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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Oct 20. 2024

마리아나 벤자민의 결혼 이야기

톨스토이 선생님 부부의 갈등을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선한 두 이익의 충돌이다?

선한 두 존재가 충돌할 때

결혼에 관한 통찰을 담고 있어서 자주 인용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에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사람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지혜가 들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두 사람이 함께하기(togetherness)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그것이 가능해 보이는 이유는 속 좁은 두 사람이 한쪽 혹은 양쪽 모두에게서 완전한 자유와 발전 기회를 박탈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함께 하겠다는 약속 자체가 파기나 번복이 쉬운 연약한 협상이라고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는 자유와 발전 기회를 빼앗길 때는 물론이고 제한받을 때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심지어 그것들을 자발적으로 포기할 때도 그렇다.      


흔히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들 한다. 두 팀이나 두 나라, 두 사람이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둘 사이의 갈등은 서서히 악화하다가 갈 데까지 가버린다. 특히나 결혼 생활에 얽매여 있는 두 사람은 링 위를 날아다니는 권투 선수와 같다.     


오늘날은 이혼이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므로 ‘부부 갈등’이라는 주제가 나로서는 흥미로웠다. 싸우기 싫으면 관계를 끊고 떠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굳이 남아서 싸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밝히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서약이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갈등은 부부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누가 뭐래도 결혼 생활에서는 ‘노력하기’가 무척 어렵다. 양극단(음과 양, 흑과 백)에서 최선의 타협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가족 문제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 생활에서 갈등 유발 요인 중 1위는 의사소통 부족이었다. 그 외의 요인들로는 가사 분담, 경제 문제, 육아, 부부 관계 불만 등이 있었다. 모두 이외의 이유는 아니다. 그리고 의견 대립은 평범한 문제로 시작했다가도 큰 싸움으로 비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얼굴을 들이밀고 목소리를 높이고 발을 구르면, 상황은 타협 불가한 상태가 되어 상대는 감히 다가올 수 없게 된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 
그러나 한 가지 알아둘 사실은
먼저 떠난 사람이 패자가 된다는 점이다. 

나는 갈등이 나쁘다거나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갈등은 결혼 생활에서 문제라기보다 해결책에 가깝다. 특히 그것이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는 공통의 바람에서 비롯되었다면 더욱 그렇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비망록<에 썼듯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선한 두 이익의 충돌이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 두 사람이 처음 함께하기로 한때로 시간을 돌려보자. 부부 서약을 마친 두 사람의 가장 큰 소원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서로의 부탁을 들어주고 긴장을 풀어주며, 성가신 요구나 사소한 잘못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유연하고 너그럽게 상대를 대하려 한다. 즉 최선을 다해 친절해지려 한다! 문제는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는 일에 점점 싫증이 난다는 점이다. 자기도 즐기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런 욕구는 사람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서 둘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한다. 이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녀의 독립과 사회 적응돕기, 알뜰한 살림살이, 상호 존중, 집안 청결 등 부부가 비전이나 목표를 공유할 때도 마찬가지다.      


결혼 생활은 민주주의 축소판으로, 거기에는 각 구성원이 온전한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어쨌든 결혼은 독립적인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한 선택이다. ‘나’보다 ‘우리’를 우선하기로 한 결정이다. 그러므로 ‘우리’ 관계가 단단해지려면 모든 것을 타협해야 한다. 사적인 공간을 줄이고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항복이 아닌 합의를 통해 상호 존중하며 살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결혼 생활 중에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동 목표는 퇴색하기 쉽다. 이는 민주적 결혼이라는 이상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공유한 비전이 흔들리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원할 때, 혹은 더 많은 것을 원할 때 갈등이 생긴다는 의미일까?     

