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의미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나타난 ‘죄’와 ‘벌’의 의미

by 김양훈
❙기획논문❙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11호, 2019. 4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나타난 ‘죄’와 ‘벌’의 의미 -논문 저자 : 김성일 (청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초록]『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1860년대 잡계급 지식인 세대를 대표하는 전형이다. 그는 작가 자신의 동시대의 사회적·정신적 부조리에 고통받고 반항하는, ‘새로운’ 인간이자 시대의 표상으로 구상되었다. 극빈한 생활로 인해 그의 삶은 부정적 세계관과 무의미로 가득 차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결코 단순한 허무주의적 공상가는 아니다. 그는 신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인간의 전능한 이성을 자리매김하는 깊은 철학적 특징을 보여주는 비범한 인물이다. 동시에 드높은 자긍심과 절대적 고독감, 슬픔을 느낄 수 있는 낭만적 인물이기도 하다.

라스콜니코프의 범죄는 일반적인 범죄보다 훨씬 더 심오하다. 그는 단순히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범죄의 본질과 사회적 도덕을 규정해온 원칙을 살해한 것이다. 그의 사상은 인류를 비범인(非凡人)과 범인(凡人)이라는 두 가지 부류로 분류한다. 그리고 위대성이라는 모호한 기준 아래에 전자에 의한 후자의 지배를 합리화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자신이 벌인 살인이라는 ‘실험’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죄와 벌”이라는 작품 제목은 도스토옙스키 사상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여기서 ‘죄’라는 단어는 이미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라스콜니코프의 범죄의 본질은 바로 모든 경계와 규범, 그리고 도덕성을 넘어서는 것에 있다. 이로 인해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반(反) 주인공의 중요한 모토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러한 ‘넘어서기’ 모티브는 『죄와 벌』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티브는 성격상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갖는다. 어원적으로 ‘지시’, ‘충고’, ‘가르침’을 의미하는 ‘벌’ 역시 ‘죄’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개념이다. 라스콜니코프는 범죄를 저지른 후 무시무시한 도덕적 고통을 겪는다.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실행한 후 절대적 자유와 홀가분함을 느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바로 자신에게 내재한 인간적 본성, 즉 양심의 가책이었던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양심의 가책을 부정하며 전혀 뉘우침 없이 자신의 이론을 계속해서 신봉한다. 하지만 ‘경계를 넘어섬’이 귀착하는 곳은 평범한 살인자로서의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인류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극단적인 정신적 공허함일 뿐이다. 자각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분열을 거쳐야만 한다. 공식적인 진짜 형벌은 작품의 에필로그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라스콜니코프에게는 완쾌이자 부활인 것이다. 구원은 외부로부터, 또 다른 자기인 타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은 비평가나 독자의 관심을 결코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출판된 수많은 책과 논문들이 그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해석과 예술적 분석, 그의 삶과 창작의 역사 등을 다루고 있다.¹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러한 엄청난 관심은 매우 당연하다고 하겠다. 도스토옙스키는 전 인류적이고 시대 초월적인 척도의 근원적인 도덕적, 사회-미학적, 심리적 문제들, 즉 삶의 의미와 개인 존재의 목적, 행복과 그것을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가치, 인간의 정신적 방황 등의 문제를 전례 없이 날카롭게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 존재의 비밀을 이해하는 데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쳤던 것이다.²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열정이 된, 유토피아적 꿈과 그것을 즉각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 환언하면, 니힐리즘과 이타주의, 지상 낙원의 건설, 나폴레옹적인 멋진 꿈, 사랑 등의 사상에 사로잡힌 인간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독특한 생각이 극단적인 한계에 도달할 경우, 인간 내면의 파열이 일어나게 되며, 궁극적으로 죄에 이르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사상을 결코 육체와 감정과 완전히 분리된 추상적인 기호나 용어로 이해하지 않는다.³


작가는 자신의 많은 주인공을 형법적, 철학적 의미의 범죄자로 만든다. 범죄자가 도스토옙스키의 흥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독단적인 범죄 속에서 역사-철학적 혹은 도덕적 원칙이 드러나고, 그의 범죄가 여러 세대의 욕구, 오해, 병적 상태 혹은 위기 등의 징후가 될 때이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즉 존재론적, 사회적 혹은 도덕적인 법칙을 넘어서거나 넘어서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거대한 힘으로 작가의 흥미를 끄는 것은 자신의 죄악 행위를 참회하고 고통을 통해 신과 인간 앞에서 용서받기를 시도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작품에서 도스토옙스키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노력한다. ‘법의 심판 혹은 자기 양심의 심판 중 어떤 벌이 더 무서운가?’ 자신의 창작 속에서 죄와 벌의 모티브와 완전한 도덕적 파괴를 통한 인간의 부활이라는 사상이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러시아 작가는 없다. 이 문제는 그 보편적 중요성 때문에 매우 오랫동안 끊임없는 학문적 논쟁의 쟁점이 되어왔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소설 『죄와 벌』에는 죄와 벌의 개념에 대한 예술적, 도덕적 원칙이 형성되어있다. 이 개념은 후기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사상과 경험의 결산으로 자신의 전 생애의 사명이 된, 최후의 대작인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가장 심오하게 실현되었다.


이처럼 제기된 문제와 내용을 토대로 본고에서는 이 작품의 제목이자 주제인 ‘죄’와 ‘벌’의 사상적-도덕적 내용의 특성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죄의 주체이자 동시에 벌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형상과 그의 사상 세계를 살펴본 후 본격적으로 논제를 해평하고, 이를 통해 『죄와 벌』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전하고자 하는 문학적 진리의 모습을 그려내 보고자 한다.

2. 라스콜니코프의 형상과 그의 사상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는 자본주의로의 변화 과정을 겪게 된다. 농촌은 황폐해지고, 민중은 빈곤층으로 전락하였으며, 사회적 모순은 더욱 첨예화되어 필연적으로 범죄율은 증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러시아 작가들의 다양한 소설과 희곡들 속에서 범죄 테마가 폭넓게 확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 작품 주인공의 행위 기준이 된 것은 기독교 계율인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통하지 말라” 등이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계율을 위반하고 죄를 범하면서 필연적으로 사회와 갈등을 겪게 된다. 『죄와 벌』의 로지온 라스콜니코프,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포즈드느이셰프, 『어둠의 힘』의 니키타, 『므첸스카야 현의 맥베드 부인』의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 이전에 이미 『죽음의 집의 기록』(1862)에서 죄와 벌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⁴ 그러나 이 작품의 오체르크적 특징으로 인해 작가는 죄와 벌의 문제를 더욱 깊이 연구하고 세밀한 심리적 인물 유형을 창조할 수 없었다. 축적된 오체르크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가는 더 충실한 예술적 형식, 즉 소설 장르 속에서 이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착수한다. 옴스크 형사범 감옥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받았던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던바, 죄와 벌의 주제는 이후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예술적으로 구현된다. 범죄적 인상을 바탕으로 창작된 그의 첫 번째 철학적, 도덕적-심리적 소설이 “죄와 벌”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것은 특기할만하다. 작가가 아직 징역을 살던 시기에 이 소설은 구상되었다. 형 미하일에게 보내는 편지(1859년 10월 9일 자)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12월에 나는 소설을 시작할 거야… 기억나? 내가 형에게 말했던 어떤 고백-소설이. 말하자면, 나는 내가 아직 겪어야만 하는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다음, 그것을 쓸 생각이야… 온통 열정으로 가득 찬 내 가슴은 이 소설을 굳게 믿고 있어. 유형지에서 나는 쓸쓸함과 자기와해의 고통스러운 순간에 판자 침대에 누워 이것을 구상했어.”⁵


옴스크 형사범 감옥의 죄수들과 매일 접촉하며 들었던 그들의 범죄 이야기에 대한 지식과 그들의 행동 및 성격에 대한 관찰 등은 명백히 소설 구상의 동기로 깊이 작용했다. 이른바 이곳, 감옥에서 평범한 러시아인들, 더 정확히 말해 그들 중 가장 “질 나쁜” 사람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지내면서 도스토옙스키는 민중의 영혼을 인식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의 “거친 모습 속에 감쳐진 황금”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을 때, 희열을 느꼈다. 따라서 유형지에서 작가가 구상한 이 소설-고백은 신적 진리의 본질적인 규범을 파괴했다가 종국에는 참회하게 되는 인간의 여정을 관찰하는 것이 되어야만 했다.


