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미학
『러시아 문학의 넓이와 깊이』
주제로 읽는
새로운 러시아 문학사 by 조주관
죄와 벌의 경계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VII)
어리석음의 미학
도스토옙스키는 성서를 최고의 책이라 말한다. “얼마나 굉장한 책인가. 얼마나 굉장한 교훈이 담겨 있는가! 성서는 정말로 굉장한 책이고, 굉장한 기적이며,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힘 또한 굉장하다.” 그의 소설에는 성경에 나오는 말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 역시 성경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이 많다. 사도들이 예수를 닮아 가듯이, 소냐는 예수 그리스도의 데칼코마니¹이다. 즉 그녀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데칼코마니이다. 소냐는 그리스도의 미덕을 가진 인물로, 매춘부로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지만, 결코 피해자라고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그녀는 자신을 ‘큰 죄인’이라 했다. 그녀의 몸 전체에는 그리스도적 사랑이 침윤되어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를 ‘위대한 죄인’이라 불렀다. 실제로 소냐는 위대한 고통을 경험한 ‘위대한 죄인’이다. 그녀가 성자에 가깝다는 인상은 그녀의 모든 언행으로 충분히 뒷받침된다. 그녀의 성스러움은 에필로그에서 죄인들이 ‘치료받기 위해서 그녀에게 갔다’라고 할 때 더 명백해진다. 소냐는 소설의 다른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상징적 의미의 이름을 갖고 있다. 소피아는 그리스도교와 낭만적 전통에서 ‘신성한 지혜’라는 의미이다.
소냐의 행동은 너무나 순수해서 바보스럽기까지 하다. 그녀의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소냐의 행동을 살펴보면, 절망적 상황이 소냐를 바보처럼 행동하게 했는지, 아니면 천성적으로 바보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자기희생으로 남을 구원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바보 소냐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의 행동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무거운 짐을 진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와 다르지 않다. 절망 속에서 그녀가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원초적 힘은 종교적 믿음뿐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마음을 가진 소냐에게 절망은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었다. 소냐는 이론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실천적 지혜를 보여 준다. 소냐의 바보스러운 행동의 기원을 우리는 정교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로비디²’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바보 성자, 성스러운 바보, 또는 성(聖) 바보’로 번역되는 ‘유로디비’란 중세 러시아의 정교 전통에서 ‘세상 속에서는 바보스러우나 영적으로는 가장 지혜로운 하느님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는 고행자로서 방랑하며 미친 짓을 한다. 그러나 미치광이 행동은 굴욕을 통해 자신을 낮추는 행위로 간주한다. 미치광이 행위는 완전한 고독 속에서 그리스도를 완전히 사랑하기 위한 행동이다. 유로디비는 어둡고 타락한 세상에서 바보스럽다 못해 때로는 미친듯한 행동을 통해 세속적인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오히려 숨겨진 삶의 진리를 밝혀주는 사람이다. 바보스러움으로 사람들의 놀림과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유로디비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으로 존경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인들은 그들을 신앙심과 영성이 깊고 투시력과 예언적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성자로 숭배했다.
소냐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가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순종과 믿음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다. 그녀는 자기희생을 통해 타락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와의 대화에서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자신의 논리를 늘어놓으며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런데도 소냐는 중심을 잃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다. “왠지 이상한, 병적인 듯하면서도 준엄하고 강렬한 감정으로 불타오를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라스콜니코프는 그녀가 ‘유로디비’라고 단언한다.
그는 새롭고 이상한, 거의 병적이라 할 느낌을 품으면서, 창백하고 여위고 윤곽이 고르지 못한 각진 작은 얼굴을, 단호하고 힘찬 감정이 불꽃처럼 빛나면서도 선량한 푸른 눈을, 아직도 분노와 설움에 떨고 있는 그 작은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습이 점점 이상하고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유로디비! 유로디비다!’ 그는 마음속으로 단호하게 이 말을 되풀이했다.
