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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Nov 09. 2024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느껴지는 낯익은 서사와 식상함

고명철 교수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②

[특별기고]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②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느껴지는 낯익은 서사와 식상함
-2024년 10월 8일 <제주의 소리>     
국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최근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한강. 그가 2021년 발표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는 제주4.3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제주 독자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4.3을 널리 알리는 의미에서는 반가운 창작이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4.3을 수난사 중심으로 바라봤다는 비판적인 입장도 나온다. 제주 출신 문학평론가 고명철의 분석이 그러하다. [제주의소리]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고명철 평론가의 평론을 연재한다. 4.3 문학, 나아가 4.3 예술이 더 높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번 평론은 반년 간 ‘지구적 세계문학’(2024년 상반기호)에 발표된 글이다. [편집자 주]     


2. ‘애도의 서사에 가둬놓는 4.3사건그 재현의 윤리

‘작별하지 않는다’가 ‘불가능한 이별’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되었을 때 2023년 8월 30일 인터넷판 일간지 ‘르 몽드’에는 이 신간을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강의 ‘불가능한 이별’을 소개하는데, 2018년 4.3 7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열린 야외 기념 공연 중 사진 한 컷이 한강과 ‘불가능한 이별’과 함께 기사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신간을 발행한 출판사와 이를 보도하는 ‘르 몽드’도 이 작품이 제주 4.3사건과 긴밀히 연동돼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기사문의 제목을 이루는 열쇳말―‘폭력’, ‘역사적 악몽’―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만큼 출판사와 일간지는 한강의 ‘불가능한 이별’의 바탕에는 4.3사건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는바, 작가 한강이 이 역사와 어떠한 서사적 응전을 펼쳐나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프랑스 주요 언론의 관심은 시쳇말로 “딱 이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럽 언론의 관심은 서구의 유수 문학상 수상자이자 유력한 후보 작가로서 곧잘 언급되곤 하는 아시아의 한 작가가 아시아의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서구의 문학이 갈고 다듬은 미학의 유산을 자신의 문학 세계로 어떻게 잘 소화해내고 있는지, 그리하여 서구의 미학을 좀 더 새로운 차원에서 어떻게 전유하고 있는지 그 새로운 진취적 노력에 대해 미학적 차원에서 포용적·시혜적·진보적 모습을 보일 따름이다.    

 

이것은 작중인물 “경하의 몽환적이고 추모적인 여정은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눈부신 새로운 인식의 세계이자, 가공할만한 감성적 재현이다.”는 8월 30일자 ‘르 몽드’ 기사문에서 드러난다. 말하자면, 유럽의 문학계가 관심을 갖는 것은 4.3사건의 역사에 대한 작가의 웅숭깊은 해석과 그에 대한 서사적 응전보다 역사의 대참상을 겪은 피해(자)에 대한 기억과 추도를 향한 여정, 즉 애도의 윤리를 성실히 재현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 문학계가 그토록 높이 평가하고 있는 한강의 ‘애도의 서사’가 결여하고 있는 점을 외면해서 곤란하다. 왜냐하면 작가의 4.3에 대한 세계인식, 즉 4.3 안팎의 정치사회 및 문화지리에 대한 총체적 세계인식이 바탕을 이룸으로써 기존 4.3문학이 놓쳤거나 접근하지 못했거나 혹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4.3을 새롭게 해석하는 서사적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원작과 번역작 모두 4.3문학을 ‘차이 속의 반복’이란 낡은 프레임으로 4.3문학(제도)에 가둬놓는 게 아니라 4.3이 지닌 역사적 진실을 늘 새로운 서사로 탐구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게 된다.      


작중인물 ‘경하’는 제주에서 목공일을 하다 손가락이 절단돼 봉합 수술을 받으러 서울에 온 친구 ‘인선’의 갑작스런 부탁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한겨울 폭설을 헤치고 그의 집에 가서, 그의 가족이 4.3의 피해자였다는 사실과, 4.3 당시 국가권력에 의해 수감된 숱한 제주의 수형인들의 존재와, 제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6․25전쟁 무렵 보도연맹 사건으로 인해 행방 불명 내지 집단 학살을 자행한 국가폭력의 참상을 접하게 된다. 