이외에 소설 구상에 영향을 준 사건이 여럿 있었다. 1863년 모스크바의 몇몇 혁명 지향적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이 “이슈찐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조직을 결성했다. 이 조직의 지도자인, 별로 부유하지 않은 상인의 아들인 이슈찐(Н.А. Ишутин)은 강인하고 단호한 성격의 뛰어난 비밀 공작원이었다. 이 그룹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회주의 원리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사회 재건을 위한 투쟁 방법 중 하나가 개인적인 테러였다. 이를 위해 특별 비밀조직인 “아드”(Ад)가 창설되었고, 1866년 4월 4일 아드의 참가자 중 한 사람인 드미트리 카라코조프가 황제 암살을 시도했다.


1865년 9월 신문 “목소리”(Голос)에 상인 아들 게라심 치스토프가 강탈을 목적으로 두 명의 중년 여성인 식모와 세탁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실렸다. 살인 무기로 쓰인 것이 바로 도끼였다. 9월과 10월 이 신문은 저당잡고 돈을 빌려주었던 프랑스 국민인 베크와 그의 조수 레온찌예바의 살인 사건을 보도했다. 살인자는 소설의 미래의 주인공처럼 좋은 취향을 갖고 성장한, 19세의 그루지야 공작 미켈란제였다. 이러한 공개된 범죄 이야기가 어느 정도 소설 『죄와 벌』의 창작 과정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것의 몇 가지 특수한 세부 요소들이 작품의 기본적인 예술적 내용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1866년 소설 『죄와 벌』의 첫 번째 장이 발표되었을 때, 모스크바 대학의 대학생 다닐로프가 강탈을 목적으로 고리대금업자 포포프와 그의 사무원 마리야 노르드만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도스토옙스키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두 가지 대표적 유형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뭔가 완전히 특별한 유형, 즉 이론에 따라 행동하는 사상적 살인자를 창조했다. 이 이론은 순수한 형식적 측면에서 볼 때 이슈찐의 생각 속에 들어있는 혁명적 이론도, 다닐로프의 방식이 갖고 있는 부르주아적-타산적인 이론도 아니었다. 로만 벨로우소프는 19세기 프랑스의 범죄자, 피에르 라세네르를 라스콜니코프의 원형 중 하나로 본다. 그는 도둑으로서 도박과 위조에 몰두했으며 군대를 탈영하여 결투를 벌이기도 했고, 마침내 살인자가 되었다. 그는 아주 작은 양심의 가책도 동정도 없이, 태연하게 살인을 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스스로를 “사상적” 살인자인 척했으며 단두대 앞에서는 사회에 의해 박해받은 수난자의 모습을 취했고 또한 스스로를 자신이 그것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부당한 사회와의 투쟁자의 모습으로 가장하려고도 했다.


이러한 관심과 영향을 바탕으로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구상의 실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1865년 독일의 비스바덴에 머무르면서부터였다. 1865년 9월 초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통보」 편집자인 М.Н. 카트코프에게 자신의 미래의 작품 출판을 제안하면서 그 기본적인 윤곽을 보여주었다.


“배경은 현재이며 동시대의 사건이다. 대학에서 제적당한 한 젊은이가 있는데 평민 계급 출신으로 극심한 궁핍 속에 살아간다. 온갖 관념들 속에서 불안하게 허우적대던 그는 경망하게도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어떤 이상한 미완의 사상에 푹 빠져 자신의 비루한 상황에서 단번에 벗어날 것을 결심한다. 그는 9등 문관의 아내로 돈놀이를 하는 한 노파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그 노파는 어리석은 귀머거리로 병약하지만 탐욕스러워서 터무니없는 이자를 받으며 심성이 악해 여동생을 고통스럽게 부려먹는 등 타인의 삶에 방해가 된다. ‘그 여자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돼’, ‘그 여자는 도대체 왜 살아갈까?’, ‘그 여자가 과연 그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된단 말인가?’ 등등. 이런 질문들이 청년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는 시골에 살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고, 어느 지주 집안에 말벗으로 더부살이를 하는 자신의 여동생을 그 지주 집안 가장의 음탕한 요구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노파를 죽이고 노파의 돈을 빼앗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외국으로 나가 정직하고 굳건하게 살며 “인류에 대한 휴머니즘적 의무”를 실천함에 있어 절대 흔들림 없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그럼으로써 “죄과를 씻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어리석고 병약하며 악한 귀머거리 노파에 대해 저지르는 일을 범죄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이런 범죄는 끔찍이도 어렵게 수행됨에도 불구하고 아주 우연하게도 그는 자신의 계획을 곧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어떤 의심도 받지 않으며 받을 수도 없다. 그런데 이때 범죄의 심리적인 전 과정이 전개된다.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살인자 앞에 제기되고 예기치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그의 심장을 죄어든다. 신의 진리와 세상의 법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결국 그는 견디지 못하고 자수하기에 이른다. 설사 유형지에서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한번 사람들의 무리에 끼고 싶은 것이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바로 그 순간에 맛보았던 감정, 인류로부터 떨어져 나가 분리되었다는 감정이 그를 괴롭혔다.… 범죄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보상하기 위해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최근에 있었던 몇몇 사건들로 인해 나의 슈제트가 전혀 기괴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바로 살인자가 명석하고 나아가서 좋은 품성을 가진 젊은이라는 점…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슈제트가 현대성을 부분적으로 정당화하고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⁶


우리는 작가가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을 당대의 역사적인 시기, 즉 ‘모든 것이 기반으로부터 분리되어 멀어져가고’ ‘개념들의 유례없는 불확실성’이 ‘대지에서 이탈되어버린’ 지적인 사회에서 확산되는 시기와 긴밀히 연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소설의 문제는 사회적인 것으로 드러나지만 이 작품은 철학적-사회 심리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새로운’ 인간으로 구상되었는데 페테르부르크에 떠돌고 있던 ‘미완’의 사상에 경도된 나머지 주변 세계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사는 시대의 정신적 위기의 원인이 ‘인간 고독의 시대’가 도래한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쓴 바 있다.


“… 왜냐하면, 지금은 누구든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를 분리시켜 내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 속에서 삶의 충만함을 맛보고 싶어 하는 데 최선을 다해 애를 써도 얻는 것은 존재의 충만함 대신에 겨우 가득한 자살 충동이다. 자기 존재에 대한 완전한 규정 대신에 철저한 고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굴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분리되어 숨어버린다. 결국, 숨고 숨다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떨어져 나가며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귀착된다.… 그러나 이 무서운 고독에도 기한이 올 것이고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분리되었는지 모두 반드시 단번에 깨닫게 될 것이다.”⁷


무덤 같은 작은 방에 고립된 라스콜니코프는 위에 언급한 내용에 비추어볼 때 시대의 표상이 된다. 현대성의 여러 현상인 ‘전쟁’, ‘떠들썩한 법정 사건들’, ‘사회적 저항’, ‘스캔들’의 이면에서 그 현상들의 정신적 근본 원인을 통찰하는 비범한 능력이야말로 도스토옙스키가 지닌 특별한 재능이다. 『죄와 벌』에서 저자는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의 입을 통해 유사한 일반화를 진행한다. “이것은 공상적이고 음울하며 현대적인 일입니다. 요즘 시대에 있는 일로 인간의 심장이 혼탁해졌을 때, 피를 ‘상쾌하게 한다.’는 문장이 인용되는 때, 모든 생활이 안락함에 빠져 선전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이것은 책 속에 있는 몽상이며 이론적으로 자극받은 심장이 벌인 일입니다.”⁸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선조인, 지하생활자처럼 자연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태양광선, 신선한 채소, 맑은 공기 등과 같은 자연은 장시간 방안에 유폐된, 반쯤 아픈 사람이 되어 버린 ‘몽상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⁹ 포르피리와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육체와 도덕적인 고통에 지쳐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라스콜니코프에게 “공기를 바꿔야 해요. 신선한 공기로!”(с. 264), “모든 사람에게는 공기가 필요합니다, 공기가, 공기가요…, 그 무엇보다 말이지요!”(с. 336). 꿈에 오아시스가 등장하여 라스콜니코프의 몸과 영혼을 깨끗이 닦고 상쾌하게 해준다.(с. 56) 이렇게 작품 속에서 “2×2=4”의 원칙에 입각하여 참을 수 없는 낙담만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느낌과 삶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연의 느낌, 이러한 “자연과의 접촉”은 서로 상반되지만 엄격하게 정의되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 섞이고 얽힌다.


