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아픈 역사를 마주하다

한경희-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中

by 김양훈
다음 날 어머니와
갓난아이였던 막냇동생이
흰 눈 위에 선명한 핏자국을 남기고
죽은 채 누워 있었어
(…)

나와 박부자 님과의 인연은 2019년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에서 진행한 ‘재경 제주4·3 생존 희생자 및 유족 증언 조사’ 사업의 보조 연구원으로 참여하며 시작되었다. 김애자 선배님과 한 팀이 되어 박부자 님을 만나게 되었고 4·3 때 헤어진 그리운 아버지의 사연과 그 이후 휘몰아친 집안의 몰락 사정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끌려나가신 이후에도 어딘가에서 살아 계실 거라 믿었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0여 년 넘게 굿을 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장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에는 아버지가 나가신 날을 기준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아버지의 몸이 바다 생선들에 물어 뜯겼을 거라는 생각에 생선류는 일절 제사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저릿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뒤로도 박부자 님과는 간간이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았고, 2021년에도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에서 진행한 ‘도외4·3 생존 희생자 및 유족 실태 조사’를 위해 그해 늦여름 다시 댁으로 방문했다. 몹시 무더운 날이었는데, 먼 길 와 줘서 고맙다며 알이 크고 싱싱한 포도를 접시에 내놓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설문지 작성이 끝난 뒤에는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댁 근처 중랑천 주변을 같이 거닐며 더위를 식혔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유족청년회에서 주관하는 유족의 날 등의 행사에서 자주 만났는데 유독 반가운 분이었다.


나의 4·3 활동은 2018년 9월 이후 유족청년회가 서울 제주도민회청년회와 본격적으로 연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유족청년회 사무국장 현승은과는 유난히 공감하는 부분이 컸고 4·3 관련 행사 때면 유족 어르신이나 그 외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시는 한 분 한 분을 성심을 다해 맞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었다.


제주4·3을 내 마음의 중심에 들인 이후 지난 5년 동안은 고향인 제주의 아픈 역사를 모르고 보낸 시간이 몹시 부끄러우면서도 한편 더 늦기 전에 알게 된 것도 다행이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몸으로도 열심히 뛴 기간이었다. 책이나 뉴스 또는 팟케스트나 유튜브를 통해서 제주4·3이 눈에 띄면 뭐든 뒤적거렸고 들었고 보았고 가능하면 행사 현장에도 많이 참여하려고 했다.


4·3이 나의 일상과 아주 가까워진 어느 날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선생님이 4·3사건(당시는 그렇게 불렀다)에 관한 글짓기 숙제를 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4·3사건에 대해서 아는 내용이 전혀 없었고 숙제는 해야 했기에 좌식 책상에 아버지랑 나란히 앉아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원고지에 적었었다.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일어난 사건으로 폭도들이…”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편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관점으로 4·3을 이해하는 것 같다. 엄마가 4·3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응원도 해 주고 제주도로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동백꽃 기념품을 사 들고 와 친구들에게 선물도 하고 가방에도 걸고 다닌다.


몇 년 전부터 미술 심리 상담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미술 심리상담이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내재한 슬픔이나 억압된 분노 등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거나 자기 검열로 인해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때 언어보다는 저항이 덜한 그림으로 접근해 무의식 속의 나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공부하면서 구술 채록을 위해 만났던 박부자 님을 비롯한 여러 유족 어르신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골목마다 온통 눈이 새하얗게 쌓이고 휘영청 보름달이 환하던 무자년 겨울밤, 불에 타는 마을을 뒤로하고 누나 손 잡고 막냇동생을 업은 어머니를 뒤따라 가다 결국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다음 날 어머니와 갓난아이였던 막냇동생이 흰 눈 위에 선명한 핏자국을 남기고 죽은 채 누워 있었어”라고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팔십 넘은 어르신은 무자년 겨울 여섯 살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자신을 “빨갱이 자식”이라고 적대시하는 동네 어른들의 표정을 보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 표정이 떠올라 반항심이 극에 달했고, 오랫동안 방황하며 중고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옮기며 겨우 졸업했다고 고백하시던 한 유족의 스산한 표정도 잊을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그간 인연이 되었던 유족 어르신들과 그림으로 만나 70년 넘게 꾹꾹 눌러 온 감정들을 마주하고 마음껏 드러내어 표현할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 그 억압된 감정에서 자유로워야 남은 삶 동안이라도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 (한경희의 ‘아픈 역사를 마주하다’) 中 발췌

*한경희는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났다. 서울에 터를 잡아 35년째 살고 있다. 4.3이 연결고리가 돼서 고향 제주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있으며, 4.3문학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 4.3문학회 총무를 맡고 있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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