    

이것을 접하는 형식 중 증언록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강은 각종 증언록의 부분을 있는 그대로 직접 인용함으로써 해방공간과 6․25전쟁 속 민중의 참상을 최대한 당사자의 목소리로 재현한다. 이러한 재현의 서사는 해당 시기의 폭력적 근대를 전경화(前景化)함으로써 그 전대미문의 폭력에 압살당한 민중의 죽음을 최대한 객관세계로 드러내고, 지배권력의 전횡 속에서 역사의 타자로 밀려난 무고한 희생자의 당사자성이 지닌 주체성을 회복하는 ‘애도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한강 특유의 비의적 문체는 ‘애도의 서사’를 최적화함으로써 민중의 참담한 상처와 고통을 근원적으로 위무해주고 치유해주는 재현의 윤리를 아주 충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를 관통하는 4.3에 대한 ‘애도의 서사’는 4.3문학의 낯익은 서사와 식상함을 동반한다. 비록 유럽 문학계는 이 애도의 여정이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몽환적 세계 속에서 삶의 세계로 틈입하는 죽은 자의 목소리의 현현, 그 과정에서 역사의 망각과의 투쟁을 아우르는 시적 산문의 매혹으로 주목하지만, 기실 이러한 마술적 리얼리즘은 어떻게 보면 문학적 오리엔탈리즘으로서 상투성을 띤다.    

 

이것은 4.3문학()의 성취에서 알 수 있다.

현기영의 단편 「순이 삼촌」(1978) 이후 축적하고 있는 4.3문학은 그 대부분이 4.3에 대한 민중 수난사적 접근에 기반한 ‘애도의 서사’에 수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4.3문학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데에는 ‘애도의 서사’가 지닌 상투성과 낯익음이 4.3을 자칫 대한민국이란 국민국가의 역사의 박물지(博物志)와 제의화(祭儀化)로 기능할 수 있어, 4.3에서 미처 발견하고 주목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이 휘발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달리 말해, 4.3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국가폭력의 과잉으로 수난을 당한 제주 민중에 대한 ‘애도의 서사’로서 재현하는 윤리를 넘어 해방공간에서 평화적 통일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꿈꿨던 제주 민중의 정치적 상상력을 탐구하는 ‘재현의 정치’가 절실히 요구됨을 말한다.³⁾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걸었던 기대가 너무 컸는지, ‘소년이 온다’에서 보였던 5․18문학을 진전시킨 재현의 정치로서 서사적 성취가 4.3을 다룬 이 작품에는 함량 미달이다. 대신, ‘작별하지 않는다’의 작중인물들은 제주의 중산간 한겨울 폭설이 4.3의 역사를 알레고리화 하듯, 비록 좀처럼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상처와 고통 속에 있지만, 사라지고 죽어간 뭇 존재들과의 영원한 작별을 부정하는 ‘지극한 사랑’의 낭만적 정동을 상기하는 것으로 작품을 끝낸다.⁴⁾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러므로 4.3에 대한 새로운 재현의 정치적 서사가 유보된 채 4.3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차이 속의 반복’을 ‘애도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 재현의 윤리적 서사에 충실할 뿐이다.   


[각주]

3)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정명(正名)을 추구해온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보고사, 2015, 한국어 번역 완간)는 ‘4.3혁명’의 문학적 상상력을 개진해왔다. 아울러 최근 현기영의 대하소설 ‘제주도우다’(창비, 2023)에서도 현기영은 ‘4.3항쟁/혁명’의 시각에서 ‘애도의 서사’가 어떤 정치 윤리적 재현에 진력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4) 분명, 이것은 ‘작별하지 않는다’의 서사적 매혹이되, ‘애도의 서사’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간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황정아는 이 작품이 지닌 ‘재현의 윤리’가 노정한 소설 주체의 감정의 과잉의 문제점을 짚어낸다. “오로지 고통의 강렬함에 의지하는 방식은 강렬한 감정일수록 진실을 담보한다는 도식에서나 감정의 당사자인 ‘나’의 문제 곧 자기 반영성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에서나 센티멘털리즘의 논리 안에 있다.”(황정아, 「‘문학의 정치’를 다시 생각하다」, ‘창비’, 2021년 겨울호, 26쪽)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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