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지 능력을 벗어난 초저주파와 초음파
인간은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 경험은 청각 없이는 온전히 성립하기 어렵다. 언어, 음악, 환경음은 인간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가장 직접적인 매개다. 그러나 이러한 청각 능력에는 분명한 물리적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귀가 감지할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약 20헤르츠(Hz)에서 20킬로헤르츠(kHz)에 이른다. 이 범위를 벗어난 소리는 감각되지 않거나 진동 또는 물리적 압력으로만 체험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청각은 이처럼 제한된 구간에 머무르는가? 그 이유는 생리학적, 물리학적 요인 그리고 진화적 선택의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우선 하한선인 20Hz 이하의 소리를 살펴보자. 초저주파라 불리는 이 영역은 공기의 압력 변화 속도가 매우 느리다. 고막과 이소골, 달팽이관으로 이어지는 청각 장치는 특정한 진동수 이상에서만 효율적으로 반응한다. 지나치게 느린 진동은 고막이 제대로 흔들리지 못하고, 달팽이관 내부의 유모세포 또한 이를 감지하기 어렵다. 인간은 이 영역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몸으로 ‘진동’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지진이나 대형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저음의 압박감은 청각이라기보다 체감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동물들, 예컨대 코끼리나 고래는 이 초저주파를 의사소통에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에게는 감지되지 않는 이 영역이 동물들에겐 수십 킬로미터를 넘어서는 사회적 신호 체계가 되는 것이다.
상한선은 약 20kHz다. 이 이상을 초음파라 부른다. 초음파는 진동이 지나치게 빨라서 귓속의 기저막 기저부에 위치한 고주파 감지 세포가 따라잡지 못한다. 더구나 인간의 청각세포는 소모성이다. 한번 손상되면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특히 고주파를 감지하는 능력이 빠르게 줄어든다. 10대 청소년은 17kHz 이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우가 흔하지만, 30대 이후부터는 15kHz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노인성 난청의 한 전형이다. 결국 인간의 청각 상한은 타고난 생물학적 한계일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좁아지는 영역인 셈이다.
청각의 한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또 다른 요인은 신경 전달 속도다. 소리는 물리적으로는 압축과 팽창의 파동이며, 이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것은 달팽이관 내 유모세포의 몫이다. 그러나 청신경이 처리할 수 있는 신호에는 상한이 존재한다. 분당 수만 번의 전기적 신호를 전달할 수는 있으나, 초음파 영역처럼 극도로 빠른 진동은 이 처리 한계를 넘어선다. 결국 ‘듣지 못하는 소리’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의 생리학적 장치가 번역하지 못하는 정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철학적 질문에 직면한다. 인간이 듣지 못하는 소리는 과연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과학적으로 보자면, 소리는 물리적 파동일 뿐 존재 여부는 감각과 무관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 세계는 감각 기관이 포착한 정보 위에 구축된다. 청각의 한계는 곧 인간 경험의 경계를 규정한다. 이를테면 초저주파나 초음파는 인간에게 ‘무음’처럼 느껴지지만, 이를 감지하는 동물들에게는 풍부한 정보 세계의 일부다. 따라서 인간 청각의 한계는 생물학적 제약인 동시에,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제한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려는 과학기술의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초음파는 인간의 청각 범위 밖에 있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초음파 영상 기술로 활용된다. 임산부의 태아 진단부터 심혈관 검진에 이르기까지, ‘들리지 않는 소리’가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도구로 변모한 것이다. 반대로 초저주파 연구는 지구 환경과 밀접하다. 화산 폭발이나 대형 폭풍의 전조를 탐지하는 데 초저주파가 활용된다. 인간이 감각하지 못하는 영역이 과학의 눈과 귀를 통해 다시금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이다.
결국 인간 청각의 한계란 단순히 “20Hz~20kHz”라는 수치로 요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리학적 구조, 신경학적 한계, 나이와 환경의 영향, 그리고 진화의 산물로서 규정된다. 더 나아가 청각의 경계는 인간 경험 세계의 범위를 정하는 동시에,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재해석된다. 인간은 결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바로 그 결핍이 과학적 탐구와 기술적 혁신을 자극해 왔다. 청각의 한계는 곧 인식의 한계이며, 이를 넘어서는 시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초월하려는 지적 여정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