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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Nov 07. 2024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평

고명철 교수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①

[특별기고] 유명 소설가 한강의 4.3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판적으로 읽는 이유  
-2024년 10월 7일 <제주의 소리>    
국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최근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한강. 그가 2021년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는 제주4.3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제주 독자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4.3을 널리 알리는 의미에서는 반가운 창작이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4.3을 수난사 중심으로 바라봤다는 비판적인 입장도 나온다. 제주 출신 문학평론가 고명철의 분석이 그러하다. [제주의소리]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고명철 평론가의 평론을 연재한다. 4.3 문학, 나아가 4.3 예술이 더 높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번 평론은 반년 간 ‘지구적 세계문학’(2024년 상반기호)에 발표된 글이다. [편집자 주]   


1. 유럽 중심의 문학이 주목하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판하며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의 프랑스어 번역작 ‘불가능한 이별’(최경란·피에르 비지우 옮김)이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을 포르투갈 작가 리디아 호르헤와 2023년에 공동수상하였다. 2016년 ‘인터내셔널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그 이듬해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이 ‘메디치 문학상’ 외국문학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한강에게 이번 수상은 그의 문학이 거둔 커다란 성취가 아닐 수 없다. 한국 독서계에 잘 알려진 밀란 쿤데라와 움베르토 에코도 이 상을 수상한 적이 있듯, 이번 수상 소식은 한강의 문학이 세계문학의 그 어떤 무엇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여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세계문학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적 성찰을 수행하도록 한다.      


그러면, ‘작별하지 않는다’가 수상하게 된 이 작품의 특장(特長)은 무엇일까. 프랑스를 중심으로 소개된 외신 보도를 종합해보면,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것은 이 작품이 꿈과 현실 사이의 매혹적인 연속체로 독특하고 신빙성 있는 정신적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특히 눈의 이미지가 거느리고 있는 시적 산문은 20세기 한국 역사의 정치적 폭력의 기억을 응시하고 피해자를 향한 애도의 윤리를 재현하고 있는, 기억과 기다림에 관한 소설의 매혹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심사평을 바탕으로 한 유럽 문학계의 대체적 견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여기 세계문학의 헤게모니를 지배하고 있는 유럽 중심의 문학계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대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것은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서사의 시공간을 몽환적이면서 비의적인 시적 산문으로 작품 속 인물들에게 가해진 전대미문의 역사적 대참사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는 애도의 서사에 충실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애도의 서사’로 수렴되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20세기 한국 역사의 정치적 폭력은 제주 4.3사건을 진앙으로 한 한국전쟁 무렵 국가폭력의 비극적 대참사인바, 그렇다면 작가가 이 소설에서 ‘애도의 서사’를 힘겹게 추구하는 도정에서 악전고투해야 할 이들 역사에 대한 작가의 산문정신의 분투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것은 달리 말해 해당 대참사의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를 마주하고 그것을 해석하면서, 그 역사의 수난(자)에 대한 고통과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글쓰기를 넘어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애도의 서사’를 수행했으면 하는 비평의 욕망에 이어진다. 이것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가 5.18광주민주화에 대한 서사를 진전시킨 문학적 성취를 보인 것을 상기할 때 그의 문학에 대한 자연스러운 비평의 욕망이다.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가 분명 작품 서두에서 ‘소년이 온다’와 절연되지 않은, 오히려 ‘소년이 온다’의 서사적 분투를 바탕으로 한강의 또 다른 역사적 진실을 향한 글쓰기임을 암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¹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에둘러가지 말자.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실, 이 글은 ‘소년이 온다’를 계기로 한강의 문학이 그 이전의 서사보다 진전된, 말하자면 구미 중심의 소설 미학으로부터 환골탈태함으로써 구미 중심의 세계문학과 다른,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문학의 새 지평을 모색·추구·실현할 수 있는 한강의 문학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서 비평을 수행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좀 더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비판의 초점은 크게 두 측면이다.²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미학적 성취에 대해 유럽 문학계는 ‘애도의 서사’의 힘을 주목한다. ‘애도의 서사’가 자아내는 문학적 진실과 그 치유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자칫 ‘애도의 서사’가 지닌 역사의 약소자를 향한 연민의 정동이 과잉된 나머지 정작 마주하고 분투해야 할 역사의 파행과 사건들의 고갱이를 ‘애도의 서사’로 가둬놓을 수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역사의 대참사를 겪은 수난(자)을 응시하고 곡진하게 ‘애도’하되, 결코 망각하거나 둔감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를 웅숭깊게 성찰하는 작가의 역사적 시선이 수행하는 소설의 힘이다.      


즉 역사를 살아내는 작가의 산문정신과 그 악전고투의 서사적 실천이 길어 올리는 소설의 힘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유럽 문학계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나오는 4.3사건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보인다.      

그들에게 4.3사건은 지구상 도처에서 자행되(었)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아시아적 사례에 불과할 따름이듯, 제1, 2차 세계대전 와중 유럽에서 목도한 숱한 죽음과 제노사이드의 지옥도(地獄圖)와 현상적으로 다를 바 없는 대참사 중 하나로서 4.3사건에 대한 ‘애도의 서사’의 미학이 얼마나 정교하게 실현되고 있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이를 거칠게 얘기하면, ‘작별하지 않는다’를 향한 유럽 문학계의 상찬은 유럽의 문학(제도)에서 벼려낸 미학을 아시아의 작가가 ‘애도의 서사’로서 어떻게 잘 재현하고 있는지를 부각한다. 아울러 그들에게 작가의 역사적 비판적 해석과 그 문학적 분투는 그리 중요한 문학적 사안이 아니다. 그들은 제국의 역사를 경험하였고, 이것의 유무형의 문학 유산을 그들 스스로 세계문학의 제도(각종 문학상 수여제도)로 정립하는 일에 충실히 자족할 따름이다. 여기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유럽 문학계를 비판하는 비평의 역할도 수행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각주]

1) ‘작별하지 않는다’의 서두는 작중인물 ‘경하’의 몽환적 꿈으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벌판에 심겨진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흡사 묘지를 연상시키는데 벌판의 끝은 밀물이 밀려오는 바다이며 꿈 속 ‘나’는 검은 통나무들 뒤에 있는 무덤들이 차오르는 물에 잠길 것을 걱정하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대해 자조(自嘲)한다. 그런데 “그 꿈을 꾼 것은 2014년 여름, 내가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그후 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꿈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았다.”(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11쪽)는 데서 유추할 수 있듯, 한강에게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와 단속(斷續)적 맥락으로 이해되는 작품이다.     


2) 사실, 나는 한국문학의 성과와 한계를 「비평, ‘새로운 세계문학’으로서 ‘K­픽션’을 전략화하기」(‘오늘의 문예비평’ 125호, 2023년 여름·가을호)에서 세계문학의 시각으로 논의한바, 이 작품이 갖는 ‘애도’의 재현 윤리가 갖는 4.3(문학)에 대한 상투적 접근을 비판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핵심은 예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 비판적 논의를 심화 확장한 것이다.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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