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by 김양훈
윔폴 가의 침묵을 깨고 피렌체의 태양으로: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 1806-1861)은 빅토리아 시대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는 단순히 '로버트 브라우닝의 아내'나 '서정적인 사랑 시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의 문학적 생애는 가부장적 억압이라는 물리적·정신적 감옥을 뚫고 나와,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목소리를 정립해 나간 '해방의 서사' 그 자체다.

윔폴 가 50번지:
병약함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투옥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에게 가정은 흔히 '천사의 안식처'로 묘사되었으나, 엘리자베스에게 그것은 '벨벳으로 장식된 감옥'이었다. 에드워드 몰턴-배럿의 절대적인 가부장 권력 아래서 엘리자베스의 병약함은 어쩌면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녀가 쓴 초기 시들은 내면으로 침잠하며 고통을 관조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늘 탈출에 대한 갈망이 서려 있었다.

Portrait of Robert Browning circa 1888.
『포르투갈어로부터의 소네트』:
사랑을 통한 자아의 재건

로버트 브라우닝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인격적 부활'이었다. 유명한 시집 『포르투갈어로부터의 소네트』는 제목 뒤에 자신을 숨기려 했던(번역 詩인 것처럼 위장했던) 수줍은 여성 시인이 어떻게 사랑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그 방법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How do I love thee?

Let me count the ways."


이 유명한 구절은 단순한 애정 고백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정량화하고 구조화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주체가, 상대방과 대등한 위치에서 나누는 지적이고 영적인 선언이다. 그녀의 사랑은 의존이 아니라 확장이었다.

사회적 불의에 맞선 불꽃의 시인

아버지의 억압에서 탈출해 이탈리아로 이주한 이후, 엘리자베스의 시선은 자신의 침실을 넘어 세상으로 향했다. 그녀는 아동 노동을 비판한 「아이들의 울음소리(The Cry of the Children)」를 썼고, 이탈리아의 독립 운동을 지지했으며, 여성의 예술적 성장을 다룬 서사시 『오로라 리(Aurora Leigh)』를 발표했다. 특히 『오로라 리』는 당대 여성에게 강요되던 결혼이라는 굴레와 예술가로서의 자아 사이의 갈등을 정면으로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녀는 "여성 시인은 없다"는 편견에 맞서, 여성이 어떻게 지적인 사유와 뜨거운 열정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지를 작품으로 증명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녀를 가리켜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 시인 중 한 명"이라고 상찬한 것은 그냥 가벼운 말이 아니다.

자신을 선택한 용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위대함은 그녀가 '구조'받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걸어 나왔다'는 점에 있다. 그녀의 삶은 고난을 견디는 인내보다, 고난을 끝내기로 결심하는 결단이 더 숭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시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타인의 기대, 사회적 편견, 혹은 스스로 만든 두려움—앞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녀는 속삭인다. 사랑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며, 그 사랑의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Portrait Etching of English Victorian Poet Elizabeth Barrett Browning by William Harry Warren Bickne

I will write no plays;

because the world,

the world of men,

contains no room for me.

나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세상,

즉 남성들의 세상에는

나를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Earth’s crammed with heaven,

And every common bush afire with god;

But only he who sees, takes off his shoes.

대지는 천국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흔한 덤불은 신의 불길로 타오른다.

하지만 보는 자만이 신발을 벗는다.


- 서사시 『오로라 리(Aurora Leigh)』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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