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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 이해하기

라포르: 언어를 넘어선 감응의 순간

by 김양훈
‘라포르(Rapport)’는 심리학에서 기원한 개념이지만, 문학작품에서 그 의미는 단순한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넘어 서로가 깊은 내면의 진동을 공유하는 순간, 즉 두 사람의 관계가 하나의 ‘공명(共鳴)’으로 도약하는 지점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라포르를 테마로 삼은 문학작품을 엮어, 그 장면들이 어떻게 인간관계와 감정의 본질을 비추는 예술적 장면으로 승화되는지를 살펴본다. 무겁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게. 우리들의 내일처럼.
1. 라포르의 발생: 언어를 넘어선 감응의 순간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서 미시킨 공작과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 사이의 긴장된 침묵 속에는, 말보다 오히려 더 강한 정서적 유대가 흐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자신들의 상처와 결핍을 서로 직감하는 순간, 그들은 말에 앞선 감정의 교류를 통해 신묘한 심리적 결속을 느낀다. 이것은 라포르가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두 영혼이 서로의 진실을 직감적으로 읽어내는 ‘직관적 접속’ 임을 문학적 상상으로 보여준다. 문학은 이런 순간을 포착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관계 맺음이란, 언어를 통한 대화를 뛰어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적 진동과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카뮈의 『이방인』에서도 주인공 뫼르소와 마리 사이에는 복잡한 설명 없이도 서로 의지하고 편안함을 주고받는 라포르의 순간들이 있다. 감정 표현에 서툰 뫼르소는 마리와 함께 있을 때마다 그가 속한 세계가 다른 모습으로 빛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관계는 말로 하는 감정 표현이 아니라, 옆자리를 허용하고, '곁'을 지켜주고 나누사이로 이어진다. 이는 라포르가 뜨거운 감정 교환의 산물이기보다는 상대방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 배려의 태도에서 비롯되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2. 인간관계의 상흔(傷痕)에서 피어나는 라포르

라포르는 갈등이나 상처가 없는 평화로운 관계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학작품 속에서 보이는 강렬한 라포르는 갈등이나 상처를 극복하고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나타난다.

예컨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와 브론스키는 파괴적이고 혼란스러운 사랑이지만, 거기에는 일시적으로나마 서로의 본심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사회적 시선과 규범으로부터 단절된 두 세계를 공유하며, 세상으로부터 추방된 자들만이 가지는 일종의 은밀한 라포르를 공유한다. 이는 라포르가 단지 조화의 표지가 아니라, 고통을 함께하는 공명이란 방식으로도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문학에서도 황순원의 「소나기」는 소년과 소녀 사이에 말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라포르를 만들어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들 사이에는 서툴고 불완전한 대화가 흐르지만, 비 내리는 시골길을 함께 걸어가는 장면에서 소년과 소녀는 둘 사이에 맺힌 '연민'이라는 순진무구한 라포르의 세계를 보여 준다.

3. 라포르의 문학적 의미: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문학에서 라포르는 종종 자기 발견의 통로로 기능한다. 어떤 인물이 타자와 깊이 접속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가진 내면의 모습을 비로소 이해한다. 제임스 볼드윈의 『지오바니의 방』은 이 지점을 아름답고도 고통스럽게 드러낸다. 데이비드와 지오바니가 서로의 상처와 욕망을 마주하며 만들어내는 라포르는, 결국 각자의 정체성과 욕망의 진실을 들춰낸다. 관계는 파국으로 끝나지만, 그 라포르는 데이비드의 내면에 남아 그의 삶을 수정하는 흔적으로 남는다.

라포르는 결국, 문학 안에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통로가 된다. 이 순간은 순수한 감정적 교류의 순간이자, 서로의 깊은 층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며 새로운 의미가 태어나는 지점이다.

