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鋪道)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薄明)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내
생생한 혈관을, 고동소리를
2025년 1월 4일, 「12월 내란」이 일어난 지 한 달을 넘겼다. 내란수괴는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를 받으며 제 각시와 함께 단잠을 자는데, 젊은 시민들은 차디찬 추위 속에 날 밤을 새운다. 그들은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에서 내란수괴 체포를 목이 터져라 밤새 외친다. ‘눈 뜬 슬픔’이 밤새 씻기워지기라도 했는가? 아니다. 저 광포하고 사악한 악마와 마녀가 한남동 저기 언덕 아래로 끌려 내려올 때에야 청춘의 생생한 혈관에 빛이 돌 것이다. 우리의 첫새벽이 동터 오를 것이다. 그리 멀지 않았다.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