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삶은 온갖 모순과 의혹으로 가득 차 있다. 톨스토이에 관한 역설은 셀 수 없이 많다. 단적인 예로, 러시아 작가 중에서 가장 러시아적 특성을 지닌 그는 사실 러시아 작가들이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 작가들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았다. 기독교에 관한 그의 해석도 러시아 정교보다는 미국의 퀘이커교도나 프랑스의 이성주의자들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항상 진정한 러시아 농부의 목소리로 발언하고 있다고 믿었다. 많은 사람이 톨스토이의 후기 활동들―예를 들어 정치적 무정부주의자에 대한 옹호, 셰익스피어에 대한 비난―때문에 적대감을 가지고 그에게 등을 돌렸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의 후기 작품들에 나타난 기독교적 순박성에 매료되었다가, 그의 삶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이 위대한 평화의 사도가 사실은 아마도결혼의 역사에서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증오가 가득 찬 가정적 불화 속에서 생활했다는 것을 알고는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모순과 역설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의 장엄한 위상은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수많은 초상화를 우리에게 남겨준 레핀이라는 러시아 화가가 있다. 캔버스에 그린 초상화만큼이나 많은 양의 산문을 통해서, 그는 톨스토이에 관한 잊을 수 없는 모습을 형상화해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는 톨스토이가 뿜어내는 거대한 도덕적 위상과 사람을 취하게 하는 영혼의 기운에 관해 서술했다.
“그와 대화를 나눈 후 하루나 이틀이 지나고 나서, 독립적인 판단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거나, 그와 대화를 나누던 그 당시에는 반박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보면 그의 생각 중의 어떤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일에도 불구하고, 레핀이 간직한 톨스토이의 모습은 거인다운 풍모였다. 한번은 그의 집 근처 숲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레핀은 문득 그의 그런 거인다운 풍모를 선명한 광경으로 보았다. 마치 “에스겔이 본 라파엘의 하느님처럼, 여러 갈래의 턱수염과 아주 온화하면서도 용사와도 같은 민첩함을 가진 모습이기도 했다가, 숲 사이를 날쌔게 휘젓다가 잠시 손으로 가만히 가지를 옆으로 제치고 있는 체르게스 사람의 모습이기도 했다.”
진정 화가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민첩함이 아니라, 오히려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생동감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런 거인을 대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경외감이었다.
-앤드류 노먼 윌슨 지음·이상룡 옮김
<삶의 숭고한 의미를 향해 가는 구도자 『톨스토이』> (서문) p19~20
Tolstoy by Ilya Repin 1916, oil on linoleum; 115.5 by 8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