라스콜니코프는 한편으로는, 아주 쉽게 사상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곤 했던 1860년대 잡계급 지식인 세대를 전형적으로 대표하는 인물로서 구상되었다. 대학을 마치지 못한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 덕분에 이미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는 있으나 정신적인 세계에서 아직 분명한 지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극빈한 생활을 이어가면서 고독과 굴욕감을 맛본 그는 오직 삶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알 뿐이고 따라서 삶 속에서 아무것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면서도 러시아를 알지 못한다. 그에게는 서민들의 신앙과 도덕적 이상이 낯설다. 바로 이런 사람이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부정적인’ 사상들에 취약하다. 그에게는 그런 부정적인 사상들에 대립시킬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악령』에서 샤토프에 대해 서술된 것을 라스콜니코프에게 적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는 어떤 강렬한 사상에 갑자기 꽂혀서 즉시 단번에 그 사상에 지배당하며 때로는 영원히 압박당하는 그런 이상적인 러시아인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은 그 사상을 물리칠 힘이 전혀 없고 열정적으로 신봉한다. 그리고 이후 그들의 남은 인생은 그들 위로 무너져 내려 그들의 절반을 깔아뭉개며 올라앉은 바위 밑에서 마지막 경련을 하듯이 지나간다.”¹⁰ ‘지하’와 ‘작은 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사상은 추상성과 비 실제성, 비인간성이라는 특성을 필연적으로 갖는다. 19세기와 20세기의 모든 전체주의 이론에는 이런 성격이 내재되어 있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라스콜니코프에게 다음과 같은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미 회의주의자였고 젊었고 추상적이었고 잔혹했다.” 그런 사람이 사상을 갖게 되고 이미 선택의 자유를 상실한 사상의 노예로 변화한다.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처럼 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살인하러 나서면서 그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단순한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사회를 개혁할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으며 사회주의자들을 비웃는다. “근면한 민중과 상업이 ‘공동의 행복’을 위해 애쓴다.… 아니야, 어느 날 내가 인생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면 인생은 더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거야. 나는 ‘공동의 행복’을 기다리고 싶지 않아.”(с. 211) 이 작품 속에서 사회주의자 레베쟈트니코프가 그렇게 희화화된 것은 공연한 일이 아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일종의 귀족적인 경멸을 담고 대했고 그들과 아무런 공통점도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은 공중에 떠돌고 있던 사상들을 동시대 사회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깊숙이 신중하게 받아들였고 단번에 그 사상의 ‘마지막 기둥까지’ 도달했다.¹¹ 그의 사상은 신을 부정하고 신의 자리에 전능한 인간의 이성을 자리매김하는 허무주의의 깊은 정신적 특징을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에 따르면 허무주의의 민족적, 러시아적 변종은 그런 성격을 가졌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러시아 기질’은 종교성을 가지며, ‘고상한 사상’ 없이는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고, 열정적이며, 모든 것을, 선도 악도, ‘최후의 성질까지도’ 모두 도달해보려는 지향을 특이하게 갖기 때문이다.¹² 이런 작가의 생각을 작품 속에서 펼치는 것이 스비드리가일로프이다. 그는 두냐에게 그녀 오빠의 범죄를 설명하면서 말한다. “지금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어. 말하자면, 그런데 모든 것이 특정한 질서를 갖추고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 러시아인들은 대체로 대범한 사람들이야… 마치 그들의 땅처럼 대범하지. 그리고 공상적이고 무질서한 것에 굉장히 끌리는 경향이 있어. 그렇지만 특별한 천재성이 없이 대범하다는 것은 재앙이야.”(с. 378)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는 라스콜니코프가 “몹시 고통받은 사람이지만 긍지가 강하고 위엄이 있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다. 특히 참을성이 없다.”(с. 344)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라스콜니코프의 성격이 비범한 힘과 정직함을 지니고 있음을 본다. “당신의 논문은 터무니없고 공상적입니다. 그러나 글 속에 상당한 진실성이 반짝입니다. 젊고 청렴한 긍지가 담겨 있고 절망에서 오는 대담함이 있습니다.”(с. 345) “나는 당신이 설혹 창자를 꺼내 절단당하는 고통을 당해도 신앙과 신을 찾을 수만 있다면 견뎌내면서 웃음을 띠고 가해자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с. 351) 라스콜니코프의 이름은 신앙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를 떠나 고립을 택한 광신자-분리파 교도들을 연상시킨다. 그밖에도 이 ‘언급하는 성(姓)’에는 어떤 ‘분열’에 대한 암시와 인물의 성격에 내재한 모순, 그리고 감정과 이성 사이, 즉 기질과 추상적으로 이론화하는 이성 사이, 자비심과 차가운 잔혹함 사이의 이분화 하는 특성에 대한 암시가 담겨 있다. 라주미힌의 견해에 따르면 로지온은 “음침하고 우울하며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하다.… 의심이 많고 심기증이 있다. 관대하며 선량하다.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심정을 토로하기보다는 차라리 잔혹한 일을 행하려고 할 것이다. 때로는 (...) 그저 비인간적이라고 할 정도로 냉정하고 무감각하다. 마치 그의 내면에 대립하는 두 인물이 있어 번갈아 나타나는 것만 같기도 하다. (...) 자신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하는데 그럴만한 근거가 없지는 않은 듯하다.”(с. 165)


이 인물 평가에는 레르몬토프와 바이런으로부터 이어지는 낭만적인 모티브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량없는 긍지, 끝없는 전 우주적인 고독감과 ‘세계적인 슬픔’을 느낀다. 따라서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거대한 슬픔을 느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с. 203)라고 라스콜니코프는 포르피리 앞에서 불현듯 말하는 것이다. 라스콜니코프의 특성에는 자신의 비상함을 인지함으로써 생기는 어떤 위엄이 실제로 있었다. 이로 인해 군중들이 그런 증오를 긍지로 삼는 오만한 은둔자들을 항상 미워했던 것처럼, 라스콜니코프 역시 루진과 감독관들, 소시민들 혹은 동료 유형자들에게 본능적으로 잔인한 미움과 증오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라주미힌과 소냐, 자메토프처럼 그의 뛰어남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면서 그를 대했다. 포르피리마저도 그에게 존경심을 갖게 된다. “나는 당신을,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고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с.344)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 자체가 문제입니다. 태양이 되십시오, 모든 사람이 당신을 쳐다볼 것입니다. 태양은 무엇보다도 태양이 되어야 하는 법입니다.”(с. 352) 이 점에 대해서는 러시아 낭만주의에서 바이런과 함께 이상적인 영웅이자 범접할 수 없는 우상이었던 나폴레옹을 라스콜니코프가 숭배했다는 사실로도 입증되고 있다.


