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론(人神論)의 문제
『러시아 문학의 넓이와 깊이』;주제로 읽는
새로운 러시아 문학사 by 조주관
죄와 벌의 경계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V)
인신론¹의 문제
종교철학²에 대한 담론의 지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문제를 부각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은 신앙(믿음)을 기초로 이루어진 관념이다. 소설에서 유신론은 신인(神人, богочеловек)의 문제로 부각하고, 삶과 선(善)의 기본적인 관념으로 간주한다. 신인은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부여한 원초적인 자유 속에서 신의 자유에 도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최고의 선을 선택하게 된다. 반면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은 불신(不信)을 기초로 이루어진 이념으로 삶보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는 악의 관념으로 발전하며 궁극적으로 인신(人神, человекобог)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신인론이란 신이자 인간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의미하고, 반면에 인신론이란 신의 죽음을 상정하고 인간이 신임을 선포하는 완전히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의미한다. 인신은 반(反)그리스도처럼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권위 속에서 스스로가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신은 자유를 부정하고 최상의 선을 부정한다. 인신은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키는 합리주의 산물이자 무신론적 이기주의 극단이다. 인신은 단지 공리주의와 사회주의에서 내세우는 평등이라는 지상의 행복만을 추구한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명성을 얻기를 원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위하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그 재능이 인정받게 되면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항하여 자기 스스로 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라스콜니코프의 초인사상은 인신론과 맥을 같이한다. 인신론자 라스콜니코프는 신의 이름으로 또는 민족의 이름으로 대량살인을 저지르는 테러리스트와 별 차이가 없다. 작가는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를 대립시키고, 죄와 악의 시발점을 신의 판단에 대한 인간 의지의 개입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인간은 신의 절대성에 대항하는 인신의 관념을 부각한다.
기독교적 세계관, 즉 신인론의 대표적인 인물은 선과 겸손의 화신 소냐이다. 작가는 소냐를 통해서 종교적 신념을 구현시키고 ‘고난을 통해 구원과 정화’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소냐는 진실한 신앙과 ’어머니-대지‘ 사상³에 뿌리를 둔 인물이다. 그녀는 살인자에게 오만한 정죄의 돌을 던지지 않고, 살인자의 고뇌를 이해하고 긍휼하게 여긴다. 소냐는 자신의 삶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라스콜니코프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소냐가 보여주는 종교적 진실의 의미는 희망이다. 철학은 인간 이성의 한계와 인간 행위의 의미,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는 가운데 진실을 추구한다. 이 주장은 인간의 존재와 행위는 완전히 의미가 없다는 견해의 철학자에게도 그대로 해당한다. 소냐는 죄인이 양심에 따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화해할 때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계속함)
[옮긴이 註]
1) 인신론(人神論)은 인간과 신(神)을 동일시하거나 인간을 신격화하는 철학적·종교적 관점을 말한다. 인신론에는 Anthropotheism, Theanthropism라는 2가지 관점이 있다.
Anthropotheism
신을 인간화하는 종교적 관점이다. Anthropo(인간) + Theism(유신론)
유대교, 기독교, 사탄교, 신토, 이슬람교, 힌두교 등 대부분 종교의 신들과 고대 그리스·로마 등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인간의 형상을 하므로 인신론에 속한다.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주장은 신을 인간화시켜 인간과 신을 같은 종(種)으로 동일시한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 신화 사실설(Euhemerism)이 있다.
교주나 교황을 신격화하는 것을 신인합일(Theosis)이라고 한다. 사이비 기독교, 동방 정교회 등 일부 인신론 종교에서는 신의 은총을 통해 인간이 신격화/신성화 한다고 믿는다.
Theanthropism
인간을 신격화하는 무종교·철학적 관점이다. Theo(신) + Anthropo(인간)
특정인 혹은 특정 인종, 인간종(인류)만을 마치 신처럼 우월적인 존재로 여겨(신격화) 인류가 아닌 다른 지적생명체(비인간 인격체), 타인·다른 인종을 하찮게 여기고 차별·멸시하는 태도이다.
무종교 혹은 반종교인들 중 일부는 자칭 무신론자라고 착각하는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이분법적 오만함으로 인간을 모든 종 중에서 특별한 존재로 여겨 신격화하는 것은 오히려 유신론자이다.
무종교 인신론의 대표적인 예로 무종교(자칭 무신론) 국가인 소련·러시아의 스탈린·푸틴 체제, 중공의 마오주의/시진핑 체제, 북괴의 김씨 왕조 주체사상, 일부 유명인에 대한 우상화가 있다.
이들 무종교인 중 일부는 종교적 인신론자들처럼 영혼 같은 인간의 육체 안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망상하기도 한다. 이를 반증하는 게 죽은 독재자/유명인 시신을 미라화하고 우상숭배 하는 것이다.
비판
신을 인간과 결합하거나 동일시하는 태도는 인간중심주의(인간우월주의)적이며 이는 권력욕과 유사한 오만·탐욕적인 심리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 혹은 특정 인간, 자기 종/집단, 자기 종과 닮은 형상의 가상의 신을 만들어 우상숭배 혹은 우월시 하는 것은 나치·일제 등 전체주의국가의 인종차별(특정 인종만 우월시) 행태와 별 차이 없으며, 이는 독재, 전쟁, 학살, 착취(노예제, 강제노동), 약탈, 남획, 과소비(과식), 환경파괴(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이다.
이들은 "사람 중심",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걸어 인본주의, 인간중심주의(인간우월주의)를 내세우는데, 일부는 오만하고 욕심 많은 독재자만 신격화하고 나머지 대부분 인간은 차별해서 자유를 박탈하고 노예로 착취하기도 한다. <위키백과>
2) 종교철학(宗敎哲學/Philosophy of religion)은 종교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다루는 학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란 특정 교리를 믿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란 신, 궁극적 실재, 종교적 경험, 믿음, 악과 고통, 사후세계 등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쉽게 말해, "신은 존재하는가?", "믿음은 이성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종교는 도덕과 어떤 관계인가?" 같은 질문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학문이다. 신학이 믿음을 전제로 삼는 내부적 사고라면, 종교철학은 믿음의 합리성을 이성으로 검토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3) 대지모신(大地母神, mother goddess)은 모성, 생식능력, 창조성, 또는 대지의 풍부함을 상징·대표하는 여신이다. 땅 그 자체나 자연 세계와 동일시될 때는 어머니 대지(Mother Earth, Earth Mother)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대지모 사상(大地母 思想)은 땅(大地)이 곧 어머니(母)라는 생각으로, 과거 농경 사회에서 모든 생산물은 땅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땅은 생활의 터전인 동시에 만물이 생성되는 근원이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무한한 베풂을 받는 것과도 같아 땅을 어머니처럼 여기며 신성시했는데, 이러한 전통적 사상을 대지모 사상이라고 한다. 풍수지리 사상이 땅과 지형을 중시하고 이것이 인간의 삶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대지모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