4. 결론: 라포르는 문학이 만들어내는 가장 세밀한 진동

라포르는 문학에서 단순한 친밀감의 표지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타자와 맺을 수 있는 깊고 미묘한 접촉의 흔적이다. 말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떨림, 서로의 상처를 읽어내는 순수한 순간, 고통과 고독을 함께 견디는 연민의 진동. 이 모든 것이 문학 속 라포르의 자장을 이룬다.

따라서 라포르를 다룬 문학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가장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며, 그 순간들을 읽어내는 독자 역시 타인의 마음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가진 울림의 방식을 새롭게 감지하게 된다.


'라포르'에 대해 글을 쓰다가 우연히 우희종 교수의 페북 담벼락 글을 보게 되었다. 글의 내용이 내가 전하고자 했던 뜻과 같은 맥락이었다. 아래에 옮긴다.

헤밍웨이는 내가 종종 하는 ‘지금 이대로 온전하다‘는 말을 매우 잘 표현해 주고 있다. 61세에 엽총 자살한 것을 보면, 그토록 원한 그런 사랑을 줄만한 이가 옆에 없었던 것 같아 마음 아프고. 완전이나 완벽이 아니라 온전하다는 것은 우리는 늘 아픔과 고통, 슬픔이나 좌절, 무력함이나 공허 자체가 삶의 일부임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그런 힘든 순간일 때 각자의 삶의 몫을 존중하며 일상의 소소함으로 서로 함께 하는 사랑이 소중하다.

따분한(?) 루틴으로 가득한 일상의 아름다움. 종종 사람들은 하늘에 상정한 가상의 신 내지 아버지로 버티기도 하지만, 기실 우리 각자의 존재, 삶이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낙엽과도 같다. 그 무상함을 사랑할 때 헤밍웨이가 바라던 사랑을 알게 된다.

(이대로 온전하기에 굳이 각종 옳은 말이나 경전과 도덕윤리 가르침에 맞춰 자신을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면 변화하도록 노력하면 그만이고. 주어진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말은 늘 유효하지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 가장 어두운 순간에 우리는 해결책이나 조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인간적 유대감—조용한 존재감, 부드러운 손길. 이 작은 행동들이 삶이 버거울 때 우리를 안정시키는 닻이 된다.
나를 고치려고 하지 말아요. 내 고통을 떠맡거나 내 그림자를 쫓아내려 하지 말고. 내가 내 안의 폭풍을 견디는 동안 그저 내 곁에 앉아 있어 줘요. 내가 길을 찾을 때까지 내가 잡을 수 있는 든든한 손길이 되어 주세요.
내 고통은 내가 짊어져야 할 것이고, 내 싸움은 내가 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는 이 광활하고 때로는 두려운 세상에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상기시켜 준다. 내가 부서진 것처럼 느껴질 때조차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조용히 일깨워 주죠.
그러니 내가 길을 잃은 듯한 그 어두운 시간에, 당신은 곁에 있어 줄 수 있겠는가? 구세주가 아니라 동반자로서. 아침이 올 때까지 내 손을 잡아주고, 내 자신의 힘을 기억하도록 도와주면서.
당신의 조용한 지지가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것이 내가 내 자신을 잊어버릴 때조차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게 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Ernest Hemingway once said: In our darkest moments, we don’t need solutions or advice. What we truly long for is human connection—a quiet presence, a gentle touch. These small gestures are the anchors that keep us steady when life feels overwhelming.
Please don’t try to fix me. Don’t take on my pain or chase away my shadows. Just sit beside me as I weather my own inner storms. Be the steady hand I can reach for while I find my way.
My pain is mine to carry, my battles are mine to fight. But your presence reminds me that I am not alone in this vast and sometimes frightening world. It’s a silent reminder that I am worthy of love, even when I feel broken.
So, in those dark hours when I feel lost—will you be here? Not as a savior, but as a companion. Hold my hand until morning comes, helping me remember my own strength.
Your quiet support is the most precious gift you can give. It’s a kind of love that helps me remember who I am, even when I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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