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4 3문학회

“내가 있잖아”:『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임삼숙|4·3문학회 문집|북 리뷰|

by 김양훈
“내가 있잖아”


한강의 소설은 시각과 청각, 촉각을 곤두세워 읽게 된다. 감각을 통해서 마음과 정신으로 이어지며 짐작과 상상이 극대화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특히 더 그랬다. 깊이 사랑하지 않고는 그렇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눈과 고통에 대한 표현이 절절했다. 2023년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고 그즈음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온다. / 떨어진다. / 날린다. / 흩뿌린다. / 내린다. / 퍼붓는다. / 몰아친다. / 쌓인다. / 덮는다. / 모두 지운다.”


소설 안에서의 눈은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와 같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하나의 아리아 주제에 대한 30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27개의 G장조와 3개의 G단조로 이루어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 연주된다. 사라방드, 푸가, 토카타, 트리오소나타, 코랄, 아리아 등.


“이상하지 눈은?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를 주제로 하여 성근¹ 눈이 내린다.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거대한 팝콘 기계가 허공에서 돌아가는 듯 눈송이들이 솟구쳐 오르고 지상에서 끝없이 생겨나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토카타, 믿을 수 없이 느리게 허공을 가득 메우며 떨어지는 함박눈의 춤, 사라방드. 수천수만의 흰 새들의 길고 찬란한 띠가 신기루처럼 바다 위를 빛과 함께 쓸려 다니는 코랄. 어디까지 구름이고 안개이고 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저 일렁이는 회백색 덩어리, 푸가. 이처럼 눈은 다른 밀도와 속력으로 많은 형태의 변주를 만들어 낸다.


많은 음악가가 세상에 음악이 한 곡만 남아야 한다면 가장 명상적이며 본질적인 회귀성을 지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남을 것이라고 한다. 눈은 눈송이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공간으로 가볍고, 주변의 소리를 흡수해 고요하다. 또 여러 방향으로 빛을 반사해서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다. 소설에서 경하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오래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이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하여 지금 내게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4·3희생자의 얼굴에서 녹지 않은 눈이 다시 내게 올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명상의 목적이 고요함, 평정이라면 눈은 충분히 명상적이고, 과거와 지금에 내리는 눈이 돌고 돈다면 눈은 충분히 본질적인 회귀성을 갖고 있다.


소설에서 눈, 가볍지만 무게가 있고, 육각형의 결정으로 결합하여 더욱 커지고,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와 속성을 갖는 눈은 우리들이라 느껴졌다. 폭풍 속에서 길을 잃고, 상처받고, 무겁게 짓눌리고, 고요 속에 숨고, 빛과 결합하여 찬란해지고, 결속하고 결합하여 위로하고 포근해지기도 하는 눈 같은 사람들 말이다.


고통


소설은 고통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고통은 심리적, 육체적으로 기존의 안정과 평화가 깨어졌을 때 표면으로 드러나는 감각이다. 고통은 통증과 두려움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단계를 거치며 승화하기도 한다. 식물의 단맛이 고통의 결과이고, 진주가 고통의 결과이듯. 소설 안의 인물들은 모두 고통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단계를 거친다. 경하는 작가로서의 고통과 새를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가지고 있고, 인선 어머니는 자신과 언니만 살아남고 오빠의 시체를 찾지 못한 고통을 가지고 있고, 인선 아버지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


또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는 상황이 끝난 후에도 “한쪽 눈으로는 인선과 눈을 맞추고 다른 쪽 눈으로는 벽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에서 보이듯이 초점을 가지고 선명하게 살지 못한다. 최근 스웨덴의 시리아 난민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체념증후군을 앓으며 몇 개월씩 기약 없이 잠으로 빠져든다고 한다. 몸과 마음의 관계는 참으로 신비하다.

고통의 단계를 극단적 상징으로 보여 주는 것은 인선의 고통이다. 인선의 손가락은 절단의 고통, 봉합 수술의 고통, 온존하기 위한 고통의 단계를 거친다. 피가 통하고 신경을 잇기 위해 3분마다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비로소 제 기능을 하는 손가락이 되는 것이다. 절단과 봉합은 내 의지 밖이지만 바늘을 찌르는 고통은 바르르 떨면서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디어 내야 한다.


또한, 인선은 삶의 흐름을 보면, 어릴 때는 4·3을 겪은 가족의 고통 속에서 견디기 힘들어 작고 여린 어머니를 미워하고 가출한다. 하지만 그 후 베트남에 있는 성폭력 생존자와 1940년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한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영화를 만들며 고통에 가까이 간다. 어느 날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발견된 고무신 신은 유골의 사진을 보았고, 그것을 보고 있으면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4·3에 대해서 자신을 인터뷰한 영화를 제작하였다. 자신의 고통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난 것이리라. 영화를 상영하던 날 사람들은 인선의 의도와 다르게 접근하고, 당혹과 호기심과 냉담함으로 반응하였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고통은 쉬이 수용하지만, 우리 안의 고통에 대해선 인색하다. 아니 그 고통이 내게 전염될까 봐 두려워 외면한다. 인선은 곧바로 영상 제작 일을 접고 제주로 돌아온다. 목공 일을 하고 새를 돌보며, 4·3 기록물에 파묻혀 산다. 경하가 그만두자 했음에도 꿈 프로젝트 『작별하지 않는다』를 위해 나무를 마련하고 먹칠을 하며 고통을 통과해 나아간다. 경하에게 새를 구해 달라는 인선의 무리한 요구는 다시는 ‘너’의 죽음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보여 준 것일 게다.


