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귀한 인연

김권혜-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제주4·3과 나」中

by 김양훈


제주4·3항쟁은
대한민국의 역사다.

(…)

지난해 지인의 딸 혼사로 난생처음 혼자 제주도를 찾았다. 3박 4일간 양 작가 어머님 댁에 묵게 되었다. 둘째 날 저녁 양 작가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머님께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생각 끝에 내가 어릴 때 할머니와 지냈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양 작가 모친도 12세 때 겪은 4·3의 한 맺힌 이야기를 하셨다. 당신의 어머니와 오빠, 아기 업은 큰언니 이야기를 하시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양 작가에게 들었지만, 어머님이 하시는 이야기는 더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어머님은 자녀들에게 4·3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머님뿐 아니라 제주인들은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연좌제에 걸려 곤란해지고 또 억울함을 당할까 봐서 30년 지기 친구라도 4·3은 함구하는 단어였다.


얼마 전 집안 시동생 안부를 듣게 되었다. 그는 서울 법대에 들어가 법관이 되려 하였으나 부친이 처남 대신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연좌제로 인해 꿈을 접었다. 그는 철학과로 전과했다. 졸업 후 학원을 운영하다 이것저것 일을 했다. 결혼은 했지만, 술로 세월을 보내다 추석 전에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시동생이 대학 3학년 대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자랑스레 말하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동생으로 인해 제주4·3에 관련된 가족들이 묵언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동행 없이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았다. 희생당한 분들 성함이 마을별로 비석에 즐비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름도 없는 아기들, 오달용의 자 2세 오애기, 누구누구의 큰아들 또는 둘째, 셋째딸 이렇게 표기돼 있었다. 어른들의 이름은 알지만, 그 집 아이들의 이름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표기해 놓은 것이었다.


내려오다 눈 속에 아기를 안고 총에 맞아 죽은 여인의 동상을 보았다. 젊은 엄마와 아기가 상상되어 답답한 가슴을 안고 위령탑으로 향했다. 영령들의 혼이 나를 감싸는 듯했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우는 까마귀들의 까악까악 소리가 넓은 공원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까마귀의 울음도 영혼을 달래는 소리 같았다. 위폐 봉안관에 모셔진 한 분 한 분의 위폐를 보는 동안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한참 동안 영혼을 위해 묵념했다.

모녀상 <飛雪>
한라산 중산간 마을에 대한 제9연대의 초토화작전이 한창이던 1949년 1월 6일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엔 온통 눈보라가 날리고 들판의 바람은 매서웠다. 중산간 마을인 봉개동에도 군경 토벌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문도 자세히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사냥개에 쫒기는 토끼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아기 엄마였던 당시 나이 25살 변병생도 두 살배기 딸을 품에 안은 채 거친오름 북동쪽 벌판에서 쫒기고 있었다. 얼마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모녀는 ‘빨갱이사냥’에 혈안이던 토벌대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어린 딸을 가슴에 꼭 파묻은 상태로 차디찬 눈바람 속에 두 생명은 피를 흘리며 얼어서 숨졌다. 그들은 그렇게 땅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이 되었다. 얼마 지난 뒤 벌판을 지나던 행인이 하얀 눈 더미 속에 파묻힌 채 죽어있는 모녀를 발견했다. ‘飛雪’이라 제목을 붙인 이 모녀상은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두 생명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만들었다. (옮긴이 덧붙임)

제주4·3항쟁으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그중 어린이, 노인, 여성이 30%나 된다고 한다. 불탄 마을이 130여 개이며, 고문 후유증, 트라우마로 자살한 이들도 있었다. 어린 아기, 노인네도 피 흘리며 쓰러지는 형상이 꿈인가 생시인가 밤낮으로 내 눈에 선했다.

제주4·3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제주도에 가면 아름다운 경치와 돌 하나에도 희생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되곤 한다. 4·3 당시 희생자 대부분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였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좌우의 이념 대립처럼 보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동안 적잖은 4·3 강연, 세미나, 다큐 영화, 오페라 등을 듣고 보았다. 모두 아픈 역사를 드러내어 치유하려는 의지가 담긴 절절한 내용들이었다. 내가 살던 부산에는 아직도 “4·3은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말을 낯설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편이다. 늦은 나이에 4·3을 알게 되었지만, 서울 등지에서 진행되는 역사 바로 세우기 흐름에 동참하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내 삶에 균열을 일으킨 4·3문학회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제주4·3과 나」(김권혜의 <귀한 인연>) 中 발췌

*김권혜는 1952년 생. 6.25 전쟁이 한창일 때 부친이 군 입대하는 날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부산문학도시>로 등단하여 수필을 쓰고 있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All Photos by Kim Yang-Hoo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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