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말하면 표트르 대제까지도 러시아에는 ‘문명’이 없었어요. 표트르의 사절단이 유럽을 일주하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다 쑥대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밤마다 먹고 마시며 광란의 밤을 보낸 거죠. 황실이 그 정도였어요. 게다가 몽골의 침입과 지배 때문에 러시아는 르네상스를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유럽 사회와는 다른 길로 빠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 러시아가 사생아다, 고아다, 라는 주장이 나온 거지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죠. 황제 니콜라이 1세는 화가 나서 차다예프를 정신병자로 몰아버립니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자니 사상범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데 그건 용납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정신감정을 하고 자택에 연금합니다. 1년 후에 차다예프가 「광인의 변명」 이라는 글을 발표합니다. 자신이 러시아를 고아라고 한 것은 욕보이려고 한 게 아니라 좋은 뜻인데, 우리는 유럽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후발주자의 이점이 있다. 유럽은 앞서가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게 되지만, 러시아는 뒤따라가기 때문에 시행착오 없이 앞서갈 수 있다는 요지로 얘기합니다.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이 러시아가 고아 상태를 벗어나는 첫걸음이었고, 이를 계승해야 한다는 게 차다예프의 핵심 주장이었는데, 이는 곧바로 찬반양론을 불러오게 됩니다.
차다예프의 주장에 찬성하는 쪽은 앞서가는 유럽을 늦게라도 뒤따라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러시아는 유럽과는 다른 독자적인 전통이 있다, 러시아의 길은 유럽의 길과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을 각각 서구파와 슬라브파, 이렇게 부릅니다.
자연스럽게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183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서구파와 슬라브파로 나뉘게 됩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 러시아를 사랑합니다. 다만 러시아를 어떻게 보느냐로 나뉠 뿐이죠. 서구파는 러시아를 ‘아이’로 봅니다. 잘 돌보고 훈육해야 하는 아이로 보는 거죠. 이때 서구파에 중요한 건 미래입니다. 우리가 러시아를 미래에 어떤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유럽을 모델로 하자는 거죠. 반면 슬라브파는 러시아를 ‘어머니’로 봅니다. 중요한 건 러시아의 과거이고 전통입니다. 유럽 문명은 오염되고 타락했지만, 러시아는 아직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독자적 가치를 보존해나가야 한다는 게 슬라브파의 주장입니다.
작가들도 견해가 나뉩니다. 고골은 나중에 대단한 보수주의자가 되는 데, 슬라브파를 지지합니다. 러시아는 유럽과 길이 다르다고 보는 쪽입니다. 반면 투르게네프는 대표적인 서구파입니다. 투르게네프는 귀족 출신으로, 서구적 교양이 물씬 풍기는 유학파에다 명예박사 학위도 갖고 있던 작가입니다. 한마디로 가방끈이 긴 작가죠. 참고로 도스토예프스키는 골수 슬라브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