결합


소설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상은―내 기억에 작가가 처음으로 ‘작별’이란 단어를 사용한 부분―P읍의 버스 정류장에서 경하가 본 할머니의 보습이다.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주변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듯 고요하게,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버스의 기척을 감지하고서야 움직이는. ‘속솜허라²’가 몸에 배서일까. 헤어지고 나서 경하는 잠시 나란히 서 있었을 뿐인데 왜 작별하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지 의문을 갖는다. 영암 월출산의 전설이 떠올랐다. 착한 일을 해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인이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여 돌이 되었다는 동서양 인간사회 공통의 딜레마, 작가는 ‘너는?’ 하고 묻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남거나 뒤돌아보고 돌이 되거나,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를. 경하는 뒤돌아본다. 나란히 서 있었을 뿐인데도 작별하는 것처럼 마음이 쓰인다. 인선 또한 돌이 되었다고 했지 죽은 것이 아니고 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니 돌아본 거라고 한다.


연민은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한 내 고통의 결합이다. 새를 구하러 가라고 명령하듯 말하는 인선과 고통을 감내할 만큼 사랑한 적도 없는 새를 묻지도 않고 구하러 가는 경하는 같은 고통을 겪는 자들끼리 보여 주는 깊은 연대의 완전 결합체이다. 인선이 먼저 경하의 고통을 껴안았었다. 경하가 5·18을 다룬 이전 작품을 쓴 후 “살아 있는 누구도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라고 했을 때 인선은 말한다. “내가 있잖아”라고. 이는 광주의 고통과 4·3의 고통이 결합해 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은 제주 4·3과 보도연맹 사건은 너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통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사랑이라고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소설의 제목으로 짐작은 했지만, 작가의 말이 충분히 수용되진 않았다. 하지만 책의 표지 사진을 들여다보며 뭉클했다. 넓게 펼쳐진 무명천이 경하의 꿈속에서 밀려와 뼈를 휩쓸고 갈 것만 같은 바다를 감싸고, 이유도 이름도 모른 죽음을 따뜻하게, 새의 시체를 싼 것처럼 보듬고 있었다.


제주에서 16년을 살았고 밀레니엄이 시작하는 2000년에 제주를 떠났으니 딱 24년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온통 눈 속에 버스만 다닐 수 있는 제주의 중산간 길들이 보이는 듯하고, 이니셜로 표시된 고을 이름과 버스가 돌아가는 모퉁이까지 알 것 같았다. 제주를 떠난 후 나의 이메일 비번은 ‘제주도가자’의 알파벳에 그해 숫자를 더해 만들었다. 돌아갈 곳이고 늘 그리운 곳이었다. 고향이 아님에도 제주로 돌아가고픈 이유가 뭘까? 제주를 왜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지체없이 답한다. 날 살게 했으니까! 제주의 자연과 노동, 4·3이 내 설 곳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집중해 보려 애쓰긴 했지만 내내 제주에 대한 그리움으로 읽었다. 하지만 4·3에 접근하는 작가의 표현과 마음에는 공감이 많이 갔다. 칼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같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을 순 없고 직면해 크게 말할 수도 없는 마음을 광주가 고향인 나는 너무 잘 알 듯하다. 감히 4·3에서의 3만 명, 보도연맹 사건에서의 20만 명의 죽음을 마주 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4·3을 경하가 아닌 인선의 얘기를 통해 전달하는 답답함도 그런 의미로 이해했다.


임삼숙|4·3문학회 문집|북 리뷰|

임삼숙은 광주가 고향이고, 제주에서 16년을 살았다. 제주의 땅과 색깔을 좋아하고, 제주말 '무사'를 좋아한다. 제주를 그리워한다.

[옮긴이 註]

1) 성기다(形) : ①물건의 사이가 뜨다. ≒성글다.

2) 속솜허다 : 입을 다물다. 아무 말도 안 하다. ≒속슴허다. 속숨하다. 속심허다. 좀좀허다.

4·3문학회는, 문학을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서울 지역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회원들이 주축이 된 『화산도』 읽기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2021년부터는 4·3관련 자료와 작품 전반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확장하고. 이름을 ‘4·3문학회’로 바꿨다. 월 1회 정기모임을 8년째 이어 가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이고 회장은 양경인, 좌장은 김정주가 맡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진혼제를 다녀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