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4·3에서 5·18로

임삼숙-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中

by 김양훈
광주에서 제주로,
4·3에서 5·18로

“넌 빛나는 80학번이야. 그것도 전남대.”


입도한 지 3년쯤 지났을 즈음의 어느 날, 크게 웃고 열정적인 제주도민인 그녀가 내게 해 준 말이다. 아니 그냥 한 말이다. 서귀포에서 근무하며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자주 제주시를 오갔고, 시위가 끝나면 단골로 갔던 제주시 동문통의 주막에서 처음 들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을 내게 한 말인데, 그때의 나에겐 선물 같았고 들으면 늘 뻐근했다.


서울의 봄, 80년 대학 입학 후 보는 일상은 점심시간마다 도서관 앞 시위, 정문 앞의 전투경찰, “전두환…”으로 시작하는 인쇄물, 가끔 칠판 위에 쓰여 있는 “오늘은 휴강입니다”라는 문구, 멀리서 바라보는 나였다. 그렇게 5·18은 나를 지나갔다. 대학을 겨우겨우 졸업하고, 1984년 2월 완도-제주행 카페리호에서 내내 구토를 하며 제주에 갔다. 도망이듯 희망이듯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서귀포 바다 가까이에 있는 남자중학교에 발령받았고, 거주지는 서귀포 시가지 서쪽 대신호텔 부근의 절이었다. 지금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가 믿었던 미륵불을 모신 사찰, 주택가 안의 조그만 절이었다. 어머니의 정보력은 지금으로 치자면 대치동 맘을 넘어선 것일게다. (…)


4·3과의 만남에는 두 개의 뚜렷한 기억이 있다. 하나는 제주와 4·3에의 입문으로 볼 수 있는 『제주도지(誌)』를 읽게 된 것이다. 제주 1년 차 겨울, 일직 근무 중 무료함에 교무실 책장을 뒤지다가 학교마다 구비되었던 『제주도지(誌)』를 발견하였다. 아무도 건들지 않아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던 벽돌 책을 거의 한 달 동안 읽었다. 제주의 신화와 역사, 자연과 지질, 문화와 풍속 등을 보았다. 시험지를 “태워주라”는 말이 ‘배부하라’라는 뜻인 줄 어찌 알았겠는가? 신구간에만 이사를 하고, 옆에 앉은 선생님은 제사를 나누어 지낸다고 하고, 시장에 가면 모두 싸우는 줄 알았다. 여태까지 보아 온 육지 내 지역의 차이와는 너무 달라 궁금한 게 많았다. 죽음의 추모를 중요하게 여기고, 제사 때만 비우는 조건으로 그냥 방을 빌려주고, 제사상에 넓적한 카스테라¹⁾를 놓고, 경조사에 형제와 부모가 따로따로 부조를 주고받고, 나이 든 부모와 한집에 살면서도 안거리 바깥거리 하며 각자 밥을 따로 해 먹고, 동사의 어미를 짧게 줄여 말하고, 바다와 땅의 동서남북이 다르고, 300개나 넘은 오름이 있는 등 궁금한 것들이 『제주도지(誌)』를 통해 많이 해결되었다.


4·3에 대해선 현대사 부분에서 왜곡, 축소된 내용이 간략하게 서술되었는데 내겐 그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낭만적인 섬이 아닌 광주와 나란히 실체로 보게 되었다. 우습게도 그 후 광주에서처럼 비켜서지 않고, 부끄럽지 않기 위해 건강하고 건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부끄럽지 않게’, 늘 붙들고 있는 그 명제가 왜 내게 중요할까 궁금했었는데, 마음 공부하며 성향을 분석해 보니 나의 예민한 부분이 수치심이란다.


둘째는 4·3 연구하는 친구와의 만남이다. 나름으로 열심히 살던 제주 정착 3년 차는 레드 콤플렉스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4·3이 그제야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난 시기이기도 하다. 친구는 4·3 유족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녹음하고 채록했다. 어떤 사정으로 같이 살았는지 이유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몇 달 동안 함께 지내며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녹음을 함께 들었다. 친구의 채록은 몇 번씩 되감기를 하며 타자로 치는 작업이었는데, 그 친구는 어처구니없게 내게 무슨 말 같냐며 묻기도 했다. 녹음기 밖으로 쏟아지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는 거친 바람 속 수숫대 같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숨은 두려움과 한이 느껴졌다. 친구의 어머니도 4·3에서 혼자만 살아남으셨다 했다. 그 친구는 그 후 30년간 채록을 지속하여 최근에 책을 내었는데, 나는 내용은 물론이고 열정에 감동하였다. 지속된 열정만이 이룰 수 있는 제주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보았다.