라스콜니코프의 범죄는 일반적인 범법보다 훨씬 더 심오하다. 그가 소냐에게 고백한다. “당신에게 말해 줄게,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내가 사람을 죽인 거였다면 … 지금 나는 … 행복했을 거야! 이걸 알아줘!”(с. 318) 라스콜니코프는 인간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할 수 있고, 태고 이래로 범죄로 규정해왔던 바로 그 원칙을 살해했다. 이런 원칙들이 상실되면 전 사회적 도덕과 사회 전체가 붕괴되는 것은 불가피하다.¹³


세상에 ‘새로운 말’을 할 능력이 있는 천재 부류와 후손을 생산하는 데에만 유용한 ‘재료’로 전 인류를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 이 사상 자체도, 여기에서 나오는 결론, 즉 자신들의 드높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권리라는 결론과 마찬가지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¹⁴ 모든 시대 개인주의자들이 이것을 선포했다. 이미 마키아벨리가 이 주장을 자신의 통치론 기반으로 삼았다. 그런데 라스콜니코프에게 와서 이 사상에 시대의 풍조가 첨가되었다. 즉, 19세기에 유행한 진보와 사회적 안녕이라는 이상이었다. 이로 인해 사상은 범죄 자체를 감추게끔 하는 몇 가지 동기를 즉시 갖게 되었다. 라스콜니코프는 끔찍한 가난으로부터 자신과 어머니, 여동생을 구하기 위함이라는 외적이고 ‘객관적’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그런 동기는 그 자신에 의해 즉시 제거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끔찍함에 전율하면서 라스콜니코프가 훔친 물건들의 양과 가치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것들을 운하 속으로 모두 던져버리려고 할 때 그 동기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스스로 용감한 첫발을 내디딘 덕분에 하나의 인격체가 되었고 예정한 살인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범죄를 장차 세상에 오게 될 보다 높은 단계의 안녕이라는 개념으로 정당화하려고 애쓴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이론을 자신의 논문에서, 그리고 나중에 포르피리에게 처음 갔었을 때도 밝힌다. 천재의 새로운 말은 전 인류를 전진시키며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때로는 아마도 전 인류를 구원하는 사상)의 수행이 그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만 유일하게 그렇다.”(с. 199) “하나의 죽음을 천 개의 생명과 바꾸는 것이다.” - “이것은 다름 아닌 산수이다.”(с. 54) 뉴턴이나 케플러가 세상에 자신들의 발견을 선물하기 위해 수백의 목숨을 희생시킬 권리를 과연 갖지 않았단 말인가? 나아가서 라스콜니코프는 솔론이나 리쿠르구스, 마호메트, 나폴레옹에게 관심을 돌리는데 강제력의 행사와 유혈과 밀접히 연관된 활동을 했던 군주나 지도자, 장군 등이 그들이다. 그는 그들을 애매모호하게도 ‘입법가 및 인류의 설립자들’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의 새로운 말은 그들이 행한 사회개혁 속에 들어있으며, “새로운 법률을 제시하면서 바로 그로 인해서 고대로부터, 선조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사회가 신성하게 숭배해온 것을 파괴했으므로”(с. 200) 그들 모두가 이미 범죄자들이었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모든 천재는 “보다 나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하므로”(с. 200) 본질적으로 파괴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 이론에는 ‘작은 실수’가 포함되어 있는데 무엇보다도 다종다양한 ‘위대한 인간들’을 같은 줄에 세우면서 그들의 ‘위대성’에 대해 상당히 애매모호한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과학자의 새로운 발견이 세상에 가져오는 변화와 이로움은 성자의 업적이 가져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이다. 또한 예술가의 재능은 정치가나 군 지휘관의 재능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천재와 악행’이 공존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푸시킨의 질문¹⁵이 라스콜니코프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군사령관들이나 통치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의 성격상 마치 장기를 두듯 사람들의 목숨을 다루며 조작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가장 매력 넘치는 사람들조차도 전 인류의 은인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더구나 그들 중 대부분이 리쿠르구스와 나폴레옹이 가진 천재적인 능력은 가지지 못하고 단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만으로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서도록 하는 근본적 자극제 혹은 최소한 불가피한 조건이 다름 아닌 권력욕과 자기긍정이다. 따라서 라스콜니코프를 사로잡은 천재성과 범죄성의 동일시는 이론적으로도 옳지 않은 것이다. 라스콜니코프 자신도 그 이론 자체를 빼고는 아직 그 어떤 ‘새로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복음서는 인류를 위해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꿈을 아주 훌륭하게 보여준다. 그 꿈속에서 모든 지성을 겸비하고 이전 지구상의 도덕적 규칙을 대체한 듯했던 그의 이론은 단지 파괴력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 이론의 작용은 마치 악성 전염병의 횡행과도 같고 세상을 종말로 몰아간다.


라스콜니코프 스스로도 자신이 벌인 ‘실험’의 드높은 합리성과 정당성에 대해 헛되이 자신을 확신시켰으며, “나 자신의 육체와 음욕을 위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고 기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다짐하려고 증인들까지 불러가며 한 달 내내 신의 섭리에 대해 염려한”(с.211) 것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소냐에게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마지막 이유를 고백한다. “소냐, 나는 아무런 궤변 없이 죽이고 싶어졌어, 나 자신을 위해, 나를 위해서만 죽이는 거야! 이 점에서 나 자신에게조차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살인한 게 아니야, 헛소리야! 재물과 권력을 얻어서 인류의 은인이 되고자 살인을 한 게 아니야. 헛소리! 난 그냥 죽인 거야. 나 자신을 위해서, 나 자신만을 위해서 죽였어. 그런데 그 시점에서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은인이 될까, 아니면 온 인생을 마치 거미처럼 거미줄에 걸린 모두를 잡아서 생즙을 다 빨아먹게 될까¹⁶, 그 순간 나한테 아무 상관이 없었고 될 대로 되라였어! (...)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벼룩인가, 아니면 사람인가를 알아야 했어.” (...) “벌벌 떠는 잡놈인지 아니면 권리를 가졌는지…”(с. 322) 따라서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심리 실험이자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테스트였다. 인류의 은인이기는커녕 권력욕에 불탄 천재로, 유럽을 자신의 영광을 뽐내는 눈부신 퍼레이드 무대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의 야심에 희생된 시신들로 유럽을 도배해버린 나폴레옹이 가장 중요한 ‘권위자’로서 그의 앞에 나타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무한한 자기긍정,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 “모든 경계와 규범을 뻔뻔하게 넘어서는 것”, 나폴레옹의 바로 이런 특징들이 라스콜니코프를 사로잡은 것이고 그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었다.¹⁷ “자유와 권력을, 중요한 것은 권력이다! 벌벌 떠는 어중이떠중이들 위에, 모든 개미 위에 군림하라!”(с. 253)

3. ‘죄’와 ‘벌’의 의미

『죄와 벌』이라는 작품 제목은 도스토옙스키 사상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바로 범죄자를 처벌하는 도덕적 내면적 불가피성이다. 러시아어 제목은 다의성을 별로 갖지 않으면서 ‘철학적-종교적’ 의미와 ‘법률적’ 의미, 이 두 가지 모두를 내포하고 있다. ‘범죄’라는 단어는 의미상으로 이미 ‘넘어서는 것’, 어떤 경계나 ‘성질’을 넘어서 ‘걸음을 건너 디디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도스토옙스키는 그 첫 번째 의미를 의식적으로 활성화한다. 작품 전체에 걸쳐서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범죄 본질이 도덕성을 넘어서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노파는 어쩌면 실수일지도, 그 여자가 문제가 아니야! 노파는 다만 질병일 뿐이었어… 나는 빨리 넘어서고 싶었어… 나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원칙을 죽인 거야! 나는 원칙을 죽였는데 넘어서지는 못했어, 이쪽에 그냥 남은 거야…”(с. 211)


