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스 도시히코 지음 『러시아적 인간』 p286~288
톨스토이는 굳이 말하자면
울창한 태곳적 원시림이다
톨스토이의 세계에 한발 다가가면 우리는 금세 원시적 생명에 둘러싸인다. 숨 쉬는 것도 괴로울 정도로 그곳은 생명의 야성이 넘치는 풍요가 지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톨스토이적 인간의 근간에는 정말로 원초적, 원시적인 생명의 수액과 같은 끈적함이 있다.
문화나 문명이라는 건 무릇 그 어떤 인위에 의해서도 더럽혀지지 않는 무구한 원초성이다. 이러한 원초적 생명의 풋풋함에 있어 러시아 문학, 아니 세계문학에 있어서도 톨스토이와 당당하게 어깨를 겨를만 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1850년대 초 <유년시대>를 통해(‘유년시대’가 네크라소프가 주재한 잡지인 <현대인>에 게재된 것은 1852년으로 작가의 나이 24세였다) 문단에 데뷔한 후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적 입장은 계속 변했고 그는 여러 차례 놀라운 ‘전향’을 했는데, 이 차고 넘칠 듯한 싱싱한 생명력은 마지막까지 조금의 스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1870년대 후반 그 기이한 ‘도덕적·종교적’ 환생을 마친 그는, 물론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적어졌으나, 그런데도 몸속에서 흘러넘치는 생명력은 의지와 상관없이 여전히 그의 붓끝에 종종 묻어 나왔다. 이성에 의해 충분히 제어 가능한 문학에서조차 그러하니 이성을 벗어난 육체적 생활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노년의 중후한 삶을 시작하며 나쁘게 말하면 점차 노쇠해지지만, 톨스토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젊어졌다. 그와 노년기를 함께했던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이 노인의 불가사의한 젊음, 기이한 생명력에 대해 증언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밭에서 일하기도 하고 온종일 테니스를 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체조나 놀이, 달리기, 스케이트, 30노리(노리는 1.077m)에 달하는 거리의 자전거 여행에 도전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자신도 신이 나서 가벼워진 몸으로 방안을 뛰어다니는 이 노인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넘치는 건강과 충실한 삶, 쾌락에 대한 끝없는 욕망, 그의 팔다리에 있는 근육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마치 청년처럼 강인하고 부드러웠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지만, 이뿐 아니라 그의 가슴속에도 영원한 청춘, 순진하고 원시적인 환희의 원천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즈스 도시히코(井筒俊彦) 지음 『러시아적 인간』 p286~288
이즈스 도시히코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등 30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언어 천재’라 불린 언어학자다. 그리스 철학, 스콜라 철학, 러시아 문학, 언어학, 이슬람학, 힌두교, 불교, 도교, 노장사상, 주자학 등 여러 분야에서 강의 및 저술활동을 하며 동서양 모든 철학을 횡단 연구하는 통섭의 철학자로 잘 알려졌으며,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게이오대학, 캐나다 맥길대학, 이란 왕립철학아카데미 교수를 지냈고, 스위스 에라노스 회의에서 노장사상과 선·유교 등 동양철학을 강연했다.
1949년부터 시작한 연속 강의 ‘언어학 개론’을 바탕으로 영어권에서 1956년 『언어와 주술』을 출간했고, 이 책으로 로만 야콥슨의 추천을 받아 록펠러재단 펠로로서 중근동과 유럽, 미국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1959년 코란의 윤리적 용어 구조를 밝힌 『의미의 구조』를 영미권에서 펴냈고, 일본에서 처음으로 『코란』 원전을 완역해 출간했다. 『코란에서의 신과 인간』 『이슬람 신학에서의 믿음의 구조』 『수피즘과 노장사상』 등 대부분의 저작이 영어로 발표돼 일본뿐 아니라 영미권과 유럽에서도 세계적 석학으로 평가받았다.
귀국해 독자적인 철학을 일본어로 저술하기 시작했고, 『의식과 본질』 『의미의 깊이』 『코스모스와 안티코스모스』 『초월의 언어』 등이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신비철학』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상·게이오대 기주쿠상을, 『이슬람 문화』로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의식과 본질』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외에 아사히상과 팔레비 국제상을 받았다.
에라노스 회의 회원이자 일본학사원 회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