2019년에 개봉한 노아 바움백의 문제작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는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파경을 맞는 부부의 모습을 예리한 시선으로 그린다. 부부는 결혼 생활에 균열이 생긴 후부터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한다. 벌어진 관계의 틈새로 상대에 대한 반감이 뜨거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영화 속에서 이혼 소송을 맡은 변호사가 잊을 수 없는 대사를 남긴다. 형사 전문 변호사는 나쁜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찾고이혼 전문 변호사는 좋은 사람에게서 가장 나쁜 점을 찾는다.” 이 대사의 핵심은 결혼이란 ‘타협할 수 없는 차이’를 감추기 위한 겉치레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논리에 따르면 화해(갈등 해소)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사람들의 결혼 생활을 들춰보면 곳곳에서 갈등이 폭발한다. 자녀를 낳을지 말지, 낳으면 언제 낳을지, 이 책이나 전등, 의자는 누가 샀는지, 누가 어떤 희생을 하고 누가 더 이기적인지, 누구의 가족이 더 형편없고 까다로운지 등 꼴사나운 모습들이 드러나곤 한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너무나 다양해서 어느 것부터 언급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혼 이야기>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니, 급기야 증오로 눈이 뒤집힌 남편은 아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고함을 지른다. 한참 독설을 퍼붓던 남편이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화약고가 되었고, 이혼 소송 과정에서 폭발하고 만 것이다.      

바움백의 영화는 부부 상담 치료(갈등을 겪는 부부의 최후 수단)가 실패하면서 시작된다. 바꿔 말해서, 모든 불화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안이한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셈이다. 상담 서비스부터 분쟁조정 위원회와 진실화해 위원회까지 모든 제도가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생각을 지지하지만, 바움백은 그것이 희망 고문임을 간파했다. 사람들이 서로 대립할 때, 즉 갈등을 빚고 있을 때 불화는 비언어적으로 표현된다. 조안나 호그 감독의 <엑시비션(Exhibition)>에서는 둘 다 예술가인 남녀가 주인공인데,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던 그들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오직 상대방의 신경을 긁는 일뿐이다. 찬장을 세게 닫거나 수돗물을 요란하게 틀고 계단을 쿵쿵거리며 올라간다. 그들의 귀에는 모든 소리가 거슬리는 메시지다.  

   

그런데 불화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두 사람의 갈등이 승자가 가려지는 싸움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왜 나를 봐주지 않는 거야”)의 표현이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행동(“분담하기로 약속해놓고 왜 나한테만 집안일을 맡기는데!”)이라면?     


미국 정신분석학자 에드먼드 버글러는 자신의 책 <이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에서, 이혼 소송을 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내적 갈등을 없애고 싶어 한다”라고 설명한다. “그 사람은 내적 갈등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므로 갈등의 투사 대상으로 삼은 상대방과 맹렬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다. 버글러는 이혼이 내적 갈등을 해소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내적 갈등이 불화의 근본 원인이라면, 분명 그 사람은 이혼 후에 새로운 배우자를 찾아 그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NewPhiosopher誌의 <갈등을 받아들이는 연습> (선한 두 존재가 충돌할 때)에서 발췌.

      

Marina Benjamin
*마리나 벤자민(Maina Benjamin) - Marina Benjamin worked as a journalist before turning to non-fiction and, later, memoir. She has served as arts editor of the New Statesman and deputy arts editor of the Evening Standard and has written features and book reviews for most of the broadsheet papers. Her first book Living at the End of the World (1998) looked at the mass psychology of millenarians. Rocket Dreams (2003), an offbeat elegy to the end of the space age, is at the same time a story about coming of age in the 1970s, while Last Days in Babylon (2007) blends memoir, political commentary and travelogue to explore the story of the Jews of Iraq.    

 These days, Marina works as senior editor at the digital magazine Aeon. She teaches regular life writing and creative non-fiction courses for Arvon, and runs workshops for graduate students and staff as an RLF Consultant Fellow. In recent years she has doubled down on her commitment to exploring what memoir can do, with a modern take on the essay form in The Middlepause (2016) – a personal interrogation of what it means to be middle aged. Her new memoir, Insomnia – part confession, part poetic exploration and part philosophical reflection – is published in 2018. She lives in London with her husband, teenager and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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