소냐는 가족을 위해 버린 존재이다.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 자기 몸을 바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듯이, 소냐는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타인들을 위해 살아간다. 소냐는 자기희생의 화신으로서 자신을 죽여 타인을 구원해주는, 타인을 위한 존재이다. 소설에서 창녀이지만 성적인 측면에서 여성성은 배제되었으며, 라스콜니코프와의 관계에서도 남녀 간 이성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애인이라기보다는 영혼의 짝이요, 고통의 동반자이다. 소냐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병든 의붓어머니, 그리고 어린 의붓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지상의 몸’을 희생하는 천사이다. 소냐에게 부과된 고난과 희생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깊은 신앙심과 형제애 그리고 타인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함께 지려는 갸륵한 마음의 소냐는 유로디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라 해도 어리석은 자들의 맑은 영혼은 감동을 준다. 이성과 과학이 정의하는 개념·공식·법칙만으로는 유로디비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내면의 가치나 영혼의 세계를 평가할 수 없다. (<분노하는 인간>에서 계속)
[옮긴이 註]
1) 데칼코마니(décalcomanie)는 미술 화면을 밀착시킴으로써 물감의 흐름으로 생기는 우연한 얼룩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기법을 말한다. 즉,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2) 유로디비(Юродивый)-고대 루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속세의 행복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이들을 유로디비라 했다. 이들은 광인의 모습을 하고 방랑자의 삶을 살았는데, 목적은 모든 죄의 뿌리인 교만을 이겨내 내적 겸손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들은 존경을 받았으며 신과 가깝다고 여겨졌고, 사람들은 유로디비의 의견과 예언을 귀담아 듣고 두려워했다. 유로디비는 광기의 가면을 쓰고 대담무쌍하게 공동체의 권력자들을 비난했다. 예를 들어 니콜라 살로스라는 유로디비는 프스코프로 향하던 이반 뇌제와 군대를 보고 황제의 잔인성을 꾸짖었고, 이로써 프스코프 사람들의 처벌을 막고 도시를 몰락에서 구했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어리석음(그리스어: διά Χριστόν σαλότnτα, 교회 슬라브어: оуродъ, вродъ)은 금욕적인 질서나 종교 생활에 입문하여 세상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거나, 종교적인 목적, 특히 기독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의로 사회의 관습을 무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개개인은 역사적으로 "거룩한 바보"(holy fools)와 "복 받은 바보"(blessed fool)로 알려져 왔다. "어리석은"이라는 용어는 나약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의미하고, "복 받은" 또는 "거룩한"은 하나님 보시기에 무죄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어리석음"이라는 용어는 사도 바울로의 글에서 유래되었다. 사막 교부들과 다른 성자들은 동방정교 금욕주의의 유로디비(yurodivy)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바보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게 된 자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에 도전하고, 예언을 전달하고, 그들의 경건을 가리기 위해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동방 기독교
거룩한 바보 또는 유로디비(юродивый)는 동방 정교회 금욕주의의 특별한 형태인 그리스도를 위한 어리석음의 러시아적 변형이다. 유로디비는 사람들의 눈에 의도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거룩한 바보이다. 이 용어는 실수나 정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고의적이고, 성가시고, 심지어 도발적인" 행동을 암시한다.
세르게이 이바노프는 자신의 책 "Holy Fools in Byzantium and Beyond"에서 "거룩한 바보"를 "미친 척하거나, 어리석은 척하거나, 고의적인 날뜀으로 충격이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이바노프는 청중이 개인이 제정신이고 도덕적이며 경건하다고 믿는 경우에만 그러한 행위가 거룩한 바보짓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동방 정교회는 거룩한 바보들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완벽함을 숨기고 칭찬을 피하려고 자발적으로 정신 이상을 가장하면서 찬사를 피한다고 여긴다.
거룩한 바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몇 가지 특징으로는 반나체로 돌아다니는 것, 집이 없는 것,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것, 투시력이 있는 사람이나 예언자로 믿어지는 것, 항상 요점을 밝히기 위해 때로는 부도덕해 보일 정도로 파괴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인 것이 있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는 자주 "축복받은"(блаженный)이라는 칭호를 받는데, 반드시 그 개인이 성인보다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고 믿어진다는 것을 가리킨다.
동방 정교회는 이집트의 성녀 이시도라를 최초의 거룩한 바보로 기록한다. 하지만, 이 용어는 거룩한 바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에메사의 시메온이 등장할 때까지 대중화되지 않았다. 그리스어에서, 거룩한 바보라는 용어는 "살로스"(σαλός)이다.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는 우스튜크의 성 프로코피이며, 성 바실리 대성당이 이름을 딴 축복받은 바실리가 거룩한 바보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최근의 유로디비 중 한 사람은 축복받은 크세니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