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훈 Nov 12. 2023

돗괴기 봄동배추국

2020년 1월 9일 한라일보 <김양훈의 한라시론>

그냥 먹어라!
봄동 맛이 꿀맛일 것이다.

채소 판매대에 봄동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남해안 지역에서 납작배추, 납딱배추, 딱갈배추, 떡배추라 부르듯 넙데데한 모양의 봄동은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배추 앞에 붙은 접두어들은 땅바닥에 납작 붙어 자란 모양을 일컫는 것이다. 제주의 시골 동네에서 퍼데기나물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도시인들이 맛보는 봄동은 전라남도 완도와 진도, 해남과 신안에서 올라온 것들이다. 이 지역의 봄동이 전국 생산량의 9할 이상을 차지한다. 90년대에 진도에서 처음 봄동의 상업적 재배가 시작됐다. 그로 인해 '진도 봄동'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다른 지역의 봄동도 '진도'라는 이름이 붙은 상자에 담겨 시장으로 나온다.
 
봄동이라는 말의 유래를 알 수 없어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 중에 두 가지를 추려본다. 먼저 소똥설이다. 봄이 오는 들녘 마른 소똥처럼 땅바닥에 넙데데하게 자란 푸성귀이니 그렇다는 말인데 먹거리를 두고 똥이라 부르기엔 뭐해서 봄동이라 했단다. 그러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라며 발음을 봄-똥이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는 봄(春) 뒤에 겨울 동(冬)을 이어붙이니 봄동이란다. 겨우내 노숙으로 한뎃잠을 자며 바람 찬 들에서도 푸르름으로 견뎌낸 나물이란 뜻이다. 그래서 황산순의 시 '봄동아, 봄똥아'는 인동(忍冬)의 당당함에 반하여 봄동과 더불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음을 자랑한다. 추운 겨울에 맛보는 봄동은 단맛이 제격이라, 송기숙의 소설 '녹두 장군'에는 이런 대화도 있다. "그냥 먹어라. 봄동 맛이 꿀맛일 것이다."
 
보릿고개가 여전하던 농한기 겨울철, 아버지가 동네 돗추렴에서 목살이라도 차지하고 큰기침하시며 이문간을 들어오는 날엔 어머니는 우영팟에서 퍼데기나물을 뜯어다 고기 삶은 육수에 베지근하게 돗괴기 나물국을 끓였다. 이런 날은 정말 지꺼진 밥상이었다. 지금은 먹는 걸 쉽사리 여기지만, 그때는 집마다 늘 입걱정이었다. 그래서 최보따리 해월 선생은 "만사를 안다는 건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느니라."고 하였다.
 
육지에서는 봄동배추로 국을 끓이자면 보통 멸치육수로 된장국을 끓인다. 옛날 개성에는 이성계를 원망하느라 돼지고기를 끓여 만든 성계탕이 있었다는데, 부산 명물 돼지국밥이라면 모를까 돗괴기 봄동배춧국하고는 사연이 닿지 않는다. 어찌 됐든 돗괴기 봄동배춧국은 타향이라 서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 밥상 음식, 소위 소울푸드다. 식탁에 오른 뜨뜻한 돗괴기 봄동배춧국 국사발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한 숟갈 입안에 담으니 베지근한 맛이 온몸에 가득 퍼진다. 음식남녀란 말이 있지 않은가! 성욕과 더불어 식욕은 원초적 본성이란 말인즉, 미각에서 오는 행복감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렷다.
 
제주의 본디 것들이 사라져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간다. 어쩌다 가보는 제주섬은 풍경만이 낯설어가는 게 아니다. 말본새도 그렇고, 제고장 음식이라 내놓은 국반찬도 제 본색이 많이 여위었다. 꼰대의 투정이 아니고 무엇이랴만 아쉬운 걸 어쩌랴! 아차, 봄동국이 식었다. <제목사진 출처-광주남구 로컬푸드>


봄동아, 봄똥아

                 황 상 순 

봄동아, 

볼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 

어쩌면 네 몸 이리 향기로우냐! 

오랜만에 팔소매 걷고 밥상 당겨앉아 

밥 한 공기 금세 뚝딱 해치운다만 

네가 봄이 눈 똥이 아니었다면 

봄길 지나는 그냥 흔한 풀이었다면 

와작와작 내게 먹히는 변은 없었을 게 아니냐 

미안하다만 어쩌겠냐 

다음 생엔 네가 나를 뜯어 쌈싸 먹으려므나 

살찐 뱃가죽 넓게 펴 된장 바르고 

한입에 툭 쳐 넣으려므나 

봄의 몸을 받지 못한 나는 구린내만 가득하여 

너처럼 당당하지 못하고 

다른 반찬 밑에 엎드려 얼굴가리며 

아마 죽은 듯 숨어 있겠지 

그렇겠지? 봄동아, 봄똥아. 

매거진의 이전글 빨갱이라는 이름의 낙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