‘넘어서기’(переступание)라는 모티브는 작품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에서 찾을 수 있다.¹⁸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문지방에 선 것 같은 사람들이고 순결과 명예 또는 의무, 또는 도덕성의 ‘선’을 넘어선다. 마르멜라도프는 일자리를 잃었다며 “나에게 한계가 닥쳐왔기 때문”(с. 16)이라고 자기 처지를 털어놓는다. 자신의 악덕에 몰두한 나머지 그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와 자식들, 그리고 소냐라는 가족을 ‘넘어선다.’ 라스콜니코프에 따르면 소냐 역시 자기 자신을… 넘어선다. “너 역시 넘어섰어,,, 넘어설 수 있었지. 너는 자신을 정복했어. 넌 자신의 삶을 파멸시켰어.”(с. 252)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권태에 빠진 자신의 감정들에 어떻게든 흥을 돋우려 온갖 도덕 규범들을 넘어서는 것을 세련된 만족과 유희로 바꾸어버린다.¹⁹ 그는 그렇게 방탕에 반응한다. “나는 이것이 병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적절한 한도를 넘어서는 모든 것이 그렇듯 말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한도를 넘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 뭐 어쩌란 말입니까? 이게 없으면 아마도 총을 쏴서 자살이라도 하게 될걸요.”(с. 362) 두냐에게는 아직 비슷한 선택이 남아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녀에게 악의를 담아 지적한다. “아! 그러니까 너도… 일부러… 뭐, 칭찬할 만하군. 차라리 너도… 그런 선까지 나아가서 그 선을 넘지 않으면 불행해질 거야, 하지만 넘어선다면 더욱 불행해질 수 있어…”(с. 174) 반대로 라스콜니코프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녀는 “많은 것에 대해서 동의할 수 있으나… 언제나 하나의 선이 있어서… 그 어떤 상황도 그녀에게 그 선을 넘게끔 강요할 수는 없었다.”(с. 158)라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 모든 ‘넘어서기’들은 그 성격상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넘어서기는 주인공을 죽음으로 이끌고, 두 번째는 무서운 정신적 공허함과 자살로 이끌며, 세 번째 넘어서기로부터는 가혹한 형벌로 죗값을 치르고 나서야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유사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 즉, ‘죽은 삶’의 공동소유자다. 또한, 그들의 공통점은 둘 다 ‘자연과의’ 따뜻하고 밝은 접촉을 거절하고 우주의 죽은 차가운 공허에 속한다는 점에 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저자에 의해 라스콜니코프와 함께 『죄와 벌』에서 ‘삶과 죽음’의 테마를 구현하기 위해 소환되었다. 만일 우리가 『죄와 벌』이 어머니와 여동생의 헛된 희망으로 고통받는, 젊은 지식인의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죽은 삶’에 유폐된 인간의 ‘살아있는 삶’으로의 도피의 역사를 묘사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소설의 잉여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훨씬 더 명확해진다. 그러나 소냐가 라스콜니코프를 ‘갱생’으로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죽음의 힘의 의인화라고 할 수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서로 반대되는 사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한다.


‘벌’(наказание)은 작품 속에서 ‘죄’ 못지않게 복잡한 개념이다. 그 어원은 ‘지시’, ‘충고’, ‘가르침’이다. 라스콜니코프에게 이 ‘가르침’은 삶 자체를 통해 주어지며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른 후 겪는 무서운 도덕적 고통 속에 있다. 이는 이미 저지른 행위를 두고 맛보는 끔찍함이자 혐오감이며, 발각될 것에 대한 끝없는 불안감이고 (범죄자는 이미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이 오히려 더욱 기쁠 것이다), ‘경계를 넘어섬’이 귀착하는 극단적인 정신적 공허함이다. 살인자는 정신세계의 기반을 무너뜨린 것이고 그럼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마치 가위로 잘라 내버린 것만 같다.” “고통스럽고 끝없는 고독과 소외라는 우울한 감정이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느껴졌다.”(с. 81) 양심의 가책이 아니었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인류와 최종적으로 단절되었다는 묘한 생각이 주인공을 짓누른다. 라스콜니코프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단절이 점점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와 누이와의 관계로 그는 자신의 무서운 죄 때문에 그들에게 사랑으로 응하지 못한다. 오래 이별해 있다가 만난 자리에서 그는 그들을 포옹하기 위해 팔을 치켜들지 못한다. 그는 “마치 천 베르스타 밖에서 보듯”(с. 178)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곧 그들의 운명에 대해 완전히 냉담해진다. 두냐와 루진의 절연을 유도한 다음 라스콜니코프는 돌연 가족과 자신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낯선 도시에 버린다. “날 내버려 둬! 날 혼자 내버려 두라고!… (...) 아마도 난 이걸 결정한 걸 거야…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죽든지 살든지 간에 나는 혼자 있고 싶어. 날 완전히 잊어. 그게 나아… (...) 안 그러면 당신들을 증오할 거야. 난 그걸 느껴… 안녕히!”(с.239)


라스콜니코프와 같은 '죽은 삶'에 갇힌 사람들이 소유한 지적 능력은 정교한 결함 없는 논리를 구축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논리는 단지 허세에 찬 발명품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미 뿌리에서부터 죽었으므로, 그것을 통해 ‘죽은 삶’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에 따르면 ‘변증법’은 꾸며낸 형식이며 이것을 통해 타인과의 접촉의 상실로 인해 삶의 즐거움을 상실한, 반쯤 죽은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서로 호응하고 연결되며 그들의 소통은 점점 더 확대된다. 그러나 이 소통은 이전의 폐쇄적인 성격을 그대로 띠며 그 안에는 삶의 기쁨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살아있는, 다른 ‘나’와의 즐거운 소통, 친교, 즉 긴밀한 우정으로 결코 변화되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즐거운 동감을 갖지 않는 한, 그는 항상 완전히 회복할 수 없는 상실에 대한 자신의 의심과 두려움에 종속된다. 사실 그의 세상은 ‘돌처럼 영원히’ 죽은 것이다.²⁰


이러한 라스콜니코프가 느끼는 고통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마치 안개가 갑자기 그의 앞에 피어올라 그를 출구 없는 지독한 고독 속에 가둔 것만 같았다.”(с. 335) “… 그가 있는 곳이 외딴곳일수록 그는 누군가 불안스럽게, 가까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그 감정은 무섭다기보다는 꽤 분한 것이어서 그는 서둘러 도시로 돌아왔고 사람들 속에 섞여들었다.…”(с. 337) 그는 자신에 대한 유죄 증거가 없으며 아무것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이해하고 있었다. 무서운 실험이 완전히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의식 자체가 가끔 소실되었고 악몽으로 끊기는 완전한 둔감함이 찾아오곤 했다.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질병이라는 모티브가 아주 중요하다. 이 모티브는 작품 전체에 걸쳐서 라스콜니코프를 따라다닌다. 라스콜니코프는 범죄를 저지르고 거의 착란상태에 빠져 돌아오며 그다음 날은 온종일 헛소리를 하며 보낸다. 그다음 그는 열병을 앓게 되어 4일간 의식을 잃고 보낸다. 그 후 라주미힌의 병간호를 받아 다시 일어서게 되지만 열병에 걸린 듯 쇠약한 그의 상태는 끝까지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병에 걸린 정신적 원인이 이해되지 않아 그것을 따져보려 애들 쓴다. 의사인 조시모프는 위기가 오기 전에 병이 그의 몸속에서 몇 달간 잠복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단정한다. “이대로라면 3, 4일 뒤에는 예전과 같은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 전과 같은 상태, 어쩌면 두 달, 어쩌면 석 달 전? 이 병은 알다시피 오래전에 시작되어 무르익었다고 할까요?... 그렇지요? 이제 당신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с. 171)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라스콜니코프의 행동에서 살인에 대한 헛소리까지도 포함해서 이상한 점들을 몽땅 질병 탓으로 돌린다.²¹ 포르피리 한 명만이 라스콜니코프에게 놀리듯 언급한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병이랑 헛소리, 꿈들이 떠오른 거라고 하더군요. 이게 다, 글쎄 대체 뭐 때문인지, 병에 걸려서 헛소리할 때는 마치 모든 것이 꿈을 꾸듯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 외는 아니지요, 그게 아니고 다른 것일 수 있나요, 네?”(с. 268)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상태를 그들보다 더 잘 이해한다. 그의 논문 전체는 범죄를 저지를 때 언제나 이성의 차단과 의지의 몰락이 동반된다는 것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었다. 이런 이성의 가림과 의지의 쇠퇴는 “마치 질병처럼 사람을 사로잡으며 서서히 발전되어 나가고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에 정점에 이른다. (...) 질문은, 질병이 범죄를 낳는가, 아니면 범죄가 그 어떤 독특한 자체의 성격에 의해서 어떤 질병 비슷한 것을 항상 동반하는가이다. - 그는 자신이 아직 해결할 힘이 없다고 느꼈다.”(с. 59)


