 그 창작의 산실을 찾아서」p37-38

by 김양훈

4월의 어느 날 반 고흐는 근처 마르카스 탄광을 방문했다. 그는 이곳에 대해 “거무칙칙한 곳이다. 처음 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음울하고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기운을 풍긴다”라고 묘사했다. “연기로 완전히 검어진 죽은 나무 두세 그루, 가시나무 울타리, 배설물과 쓰레기 더미, 쓸모없는 석탄”과 함께 가난한 광부들이 그 옆 공터에 모여 있었다. 그는 광부들이 “지치고 초췌해 보이며 햇볕에 그을려 겉늙어 보이고, 여성들은 안색이 누렇고 여위었다”라고 전했다.

눈 속의 광부들

한 광부가 반 고흐를 “동물의 우리나, 우물 양동이 같아 보이는 바구니”에 태워 700m 아래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반 고흐는 끔찍한 6시간을 보냈다. 남성들은 땅 아래 벌집 모양의 굴착 구멍 안에서 힘겹게 일했다. “구멍마다 성긴 린넨 옷차림을 한 노동자 한 사람씩 들어있다. 굴뚝 청소부처럼 거무튀튀하고 때 묻은 그들은 작은 전등이 비추는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석탄을 파내고 있다. 광부가 똑바로 서 있는 구멍도 있지만 어떤 구멍에서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

눈 속에서 석탄 부대를 나르는 여성들

반 고흐는 이일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전도사직은 6개월의 수습 기간 뒤에 끝나고 말았다.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고, 자신보다 더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누더기 같은 옷가지만 챙기고는 나머지 옷과 소유물 중 많은 것들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특이한 성향과 이로 인한 광부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아 하느님을 경배하라는 자신의 요청에 대한 광부들의 반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일자리를 잃긴 했지만 반 고흐는 보리나주에서 독자적으로 전도사 생활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1879년 8월 그는 바스메스에서 쿠에스메스로 옮겼다. 이곳은 몽스 외곽의 인근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탄광 감독관이자 전도사인 에두아르 프랑크(Eduard Francq)의 작은 집에 머물렀다. 당시 반 고흐의 정신 상태는 최악이었다.

매튜 리들리, 사람들의 머리-광부

-마틴 베일리 著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화가 그 창작의 산실을 찾아서」 p37-38(광부들과 함께 하는 전도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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