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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와 물음표

한강의 『희랍어 시간』 中

by 김양훈
[책 속에 숨은 한마디]
쉼표와 물음표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 오른다.


검은 빗방울에 싸인 모국어 문자들.


둥글거나 반듯한 획들, 짧게 머무른 점들.


몸을 구부린 쉼표와 물음표.


잠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찾아든, 위태하게 부서지는 꿈속에서 그는 두 사람을 본다.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다. 노쇠 때문에 낮게 떨리는 목소리로 백발의 남자가 묻는다. 용서를 구하듯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 174-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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