작가는 슈제트를 전개하면서 라스콜니코프가 페테르부르크에서 폐결핵처럼 낚아챈 이론 자체가 질병이었다고 단언한다. 질병의 시작은 살인을 처음으로 구상한 때와 일치한다. 발병은 질병이 공개적 형태로 넘어간 것에 불과하다. 그 후 병은 그의 내부에서 계속해서 발전한다. “이건 내가 많이 아프기 때문이야, - 마침내 그가 우울하게 결론 내렸다. - 나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고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잖아.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 건강해질 거야 그리고. 날 괴롭히지 말아야지… 그런데 전혀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지?”(с. 87) 이렇게 해서 범죄도, 처벌도 살인 전에 시작된다. 공식적인 진짜 형벌은 에필로그에서 시작되며 이는 주인공에게 완쾌이자 부활이다. 위축과 침울이라는 병적 상태는 라스콜니코프에게 범죄 이전에도 이미 나타났는데 ‘넘어선다’는 사상이 그의 영혼 속에 이미 똬리를 틀고 그의 모든 생각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가 양심에 따라 유혈을 자신에게 허락하자마자 그는 마음속에서 이미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고 그 즉시 형벌이 뒤따랐다. 이 점은 철학가 레프 셰스토프가, 라스콜니코프는 노파를 살해한 것이 전혀 아니고,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라스콜니코프를 중상하는 것이며, 추상적 이론가인 이 대학생은 상상 속에서 살인을 저질렀을 따름이라며 비꼬는 구실이 되었다.²²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한 자유와 홀가분함이라는 경지에 도달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양심의 가책에 철저히 얽매여 있음을 알았다.²³ 그리고 그는 이 양심의 가책을, 본성 자체에 의해서 ‘넘어서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가장 저급한 부류의 인간들에 자신이 속하는 증거라 간주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주인공은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자신의 이론을 계속해서 신봉한다. 그는 이론이 아니라 자신에게 실망한다.²⁴ “자각에 이르기 위해서 그는 고통스러운 분열을 거쳐야만 하고 ‘모든 pro와 contra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겨야 한다.’ 그에게는 스스로가 수수께끼이다. 자신의 크기와 한계를 모른다.

자신의 ‘나’의 깊숙한 곳을 힐끗 들여다보고는 끝없는 심연을 앞에 두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는 자신을 시험하고 경험을 하며 묻는다. 나는 누구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슨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나의 힘은 위대한가?”²⁵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에서 바이런의 개인주의의 모든 부정적인 정신 에너지를 그냥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푸시킨이 『집시』와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이미 그것을 한 바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앞으로 더 나아가서 신에 맞서는 악마적 주인공의 이미지 자체를 잔악하게 탈 낭만화 시킨다. 악마적인 주인공으로부터 찬란한 낭만적인 후광을 제거하면 나폴레옹과 카인의 자리에 전혀 평범한 살인자만 남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가 저지른 범죄의 ‘추악함’이 라스콜니코프를 죽인다. “나폴레옹, 피라미드, 워털루 - 그리고 삐쩍 마르고 추악한 여자 서기, 노파, 침대 밑에 붉은 궤짝을 놓아두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여자, - 아니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마저도 이런 것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어디서 그가 이해한단 말인가!… 미학이 방해하는 군: 나폴레옹이 ‘노파’를 찾아 침대 밑으로 기어들 것인가 말이지! (...) 에이, 미학적으로 나는 이(虱)야,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с. 211) “미학적 두려움이야말로 무력함의 첫째 특징이다.”(с. 400) 라스콜니코프의 ‘아류 바이런식의’ 허세는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의 신랄한 조롱을 받는다. “살인을 저지르고는 자신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리고 창백한 천사처럼 걸어 다니지.”(с. 348) 고상한 허세를 유지하고 범죄와 드높은 이상들을 한데 결합하려는 라스콜니코프의 시도는 스비드리가일로프에 의해 최종적으로 격파된다.²⁶ (“매분 마다 당신 속에서 실러가 들고 나서는군요!”(с. 373))


I.L. 알미의 올바른 일반화에 따르면 “라스콜니코프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가능성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한 가지 가능성은 원했던 것으로 이미 저지른 일을 내면적으로 극복하고 ‘범죄를 넘어서서’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첫 번째에 정반대되는 것으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떠나 “1 아르신의 공간”(с. 123)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가능성은 첫째와 둘째 가능성의 실현 불가함을 확신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자살이나 자수로 ‘끝을 맺는’ 것이다.”²⁷


처음에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인생이 늙은 노파와 함께 죽지 않았다”(с. 147)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를 원하면서 온 힘을 다해 첫 번째 길로 나서고자 애를 쓴다. 그에게는 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졌으나 정신적으로 고양되는 드문 순간에만 그러했을 뿐이다. 즉 경찰서에서 그를 그곳으로 부른 것이 저지른 범죄와 무관함을 인식했을 때, 갑자기 라스콜니코프에게 무서울 정도의 말참견과 개방성이 엄습했을 때, 그다음에는 심각한 열병에서 회복된 첫 번째 밤에, 라스콜니코프가 5일 후 처음으로 거리에 나왔을 때, 병적으로 활발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자메토프에게 ‘심리적으로’ 멋지게 승리를 거둘 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난한 마르멜라도프 가족을 돕는 데 성공했을 때, 자신이 지닌 얼마 안 되는 돈을 몽땅 진심으로 건네고서 그 보답으로 어린 폴렌카로부터 입맞춤을 받고 소냐로부터 생생한 감사를 받았을 때가 바로 그러한 순간들이다. 하지만 그는 잠시 동안만 자신을 속이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그 후 라스콜니코프는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힘에 의해 처음에는 두 번째 가능성으로, 그다음에는 세 번째 결말에 처해진다. 라스콜니코프 혼자서는 이 막다른 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구원은 오직 외부로부터만 그에게 다가올 수 있었다. 아직도 그를 세상 및 신과 연결시키고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끝으로 눈부신 대초원을 보고 있던 라스콜니코프가 회개 없이 ‘갱생’을 경험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서 갱생이 일어났으며, 이 영적 변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범한 죄를 회개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침내 이 순간이 도래했다 …”(с. 421)라는 선언 후에 생긴 갱생은 결코 자백이 아니다. 그것은 급격한 태도의 변화이자 날카로운 심리적 변화, 소외로부터의 해방, 사산해버린 자연의 살아있는 자연으로의 복귀이다. ‘에필로그’에 설명된 상황에 따라, 우리는 자연과의 접촉과 유사한, 강한 빛의 유출로서 라스콜니코프의 갱생을 이해할 수 있다. 라스콜니코프에게 삶의 소생(обновление) 느낌은 넓고 웅장한 파노라마와 합쳐지는 과정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그는 장엄한 이르트이쉬 풍경을 보았고 그 순간 마치 ‘새로운 자연’이 된 듯한 초원이 그에게 삶의 원천인 ’다른 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하였으며 그를 각성시켰다. 자연은 자연임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의 법칙에서 신의 평화를 나타낸다. 주인공은 신의 세계의 눈부신 광휘가 거대한 대초원 뒤 그 강가에 떠오르고 자신이 ’일종의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낀다. 이 빛나는 세상은 온 힘을 다해 빠르게 다가와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그의 고뇌는 황홀경의 상태로 바뀌었고 이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으로 라스콜니코프는 세상이 신의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자신이 그것과 합일되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의심할 바 없이 도스토옙스키는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라스콜니코프의 갱생은 자신의 죄에 대한 깨달음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은 도스토옙스키가 『작가 일기』에서 “자연과 접촉”(соприкосновение с природой)²⁸이라고 칭하는, 즐거운 살아있는 유기체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갱생’이란 감각적인 세계와 감정 그 자체 속에서 존재의 급격한 변화, 즉 원초적이고 본래적 의미에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리고 ‘죽은 삶’이 끝난 후에 일어난 이 갱생은 ‘살아있는 생명’, 즉 신의 영원한 생명, ‘친교’의 시작이다. 갱생은 소외감의 사라짐과 화해와 공존의 탄생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 『죄와 벌』을 다시 읽을 때, 라스콜니코프 이야기의 흐름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소설 시작부터 라스콜니코프는 ‘자연과의 접촉’을 거부당한 사람으로, 풍요한 생활에서 벗어난 분열적인 사람으로 등장한다. 감옥에서 그는 자기 혼자만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에서 끊어졌다고 느꼈다. 그러나 ‘갱생’의 영향으로 그에게서 갑자기 소외감이 사라졌고, 마치 외부 세계와 공통의 삶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화해의 느낌이 나타난다. 그 날 저녁, 막사에 있는 모든 죄수와 여전히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라스콜니코프는 처음으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놀랍게도 “그들은 그에게 상냥하게 대답했다”라고 말했으며 “모든 유형수들, 예전의 그의 적들이 벌써 그를 다르게 쳐다본다는 생각을 했다”(с. 422)라고 썼다.


