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속솜허라”가 남긴 것들

양영심-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中

by 김양훈
속솜허라¹⁾

1948년 5월 1일, 미군정이 촬영한 오라리 방화사건(May Day in Chejudo) 연미문화마을 제공

몇 번쯤이나 들었을까. “오라리²⁾ 쪽 하늘이 막 벌겅허게 큰불이 난 거라. 집집마다 불울 질렀젠. 굉장허였주.” 집집마다 불을 질렀젠. 굉장허였주,“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김을 매거나 비가 와서 바느질을 할 때면 듣던 레퍼토리다. 어머니가 친정인 오도롱³⁾ 마을에 갔다가 목격하게 된 오라리 방화사건에 대한 증언인 셈이다. 호기심이라도 발동하여 좀 더 들어 볼라차면 어머니는 갑자기 긴장하시며 ”속솜허라, 속솜허여사 산다.“ 하며 스스로 다짐을 두듯이 침묵하셨다. ”속솜허라“는 말은 어머니에게서 들어본 나의 기억 속 제주4·3 관련 낱말 조각 하나이다. 오도롱도 많은 피해를 당한 마을이다. 해방 후 일본에서 들어온 가난한 아버지에게서는 삼국지나 수호지 이야기 외에는 별말씀을 들어보지 못했다. 무심결에 토하듯 터져 나오는 어머니의 한숨은 우리 작은이모의 삶 속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4·3 당시 제주도 미군 사령관 브라운 대령의 제주도 입도 일성은 ”원인에는 흥미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었다. 이 엄청난 발언은 대량학살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은 제주를 방문하여 ”온 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 버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결과 너무도 참혹하여 수많은 인명의 희생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여전히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사과조차 않고 있다. 가해자인 미국과 이승만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야 평화 통일로 가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빨갱이’라는 적대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화해와 상생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제주도민 모두가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국민과 세계에 널리 알려져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근래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와 이승만 동상 건립 움직임 등 정권이 역사를 바꾸어 놓으려 하고 있다. 심지어 제주에서조차 서북청년단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출몰한다 하니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투적인 구호처럼 들리던 ”역사가 바로 서야 미래가 있다“는 말이 새삼 뼛속 깊이 사무쳐 오는 시간이다.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4·3의 과제는 유족들이나 소수 시민의 활동에만 맡길 수 없다. 오늘 내가 현기영의 소설 『제주도우다』를 읽는 이유이다.


-특별기획 「제주4·3과 나」 (양영심의 <“속솜허라”가 남긴 것들>) 中 발췌

*양영심은 1952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광화문에서 열린 4.3 70주년 추모제에 참가하여 4.3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서울에서 중등 교장으로 은퇴하였다.

[옮긴이 註]

1) 속솜허라: 조용히 하라. 입 다물라.

2) ‘오라리 방화사건’은 4·28 평화협상 타결 사흘만인 5월 1일 벌어지는데, 이 사건은 평화협상이 파기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사건은 제주읍 중심에서 약 2㎞가량 떨어진 오라리(吾羅里) 연미마을에 토벌대 군경과 우익청년단원들이 대낮에 들이닥쳐 10여 채의 민가를 태우면서 시작됐다.

3) '오도롱 마을'은 제주시 이호2동에 속하는 마을 이름이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MBC]

https://youtu.be/m7OdNgkpOvQ?si=tQZTDFkJ-2yq2cX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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