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4·3 유족과 앞날

현민종-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中

by 김양훈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

제주4·3 유족인 나는 서울에서 출생해 초, 중, 고, 대학을 다녔고 현재까지 61년째 살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인 1988년부터 35년간 매년 가을 산소 벌초 때 제주도에 가고 있다. 아버지 산소는 용인공원에 있으나 증조부모와 조부모의 산소가 제주도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친가와 외가는 제주4·3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조부와 백부, 숙부, 셋째와 넷째 고모, 그리고 외조부까지 도합 여섯 분이 희생자이다. 조부는 50세, 외조부는 40세가 되던 1949년도에 학살을 당하셨다. 미혼이던 나머지 네 분은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다.

먼저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4·3 당시 열두 살 막내였던 아버지는 해병대 제대 후 철도청에서 근무하셨지만, 연좌제로 직장을 잃으셨다. 키 크고 사람 좋으셨던, 10년 넘게 통장과 새마을 지도자를 했던 아버지는 말 그대로 호인이셨다. 하지만 아들에게 4·3에 대해선 살아생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가족들이 당했고 당신이 목격했을 끔찍한 만행들을 말이다.


마침내 아버지는 4·3 당시 조부께서 돌아가셨던 오십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뜨셨다. 가족사 역시 나중에야 어머니와 제주도 삼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4·3이 얼마나 엄청난 비극이었는지, 또 아버지가 왜 그토록 입을 꾹 다무시고 술만 드셨는지, 아버지는 홀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했을까? 이렇게 우리 2세대 3세대에 이르기까지 수만 명의 희생자 유족들은 억울하게 학살되고 행방불명된 가족의 한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서울에도 제주4·3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기회는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났다. 코로나 19로 재택 대기 중이던 2020년 11월 19일에 나는 「4·3특별법 “국회가 답하라”」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를 읽게 됐고, 바로 그때 제주4·3재경유족청년회 측에 연락을 했다. 국회 앞에서 특별법 개정 시위가 있으니 함께하면 어떠냐는 제안에 나는 그 길로 달려갔고, 겨울이 되도록 한 달 넘게 매일 1인 시위에 참여했다. 이것은 나의 생애 처음 하는 잊을 수 없는 시위였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알게 됐다. 국회에서 법안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많은 사람이 연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우리 유족들의 억울한 사연을 알렸고 외쳤다. 국회 앞에서 외쳤던 피켓 시위 구호를 들려주고 싶다.

“4·3은 대한민국의 역사”

“제주도의 간절한 염원이다”

“70년을 기다렸다”

“4·3특별법 개정으로 명예회복 추진하라”

“진상조사법에서 피해보상법으로”

“불법적인 군사재판 무효화와 전과 기록 말소”

“역사의 명령이다, 4·3특별법 개정하라!”


이 구호들 대부분이 다음 해 개정된 4·3특별법에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다. 나는 4·3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2021년 1월에서야 어머니는 제주도청 4·3과에 유족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부의 형사사건부¹⁾와 판결문, 백부의 마포형무소 수형자 신분장²⁾을 국가기록원에 가서 직접 받았고, 제주4·3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와 법무법인 해마루의 도움으로 2021년 5월에 조부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하여 2022년 3월 29일에 제주지방법원 재판장 장찬수 판사 외 2인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한, 2021년 10월에 백부의 재심을 청구했고, 2022년 9월에 제주지방법원 재판장 장찬수 판사 외 2인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작년에 조부의 산소에 가서 알렸다. “할아버님,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늦게나마 온갖 고문과 함께 억울한 옥살이를 한 할아버님의 명예가 다소나마 회복되고 그동안 덧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제부터 편안하게 잠드시길 바랍니다. 제주4·3은 이 손자의 전생(全生)에 걸친 과제이지만 이번 벌초를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할아버님께 고합니다. 손주 민종.”

KakaoTalk_20241007_092338203_01-2022년 3월 29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할아버지 4.3재심 무죄판결을 듣고 있는 현민종 씨1.jpg 2022년 3월 29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할아버지의 재심 '무죄판결'을 들으며 만감이 교차하는 필자의 모습.

많은 분이 4·3의 진상을 알고 억울함을 씻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 불법 재판에 대한 재심청구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무죄판결에 따른 보상은 국가배상청구와 형사보상청구 두 가지가 있는데, 무죄 판결일로부터 유효기간 3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나는 2023년 9월에 조부의 무죄판결에 따른 국가배상 소송을 청구하여(피고 대한민국-법무부장관에게 손해배상), 11월에 판결을 받았으며(“국가 기관의 명백한 불법 행위로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위와 같은 위자료[희생자의 배우자 및 자녀의 위자료에 대한 상속청구분])를 지급함이 상당하다”), 12월에 배상금 지급 기관인 국방부로부터 상속법 지분만큼 배상금을 받았다. 형사보상금청구금과 제주4·3특별법상 희생자 보상금은 둘 다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특별법상 희생자 보상금을 선택하였다. 이들 보상금은 조부와 조모, 백부, 숙부, 고모, 아버지의 희생에 대한 대가이므로 4·3 활동을 위해 쓸 것이다.


현재 나는 서울에서 제주4·3범국민위원회 이사, 재경4·3유족청년회 고문, 4·3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모임 회원들과 서울에서 열리는 제주4·3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제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제주4·3은 3만 명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70여 년 동안 감추고 왜곡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4·3의 진상 규명, 전국화, 세계화 등 갈 길이 바쁘다. 나는 올해, 내년, 후년, 그리고 80주년 행사 등 중단기 계획과 실천으로 4·3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다. 남은 생을 4·3 활동가로서 뜻을 나눌 분들과 함께 할 것을 다짐한다.


-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 (현민종의 <4·3 유족과 앞날>) 전문.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옮긴이 註]

1) 형사사건부: 아래 참조.

국가기록원이 보관중인 신원홍 할아버지 부친의 형사 사건부. (사진=신원홍 할아버지)


2) 신분장(身分帳) :교도소에서 직원 및 재소자의 이력, 성적 따위를 모아 둔 장부. 한 사람에 한 책씩 되어 있다.

https://youtu.be/Lq2bkvB9XCs?si=LNGmT5jezt9RDM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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