이 작품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고통을 통한 환희의 도래’이다. 지하생활자가 말한 “인간은 고통을 사랑한다.”²⁹라는 유명한 명제는 바로 여기서 새로운 진정한 실재성을 획득한다.

4. 나오는 말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심연을 심오하게 인식한 작가이다. 영혼 불멸의 비밀에 대해 그보다 더 깊이 알았던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 영혼은 혼란과 신성한 혼돈, 그리고 진리와 신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색이다. 작가는 비정상적으로 조직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내적인 세계를 깊이 연구하며 인간 영혼의 가장 은밀한 심연을 엿보고 그 심층을 폭로한다. 그는 병적인 의식의 비극적인 오해와 뒤틀림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소설가의 관심 중심에는 인간의 ‘영원한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열정적인 탐색이 자리하고 있다. ‘어째서 일군의 지적이고 선량하며 고결한 사람들이 비참한 생을 이어 가는 반면, 동시에 또 다른 보잘것없는 비열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호화롭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는가?’ ‘어째서 죄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고통을 받는가?’ ‘어떻게 이러한 질서를 바꿀 것인가?’ ‘벌벌 떠는 인간과 반대로 세계의 통치자, 도덕적인 토대를 넘어서는 권리를 가진 인간은 누구인가?’ ‘전혀 위력을 갖지 못한 자와 반대로 인간 법칙을 경멸하고 자신의 법칙을 창조하는 전능자는 누구인가?’ 등이 그것이다.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은 자주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직접 빼앗기도 한다. 이른바 이러한 인간적인 독단의 최고 행위로서 죄는 소설 『죄와 벌』의 근본적인 슈제트적 핵심이 된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1860년대 잡계급 지식인 세대를 대표하는 전형으로써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동시대의 사회적·정신적 부조리에 고통받고 반항하는, ‘새로운’ 인간이자 시대의 표상으로 구상되었다. 극빈한 생활로 인한 고독과 굴욕감으로 그의 삶은 부정적 세계관과 무의미로 가득 찬 삶이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도스토옙스키 주인공들의 공통된 특징으로서 그들의 사상은 ‘지하’와 ‘작은 방’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결코 단순한 허무주의적 공상가는 아니다. 그는 신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인간의 전능한 이성을 자리매김하는 깊은 철학적 특징을 보여주는 비범함의 소유자이자 드높은 자긍심과 더불어 절대적 고독감, 슬픔을 느낄 수 있는 낭만적 인물이기도 하다. 라스콜니코프의 범죄는 일반적인 범죄보다 훨씬 더 심오하다. 그는 단순히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범죄의 본질과 사회적 도덕을 규정해온 원칙을 살해한 것이다. 인류를 비범인(非凡人)과 범인(凡人)이라는 두 가지 부류로 분류하고 위대성이라는 모호한 기준 아래에 전자에 의한 후자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그의 사상은 자신이 벌인 살인이라는 ‘실험’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푸시킨에서 연주된 ‘천재와 악행’의 공존이라는 주제는 도스토옙스키에서 또다시 이렇게 변주된다.


『죄와 벌』이라는 작품 제목은 도스토옙스키 사상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여기서 ‘죄’라는 단어는 이미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라스콜니코프의 범죄의 본질은 바로 모든 경계와 규범, 그리고 도덕성을 넘어서는 것에 있다. 이로 인해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반(反) 주인공이 가지는 중요한 모토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러한 ‘넘어서기’ 모티브는 『죄와 벌』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티브는 성격상 완전히 다른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주인공을 죽음으로 이끎’, ‘무서운 정신적 공허함과 자살로 이끎’, ‘가혹한 형벌로 죗값을 치른 후 구원받음’이 그것이다.


어원적으로 ‘지시’, ‘충고’, ‘가르침’을 의미하는 ‘벌’ 역시 ‘죄’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개념이다. 라스콜니코프는 범죄를 저지른 후 무시무시한 도덕적 고통을 겪는다.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실행한 후 절대적 자유와 홀가분함을 느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바로 자신에게 내재한 인간적 본성, 즉 양심의 가책이었던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양심의 가책을 부정하며 전혀 뉘우침 없이 자신의 이론을 계속해서 신봉한다. 하지만 ‘경계를 넘어섬’이 귀착하는 곳은 평범한 살인자로서의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인류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극단적인 정신적 공허함일 뿐이다. 자각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분열을 거쳐야만 한다. 공식적인 진짜 형벌은 작품의 에필로그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라스콜니코프에게는 완쾌이자 부활인 것이다. 구원은 외부로부터, 또 다른 자기인 타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째서 지적이고 선량하며 고결한 사람들은 비참한 생을 이어 가는 반면, 동시에 또 다른 보잘것없는 비열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호화롭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는가?

[原註]

(1) 도스토옙스키 창작과 개성에 대한 평가는 위키피디아를 참조할 것. Достоевский,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Оценки творчества и личности.)

https://ru.wikipedia.org/wiki/%D0%94%D0%BE%D1%81%D1%82%D0%BE%D0%

B5%D0%B2%D1%81%D0%BA%D0%B8%D0%B9,_%D0%A4%D1%91%D0%B4%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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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B2%D0%B8%D1%87 (검색일: 2019.03.26.)

(2) Н. Кашина. Человек в творчестве Ф.М. Достоевского. М. (Художествен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86), pp.59-107 참조.

(3) Накамура, Кэнъносукэ. Две концепции жизни в романе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Ощущение жизни и смерти в творчестве Достоевского) // Достоевский и мировая культура. Альманах № 1. Часть 1. (сост.) К. Степанян и Вл. Этов. СПб., Литературно-мемориальный музей Ф.М. Достоевского в СПб.

(1993), p.92.

(4)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 김성일,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에 나타난 시베리아 이미지」, 슬라브학보 32,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2017), pp.1-30.

(5)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30-х т.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85). Т. 28. Кн.I, p.351.

(6)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30-х т.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85). Т. 28 II, p.137.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을 참고할 것: Т.И. Орнатская. К истории создания романа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7.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87), pp.48-52.

(7)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30-х т.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75). Т. 14, pp.275-276.

(8)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30-х т.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73). Т. 6, p.348. 이하 죄와 벌 인용 시 이 판본에 의거하여 본문에 쪽수만 표시하기로 함. 아울러 번역은 도스토옙스키(홍대화 역), 죄와 벌 1,2 (파주 :열린책들, 2016)을 참고함.

