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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Dec 12. 2024

한강의 노벨 강연(Nobel Lecture)

강연 주제 <빛과 실>에 부쳐

2024년 12월 11일


[한강의 노벨 강연 -'빛과 실'에 부쳐]
여의도에서 성난 촛불이 일렁이던 밤
스웨덴 '한강을 위한 찬사'의 시간 흐르고
7일(현지시각)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빛과 실’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사랑에서 시작한 작가의 여정, 폭력을
헤치고 거부하고 끝내 사랑으로 돌아와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스웨덴 현지시각 12월 7일 오후 5시 스톡홀름의 한림원 2층 그랜드 홀에서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한국시각으로는 친위 쿠데타가 일어난 지 나흘째 접어든 8일 새벽 1시였다.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세계인들은 실시간으로 한강 작가의 노벨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이 시간, 한국의 내란 수괴 혐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부결에 따른 성난 촛불시위 장면도 전파를 타고 있었다. ‘서울의 밤’이 스톡홀름의 저녁을 향해 보낸 한강의 시 한 편.


어두워지기 전에

그 말을 들었다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지옥처럼 바싹 마른 눈두덩을

너는 그림자로도 문지르지 않고

내 눈을 건너다봤다

내 눈 역시

바싹 마른 지옥인 것처럼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두려웠다)

두렵지 않았다.

(한강의 시 ‘어두워지기 전에’ 전문)     


마츠 말름 사무총장과 함께 한강이 입장하고 바로 이어 바흐의 여섯 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C단조가 그랜드홀에 가득 퍼졌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바흐를 듣는 한강은 연주를 듣는 내내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이따금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기도 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한강은 바흐에 능통한 거장 글렌 굴드(Glenn Gould)가 연주한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배요섭의 연출로 연극 무대에 올린 작품 제목이 '휴먼 푸가'였다. 그런 점에서 스웨덴 첼리스트 크리찬 라르손의 연주는 바흐 애호가 한강 작가를 위한 스웨덴 한림원의 배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이 수상 이유에서 언급하지 못한 어느 부분을 채워보려는 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강의 ‘시와 노래’를 말이다.     


한강은 가수로 공식 데뷔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작사 작곡하고 몸소 노래한 음반을 내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셈이다. 삶이 궁해지거나 서럽고 지쳤을 때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노래한 ‘나무는’, 그리고 노래 중간부터 나오는 첼로 선율이 듣는 이의 등을 쓸어주는 것 같은 노래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는 특별하다. 잔잔한 목소리로 가만가만 부른 그의 노래 열 곡은 듣는이에게 위로를 주고 힘든 세상 살아나갈 힘을 북돋아 주는 노래들이다.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강은 소리를 듣는 능력과 더불어 노래를 부르줄 아는, 음감과 가창이라는 양면의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작가이다. 자신이 느낌을 남다르게 소화해 표현한 감성의 세계는 그의 시와 노래, 그리고 산문과 소설에 시적 이미지로 때로는 은유로 나타난다. 한강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하고 가만가만하지만, 성근 눈이 녹아 스며들 듯 우리 가슴 깊숙이 새겨진다. 노벨위원회가 수상 이유에서 언급하지 않은 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그의 노래 CD가 수록된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가 그래서 특별하다.   

   

15분여에 걸친 첼로 연주가 끝나고 나지막한 한국말로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로 시작하는 작가의 강연이 시작됐다.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은 한국어로 진행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한강의 이날 ‘노벨 강연’은 10일 공식 시상식 전에 열리지만 사실상 ‘수상소감’이며 노벨상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여겨진다.


한강은 그가 써 온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실처럼 연결해 우리에게 펼쳐 보였다. 그는 자신이 쓴 첫 문학작품으로 1979년 4월 여덟 살일 때 지은 두 행짜리 두 개의 연이 이어진 4행시를 소개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은 지금껏 ‘쓰는 사람’이 되어 걸어온 여정이란 여덟 살 소녀가 물었던 사랑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작업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최근의 마지막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소녀의 질문은 ‘빛을 내는 실’처럼 이어지며 새로이 묻고 대답한 것이다. 때 묻지 않은 여덟 살 소녀가 지었던 4행시는 그가 지금까지 이룬 작품의 발원지였다. 그러나 사랑은 소녀의 순결한 생각과 같지 않음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증거 한다. 그들이 살며 맞닥뜨리는 것은 사랑이 살아 숨 쉴 수 없게 만드는 온갖 폭력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인선은 어머니를 회상하며 경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하며,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를 물었던 세 번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생각했던 <바람이 분다, 가라>.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며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라고 묻는 <희랍어 시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으며,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를 깨우치던 <소년이 온다>.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를 되물은 <작별하지 않는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고비마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실‘처럼 이어져 여기까지 우리를 이끌고 왔음을 이야기했다.     


역사상 열일곱 번째 계엄령은 가까스로 해제됐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내란의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탄핵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젊은이들이 벌인 축제 같았던 촛불집회의 잔상이 극장 스크린처럼 천장에 펄럭였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스톡홀름의 한강은 유튜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글쓴이 김양훈은 제주제일고와 고려대학교(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환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후배와 함께 조그만 공장을 10여 년 운영하며 험한 세상을 경험한 것이 좋은 약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 읽고 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젊어서 시도 쓰고 짧은 소설도 끄적여 보았지만, 학교 교지에 몇 번 실린 것 말고는 남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프리랜서 작가란 타이틀로 한라일보 정기칼럼 <김양훈의 한라시론>을 2018년 이후 지금까지 연재하고 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3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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