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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소설] 구엄리 옛이야기-6화

by 김양훈

오을돌(吳乙乭)

석철이 오을돌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늦은 가을이었다. 그는 장수물 돌팡에서 잠시 쉬며 마른 목을 축이고 있었다. 서쪽 편 장전마을로 이어지는 꼬부랑길에 빈 지게를 걸머진 한 남자가 둘레둘레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의 발걸음은 심하게 절뚝거렸다. 마치 일부러 더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그는 지게도 벗지 않고 조롱박 주걱을 들더니 샘물에서 물을 첨벙 길어 올려 단숨에 들이켰다. 가까이서 보니 살짝 얽은 곰보였다. 그는 얼굴을 들이밀며 다짜고짜 석철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요 엄쟁이 소금장시 양반!” 하며 너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손바닥은 거칠고 두툼하고 넓었다. “나? 광령 옹기장수 오을돌이우다!” 장구 치고 북 치듯 통성명을 저 혼자서 다 하는 것이다. 오을돌은 나이를 묻고 얼추 맞추더니, “내가 큰형님뻘일세” 하며 껄껄 웃었다. 그는 옹기를 지게 한가득 오일장에 지고 나가 점심나절에 다 팔고 빈 지게를 지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잠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은 이윽고 팡돌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마른 폭낭가지 위에 줄을 지어 앉았던 까마귀 떼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 올랐다. 깍깍 울어대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누렁쇠도 목덜미를 꼬며 음매 소리를 길게 내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오랜 지기나 되는 것처럼 도란거리며 광령마을을 향해 걸었다. 이야기 끝에 신축민란의 장두 이재수가 한양에 잡혀가 교수형을 당한 후 남긴 곁가지 사연을 듣더니 오을돌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식은 무덤 하나 남기지 못했다는 등 그런 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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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작가, 칼럼니스트, 늦깎이 화가, 야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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