(9) 라스콜니코프의 어머니는 그의 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네 방은 정말 형편없구나, 로쟈. 꼭 관 속 같아” 여기엔 두 가지 측면의 사실주의가 있다. 하나는, 다락방으로서, 참으로 관처럼 길고 좁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종의 죽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확히 저 세계의 일로 지각한 라스콜니코프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어머니가 얼마나 이상한 말씀을 하셨는지 아세요?”(p.178) 여기서 도스토옙스키는 명백히 라스콜니코프가 이미 죽은 세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10)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30-х т.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74). Т. 10, p.27.

(11) 이에 대해서는 Р.Н. Поддубная. О проблеме наказания в романе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in)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2.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76), pp.96-105 참조.

(12) Джеймс Сканлан. ≪Русская идея≫ Достоевского. (in) Джеймс Сканлан. Достоевский как мыслитель. СПб. (Академический проект, 2006), pp.192-221

참조.

(13) 라스콜니코프는 민법의 한도 내가 아닌 그에 반해 우회하는 쪽으로 죄를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계속해서 주인공을 심판하고 질책하는 법은 원칙적으로 죄를 제거하지 않고 그것을 덮기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도덕적 힘을 상실한다. В.Е. Ветловская. Приемы идеологической полемики в ≪преступлении и наказании≫ Достоевского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12.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Дмитрий Буланин≫, 1996), p.91.

(14)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Б.Н. Тихомиров. К вопросу о ≪прототипахобраза идеи≫ в романах Достоевского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10.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92), pp.42-55.

(15)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에 나오는 문장임(“А Гений и злодейство - Две вещи несовестные.”). А.С. Пушкин.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10-х т. М. (Издательство Академии Наук СССР, 1960). Т. 4, p.331.

(16) 이 작품에서 라스콜니코프와 단지 공식인 관계(예심판사-범죄 용의자)로만 연결되는 포르피리는 거미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덫에 걸린 라스콜리니코프를 사로잡고는 임무와 내적인 열망에 따라 거미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종종 거미는 악마로 나타난다. 악마의 망은 거미줄이다. В.Е. Ветловская. ≪Хождение души по мытарствам≫ в ≪Преступлении и наказании≫ (Статья вторая)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18.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Накамура, Кэнъносукэ. Там же, pp.112-113.

(17) 이에 대해서는 윤새라,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장편소설 속 만남과 헤어짐 (서울:한양대학교 출판부, 2019), pp.117-125 참조.

(18) 소설 속의 범죄는 두 번, 즉 객관적인 실재의 수준(현실)과 주인공의 의식 수준(꿈)에서‘재현’된다. 이 양 기둥에 소설의 예술적 실재의 캔버스가 펼쳐져 있다. 범죄-현실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이 실현된 절정이다 (사상이 주인공의 의식에서 쪼개져, 마침내 현실에서 실현되었다). 범죄-꿈은 주인공 의식으로의 사상의 복귀를 나타낸다. 물론, 사상의 이러한 움직임 단계 사이에 통과될 수 없는 벽은 없다. 반대로 도스토옙스키는 전통에 따라 꿈과 현실을 극단적으로 접근시킨다. 범죄-꿈속으로 쁘띠 부르주아도 그리고 노동자들이 칠을 했던 ‘바로 그 아파트’도 스며든다. 사실, 꿈속에서 현실의 거의 보이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세세한 것들의 환상적인 회귀가 발생한다. 실제 살인 사건에서 도끼가 고리대금업자 머리를 쪼개기 몇 초 전에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의 얼굴을 홀린 듯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어떤 조롱의 빛 같은 것이 번뜩인 듯 생각되자.”(p.62) 꿈에서 이 조롱은 악마적 웃음으로 확장된다. 심지어 라스콜리니코프는 파리를 짜증스럽게 범죄에 대한 증인이라고 부른다: “파리가 날고 있었는데, 그 파리는 보았을 테지!”(p.210). 라스콜리니코프는 파리의 불쾌한 윙윙 소리를 들으면서

범죄-꿈 후에 깨어나자, 마치 파리가 꿈에서 벌어진 살인을 실제로 몰래 본 것처럼 느껴졌다. Е.В. Волощук.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мир Ф.М. Достоевского (роман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Житомир (Творческо-производственный центр “Олеся”, 1991), pp.121-122.

(19)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달리 사상이 아닌 애정으로 인해 죄를 지은 범인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정신적 지각없이 인간 삶의 경계를 여러 차례 뛰어넘는다. 이 점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분신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그는 스비드리가일로프와 달리 자신의 양심을 뛰어넘지 못한다.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인식으로 라스콜리니코프는 고통을 받는다. Е.В. Волощук. Там же, p.48.

(20) Накамура, Кэнъносукэ. Там же, pp.107-108.

(21) А.Н. Хоц. Типология ≪странного≫ в художественной системе ≪Преступления и наказания≫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10.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92), p.40.; В.Н. Топоров. Поэтика Достоевского и архаичные сферы мифологического мышления // Проблемы поэтики и истории литературы. Саранск (Мордовский гос. ун-тет им. Н.П. Огарева, 1973), p.96.

(22) L. 셰스토프 (이경식 역),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니체 (서울:현대사상사, 1986), pp.330-354.

(23) 라스콜리니코프의 무거운 죄는 정교 문헌에 서술된 것과 완전히 일치하며 그의 영혼 속에서 무르익어간다: “악은 자유를 통해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본성’이 아니라 (...) ‘상태’이다. (...) 성인 그리고리 니콜스키에게 죄는 자유의 병이다. 이 병은 그것의 환영을 선으로 간주하면서 오류를 범한다.” В.Н. Лосский. Очерк мистического богословия восточной церкви // В.Н. Лосский. Очерк мистического богословия в осточной церкви: Догматическое богословие. М. (Центр “СЭЙ”, 1991), p.98.

(24) 『죄와 벌』에는 두 가지 ‘양심’의 개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칸트적 개념으로 의무와 밀접히 연관된다. 두 번째는 라스콜니코프를 살인으로까지 이끈 거짓 이론과 연관된 개념으로 도덕적 감정과 깊이 연관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지각을 명확하게 묘사하면서 언제나 그의 감정이 이성의 결정에 반했던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성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면서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것을 경시했다. С. Такахаси. Проблема совести в романе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10.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92), p.60.

(25) К.В. Мочульский. Достоевский. Жизнь и творчество // Гоголь. Соловьев. Достоевский. М. (Республика, 1995), p.366.

(26) 라스콜리니코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 포르피리, 이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Т.В. Миджиферджян. Раскольников-Свидригайлов-Порфирий Петрович: поединок сознаний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7.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87), pp.65-80.

(27) И.Л. Альми. К вопросу о психологизме Достоевского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 Достоевский и современность. Материалы VIII Международных ≪Старорусских чтений≫ 1993 г. Новгород, Дом-музей Ф.М. Достоевского, 1994, p.11. 이와 관련하여 Поддувная 역시 다음 세 가지로 주인공의 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 “주인공은 다음 세 가지의 ‘출구’를 선택할 수 있다 : 도랑(자살, 즉 자책), 사무소(자백, 즉 사회적 참회), 노파의 아파트(실행한 일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 그는 어느 ‘출구’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아주 작은 압력 하에서도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Р.Н. Поддувная. О проблеме наказания в романе ≪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 Достоевский. Материалы и исследования. Том. 2.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76), p.103.

(28) “자연과의 접촉은 모든 진보, 학문, 이성, 상식, 취향, 훌륭한 태도 등에 대한 가장 마지막 말이다.”(соприкосновение с природой есть самое последнее слово всякого прогресса, науки, рассудка, здравого смысла, вкуса и отличной манеры.)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30-х т.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81). Т. 23, p.180.

(29) Ф.М. Достоевский. Полное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30-х т. Л.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ука≫, 1973). Т. 5,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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