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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 3문학회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진혼제를 다녀오다

이경자|4·3문학회 문집|기행문|

by 김양훈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진혼제를 다녀오다

이경자


뜨거운 햇살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조화롭고 맑은 날이었다. 4·3문학회에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넋을 기리는 진혼제가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제주통일청년회, 제주4·3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간 곳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총살 추정지였다. 불행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 한강을 건너고 수색역을 지나 용두동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역사의 현장 주변은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있었다.


길가에 진혼제 현수막을 걸어 놓고 제주에서 올라온 제주통일청년회 회원들이 제사상을 차리고 있었다. 공적인 장소가 아닌 사유지에서 지내는 제사라 조촐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제주 제사 음식 상차림에 마음이 뭉클했다. 진혼제는 식전 제례에 이어 국민의례와 묵념, 약력 및 경과보고, 추모시 및 총살 목격기 낭독, 주제사와 추도사, 헌화 분향 순으로 진행되었고, 「잠들지 않은 남도」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은 “오늘 우리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를 비롯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라고 진혼제의 취지를 설명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지내는 추모제라고 했다. 이날 진혼제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 외에도 당시 박진경 대령 처단에 가담했던 양회천 이등상사, 강승규 일등중사, 신상우 일등중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배경용 하사, 이경우 하사도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 됐다.


박진경 중령은 “진압을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 전체를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라며 연대장 부임 후 40여 일 동안 6천 명 이상의 제주도민을 폭도로 몰아 노인, 여자, 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체포한 공로로 대령으로 특진하였다. 승진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던 그는 1948년 6월 18일 새벽 문상길 중위 외 8명의 부하에 의해 암살되었다.


1948년 9월 23일 23세 문상길 중위와 20세 손선호 하사는 상관을 살해한 혐의로 대한민국 건국 1호 사형수가 되어 총살당했다.


다음은 문상길 중위가 남긴 법정 최후 진술이다.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미군정장관 딘 장군의 총애를 받은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인간들로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 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정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 민족이기에 우리가 민족 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하여서는 공감을 가질 줄 안다. 우리에게 총살형의 선고를 내리는 데 대하여 민족적인 양심으로 대단히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이 법정의 성격상 당연히 총살형이 선고될 것이며, 우리는 그 선고에 마음으로 복종하며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안심하기 바란다. 박진경 연대장은 먼저 저세상으로 갔고 수일 후에는 우리가 간다. 그리고 재판장 이하 전원과 김 연대장도 장차 노령해지면 저세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세상 하나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하여도 하나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나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을 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죽음의 늪에서 구하고자 죽음을 선택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반역자란 이름으로 잊혀졌다. 문상길 중위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주도 상황이 더욱 악랄하게 소용돌이치면서 그의 애인 고양숙(18세)과 그녀의 어머니 윤장옥(45세)이 헌병대에 연행돼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 소위 출신 박진경의 고향인 경남 남해군 군민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첫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기회주의자요. 둘째는 제주도 빨치산 토벌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죽은 창군 영웅이란 시각이다. 역사는 강자의 편이라 박진경은 애국자, 문상길 외 8인은 반역자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박진경은 4·3 당시 그가 시행했던 초토화 작전이 정말로 4·3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느냐에서부터 이전 연대장인 김익렬과 비교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남해군에서는 2005년에 그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이 시민단체 중심으로 일었으나 동상은 현재도 여전히 남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강 노을을 보았다. 붉고 진했다. 그 어린 청춘들이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들은 정의와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리고 저세상으로 먼저 갔다. 저세상 설화 속의 서천 꽃밭에서 환생 꽃이라도 찾아내 못다 한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진혼제에서 나는 역사가 강자의 편인 것같이 보이지만 결국 진실의 편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경자|4·3문학회 문집|기행문|

*이경자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경기도에서 중등교사로 퇴직했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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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철창에 가둔 박진경 추도비.jpg 시민단체에 의해 철창에 갇힌 박진경 추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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