1989년 제주도에 4·3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정기적으로 받아 본 4·3연구소의 『이제사 말햄수다』를 읽고 수많은 강연, 전시, 답사, 시위 등 행사에 참여하며, 제주에서의 삶이 깊어져 갔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2000년 제주를 떠나기까지 17년 동안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살았다. 노동하고, 생산적이고 서 있는 곳과 할 것을 분명하게 아는 그런 삶을 살고자 했고, 그리 사는 게 행복했고 충만했다. 1년이면 광주와 제주를 몇 차례씩 오갔다. 그때 쌓인 항공 마일리지가 지금도 10만이 남아 있을 정도로 자주 오갔다. 제주의 동료와 지인들은 광주를, 광주의 친구들은 제주를 서로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서 광주의 인맥을 연결하기도 하면서 오갔다. (…)

1노무현 대통령의 사과.png

시간은 쌓이고 1995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기념관이 세워지고, 사법재판이 이루어졌다. 제주에서도 1999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졌고, 그 후 이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기념관 설립 등 4·3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4·3의 규명이 5·18보다 한발씩 늦게 진행되는 게 늘 마음이 쓰였다.


소설가 한강은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서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로 가는 4년을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4·3을 통해, 비켜서 있었던 5·18로 갔다. 광주에서 제주로, 다시 제주에서 광주로 가는 왕복의 길이다. (후략)


-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 (임삼숙의 <광주에서 제주로, 4·3에서 5·18로>) 中 발췌

*임삼숙은 광주가 고향이고, 제주에서 16년을 살았다. 제주의 땅과 색깔을 좋아하고, 제주말 '무사'를 좋아한다. 제주를 그리워 한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옮긴이 註]

1) 제주의 고유한 시루떡인 ‘침떡’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 조침떡은 좁쌀로 설기처럼 쪄낸 떡으로, 고구마와 좁쌀가루로 쪄서 팥고물을 올려서 먹는 제주도의 토속 떡이다. 영양분이 골고루 있어서 좋고 찹쌀이 아닌 좁쌀이라 구수하고 또한 고구마의 단맛이 어우러져 맛있다.

조침떡.jpg 조침떡

2)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어, 어떤 사상을 공산주의인 것처럼 지칭하여 그 사상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Red는 공산당에 대한 멸칭인 '빨갱이' 또는 공산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을 뜻한다. 영어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로 대한민국 내에서 통용되는 신조어이다. 영어권의 비슷한 단어로는 레드 스케어(Red Scare)가 있다. 단순히 공산주의 자체를 공산주의로 지칭하는 것을 레드 콤플렉스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후 반공 교육에서 붉은색을 공산주의의 혁명성을 나타내는 색깔 또는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색으로 삼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공산주의자를 묘사할 때 ‘빨갱이’라고 비하해서 불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말은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레드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반공이라는 국시와 국가보안법이라는 강력한 반공법과 더불어 분단 이후의 대한민국 사회 모든 영역에 침투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대한민국에서 노동 운동이 태동하던 당시, 대한민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동일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탄압이 횡행하였다. 또한, 혁신을 주장하는 진보주의 정당의 활동도 좌파에 대한 사회 전반의 거부감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들이 참여한 민주화운동으로 대한민국은 1987년 이후 민주화되었고, 북한 김일성의 사망과 북한의 경제의 위기로 레드 콤플렉스는 줄어들기 시작하였지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색깔론’을 일삼는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조성봉 감독의 다큐 영화 '레드 헌터']

https://youtu.be/PSynIfc_L9Q?si=22THwPEbgz6SZkUg

사본 -1제123통신사진파견대가 1948년 5월15일 촬영한 이 사진은 제주도 주둔 9연대 고문관 리치 대위가 경비대 중대 장교와 공산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는 마을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이 돼 있다. 리치는 훗날 “제주도가 합법적인 군사작전지역이었다”고 주장했다.jpg
제123통신사진파견대가 1948년 5월15일 촬영한 이 사진은 제주도 주둔 9연대 고문관 리치 대위가 경비대 중대 장교와 공산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는 마을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이 돼 있다. 리치는 훗날 “제주도가 합법적인 군사작전지역이었다”고 주장했다
사본 -3경비대원 3명이 1948년 8월3일 오후 제주시의 한 근교에서 내란죄와 탈영죄 등을 이유로 총살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옆에는 미군 장교 2명이 보인다. 이 현장에 있었던 연대 고문관은 당시 총살 집행이 미군의 입회 아래 이뤄지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jpg
경비대원 3명이 1948년 8월3일 오후 제주시의 한 근교에서 내란죄와 탈영죄 등을 이유로 총살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옆에는 미군 장교 2명이 보인다. 이 현장에 있었던 연대 고문관은 당시 총살 집행이 미군의 입회 아래 이뤄지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사본 -5미군과 제주도 여성들의 모습..jpg 제주 주둔 한 미군이 제주도 여성들과 함께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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