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4 3문학회

제주4·3을 바라보며

김선아|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제주4·3과 나」中

by 김양훈
제주는 내게 과거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보여 준 땅,
넘치도록 힘이 가득한 땅이다.

(…)

초등학교 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내게 5·18항쟁과 관련된 각종 서사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내 삶의 모든 곳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기억으로 가득 찬 광주가 언제나 그리웠다. 커다란 무등산 수박을 가져다 무등산 계곡에 담그고 가족들과 닭백숙을 나누어 먹었었다. 눈을 감으면 사직공원의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양동시장 아줌마들과 금남로의 화려한 밤거리를 걸었다. 석고상 아저씨가 독서하는 소녀상을 파는 옆에서 몰래 『선데이 서울』을 읽었다. 광주는 작은 식당에도 글과 글씨가 가득한 액자를 걸어놓는 문향(文鄕)의 도시다. 그런데 내 마음속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찬 광주를 부정해야 했다. 부모님은 어디 가서 절대 광주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체기가 있는 것처럼 속이 갑갑했다.


문학회에 참가하기 전에 제주도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지로 선호하고 종려나무가 제주공항 길 가로수로 심겨 있는 이국적이고 낯설어 여행지로 더욱 매력 있는 지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나니 제주도의 타원형 지도가 눈감아도 척척 보인다. 관덕정이 있고 산방산이 있고, 차귀도가 지도 왼쪽에 찍혀 있다. 이제는 제주 4·3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1948년은 해방 후 3년째이면서 아직 6·25가 일어나기 전이다. 그랬던 시점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학살되었다. 내게는 약 3만이라는 숫자보다 18세에서 32세까지 성인 남자의 40%가 살해되었다는 상황의 규모가 더 경악스러웠다. 젊고 한창 일하고 결혼하고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할 젊은 인재들이 모조리 학살된 것이다. 물론 남녀노소 어린아이까지 학살당한 사람들의 수가 거의 3만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중산간¹⁾ 대부분 마을과 가옥이 불에 탔다. 다시 돌아와 살아갈 집이 없고 농사지을 남자가 없었다. 제주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1948년 5월 5일 최고수뇌회의 참석차 제주에 온 수뇌부들. 좌측에서 두번째 군정장관 딘 소장,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병옥 경무부장, 맨 오른쪽이 김익렬 연대장. ⓒNARA

4·3은 가해자가 여럿이다. 미군정이 첫 번째 가해자이고, 서청으로 일컬어지는 서북청년단이 두 번째 가해자이고, 당시 남한 정부의 수반이던 이승만과 그의 명령에 따라 학살을 집행한 군경 토벌대가 세 번째 가해자이다. 그 와중에 국가권력에 의한 갈라치기에 의해 제주도민 사이에서도 우익과 좌익으로 나누어지는 내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제주도 토벌에 나섰던 경찰과 서청단원,군인을 격려하는 이승만

그 당시 남로당은 1945년 해방 이후 합법적 정당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의 갑작스러운 정세 변화로 냉전이 시작되면서, 남로당의 합법적 위치가 없어졌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남북한 통합선거에 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38선 이남에서 유엔 단독 선거의 합법화 조건은 모든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고 여기서 단독 선거를 찬성하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주도의 2개 선거구는 단독정부 수립을 끝까지 반대하여 총선거를 보이콧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모든 지역에서의 찬성만이 정부 수립의 조건인 가운데 그들은 살육과 방화에 의한 공포로 이 일을 해결하려 들었다. 이미 남한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지만,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은 총선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국제법상 남한 정부의 권한이 미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또한, 미군정은 48년 이전에 제네바협정에 의해 주둔지 국민에게 직접적인 폭력 행위를 하면 안 되었는데, 제주에서의 일은 국제법 위반 사항이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합해 생각해 볼 때 제주의 불행은 한국의 정치적 부조리의 총집결체였다.


비슷한 일이 2023년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서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말살한다는 명분으로 가자 지구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병원, 정부 기관, 법원, 학교, 유치원까지 폭격하며 주민들이 다시는 가자에 돌아와 새롭게 정착할 수 없게 초토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만 9만 명 가까이 되었다. 방어할 수단이 한정된 가자 주민들은 국제 사회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지만 유엔에서 미국의 반대로 인해 그들의 기대는 한낱 꿈이 되었다. 가자는 예전의 제주와 비슷하다. 제주는 바다로 갇혀 있고, 가자는 장벽으로 갇혀 있다. 예루살렘은 크리스마스를 즐기지만 가자의 주민은 절망과 공포만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제 4·3은 거대한 발자국이 되어 세상에 서서히 아픈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의 역사에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없어지거나 사라질 수 없다. 4·3을 겪은 많은 제주인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4·3은 침묵하는 시간을 뚫고 서서히 터져 나오는 중이다.


아무도 가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없고 피해자만 있는 제주에서 사람들은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설화 속 설문대할망의 힘이 살아 있는 섬 제주는 불을 품은 화산의 용암처럼 일어났고, 씨를 품어 새 생명을 성장시켰다. 모진 흉년을 겪고 부모 형제의 죽음을 목격하고 홀로 살아남은 어린아이는 성장해 아버지가 되었다. 무너지고 밟혀, 생명의 꽃 필 수 없는 땅이라 여겼던 제주는 건재하다.


제주는 내게 과거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보여 준 땅이다. 넘치도록 힘이 가득한 땅이다.


-4·3문학회 문집 특별기획 「제주4·3과 나」 (김선아의 <제주4·3을 바라보며) 中 발췌.

*김선아는 서울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부터는 줄곧 서울 등지에서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14년째 천주교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옮긴이 註]

1) ‘중산간‘은 제주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다. 제주에서는 보통 표고 200~600m 사이의 지역을 ’중산간 지역‘이라고 부른다. 해안변 지역과 한라산체와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지역이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 말은 학술적 용어는 아니며 편의상 통용되는 제주도적 용어이다. ’중산간‘이란 용어는 개발이 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땅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출처 김순자 著 <제주도 방언의 어휘연구> p297~299.

군경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피신하는 중산간 주민들(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초토화작전 직전인 1948년 10월 제주를 방문한 채병덕 참모총장 일행. 뒷줄 오른쪽 다섯 번째 송요찬 연대장, 채병덕 참모총장, 열두번째 키큰 이가 서종철 부연대장.
중산간 마을에 설치된 토벌대(파견대) 본부
제주농업학교 천막수용소. 1948년 가을부터 제주지역 기관장과 유지들도 대거 수용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4·3 유족과 앞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