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과 '영원'의 전이-미학적 연대와 현대시의 계승
러시아 시문학의 은세기 상징주의가
한국 근대 시문학에 끼친 영향
러시아 문학사의 찬란한 정점(頂点)인 '은세기(Silver Age)' 시문학은 19세기 사실주의의 토양 위에서 피어난 신비주의와 미학적 혁명이었다. 블로크(A. Blok), 벨르이(A. Bely), 브류소프(V. Bryusov)로 대표되는 러시아 상징주의는 프랑스로부터 수입된 외래 사조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 지배라는 질곡을 통과하던 한국 근대 문단의 내면에 깊은 파동을 일으켰다. 아래 글에서는 러시아 상징주의의 미학적 특질이 한국 시인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으며, 그것이 한국 현대시의 문법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1. 세기말의 우울과 '데카당스'의 공유
러시아 상징주의가 19세기말 제정 러시아의 몰락 직전, 종말론적 불안과 초월에 대한 갈망에서 탄생했듯, 1920년대 한국 문단 역시 '3.1 운동'의 좌절 이후 깊은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이때 유입된 러시아 상징주의는 한국 시인들에게 단순한 문학 양식이 아닌,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게 하는 '미적 도피처'이자 '초월의 언어'였다.
특히 《백조》 동인을 중심으로 나타난 초기 한국 상징주의는 러시아의 '데카당스'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이상화, 박종화 등의 시에서 나타나는 병적인 우울, 죽음에 대한 찬미, 그리고 감각의 극단적 강조는 브류소프나 발몬트(K. Balmont)가 보여준 미학적 탐닉과 궤를 같이한다. 이들에게 시는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심연을 응시하는 거울이었다.
백조가 처음 나온 것은 1922년 1월 9일 홍사용, 홍사중과 김덕기의 후원으로 순수문학 동인지인 《백조》가 창간되었다. 편집은 홍사용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1호는 배재학당의 교장직에 있었던 아펜젤러, 2호는 보이스여사, 3호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로로 외국인을 내세웠다. 백조의 첫 호에는 수상류(隨想類)및 동화, 희곡 등이 게재되었는데, 의욕이 너무 강한 나머지 2, 3편의 작품을 한꺼번에 수록하면서 질적인 면에서 조금은 아쉬운 창간호였다. 2호는 1호보다 좀 더 절제되고 정돈된 느낌으로 안정감을 주기도 했지만, 그 체재와 작품의 뼈대에 해당되는 의식이라든가 사조, 경향 등은 창간호와 대체로 비슷했다. 1호, 2호가 한해에 출간된 것에 비해 3호는 1년 여만에 출간할 수 있었는데, 순탄하지 못했던 출간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3호가 지니는 특징은 이 호가 전례 없이 질적 향상을 이룩한 작품들을 수록한 데 있다. 대표적으로 《할머니의 죽음》,《목 매이는 여자》,《여이발사》 등이 실려 있으며, 홍사용의 대표작 《나는 왕이로소이다》도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백조파에 대한 강한 반감을 지니고 있던 김기진의 와해공작으로 백조는 3호를 마지막으로 끝나고 말았다.
여기서 동인지 《백조(白潮)》 3호의 발행인으로 기록된 '훼루훼로'는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매우 흥미롭고도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의 정체는 러시아 혁명 이후 고국을 떠나 조선으로 흘러 들어온 러시아 망명객 '콘스탄틴 벨리페로(Constantin Beliferov)'이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볼 것이다.
[註]《백조》(白潮)는 1922년 1월 창간된 순수 문예지로 초기 낭만주의 문학운동의 중심적 구실을 하며 3호까지 발간되었다. 예술로의 순교를 제창하며 탄생하였고, 예술을 세계의 일부가 아닌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동인들이다. 1923년 폐간하였다.
동인은 홍사용, 현진건, 이상화, 나빈, 박종화, 박영희, 노자영 등 시인·소설가로 구성되어 한국의 낭만파 또는 백조파로 불리는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때의 낭만주의는 3·1 운동 이후의 민족적 비관과 절망으로 말미암아 실망·퇴폐·비애·동경 등이 주조를 이룬 감상주의와 비슷한 것이었다. 동인의 한 사람이었던 박영희의 술회대로 《백조》 동인들은 모두 서정적인 애상(哀傷)의 시인·작가들로 《폐허》의 동인들과 흡사한 퇴폐·염세·감상·낭만적 경향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특히 《백조》파의 성격은 시인들로 대표되는데, 그들은 이념에서는 낭만주의, 기분은 퇴폐주의, 문학 태도에서는 상징주의, 예술관에서는 유미적(唯美的)인 것을 내세웠다. 따라서 《백조》파의 문학은 감상·낭만·퇴폐·유미적인 것을 공통된 문학 경향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근대 문예사조 면에서 볼 때 후기 낭만주의의 영향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동인 홍사용은 〈봄은 가더이다〉(《백조》 2호), 〈나는 왕이로소이다〉(《백조》 3호) 등의 감상적인 낭만시를 발표했고, 나빈은 소설 〈젊은이의 시절〉(《백조》 창간호),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백조》 2호), 〈옛날의 꿈은 창백하여이다〉 등을 통해 감상과 이상의 세계를 그렸다. 특히 나빈은 19세의 나이에 조숙한 필치로 장편 〈환희(幻戱)〉를 발표하여 문단의 일대 주목을 받았고, 계속하여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三龍)〉, 〈뽕〉 등 낭만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발표하여 그 앞날이 촉망되던 중 25세를 일기로 요절했다. 이상화는 《백조》 창간호에 〈말세(末世)의 희탄〉을 비롯하여, 명편 〈나의 침실로〉를 발표, 상징적인 수법으로 미지의 신비와 꿈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시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박종화는 초기 작품으로 〈흑방비곡(黑房秘曲)〉, 〈밀실(密室)로 돌아가다〉, 〈정밀(靜謐)〉 등의 시를 통해 낭만적 꿈의 세계를 펼쳤다. 그러나 그가 원숙의 경지를 보인 것은 〈석굴암(石窟庵) 대불(大佛)〉, 〈청자부(靑磁賦)〉 등의 후기 작품에서였고, 뒤에 그는 역사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한편, 박영희는 《백조》 창간호에 〈미소의 허영시(虛榮市)〉를 비롯하여 〈어둠 너머로〉, 〈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 〈꿈의 나라로〉 등의 비애와 감상의 낭만시를 발표했으나 뒤에 신경향파의 등장 전후부터 평론가로 활약하였다. 또한 현진건은 《백조》의 동인으로 출발, 초기에 〈빈처(貧妻)〉,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墮落者)〉 등 현실에 육박하는 제재(題材)를 다루어, 완벽한 구성, 치밀한 묘사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구현했다. <위키백과>
2. 알렉산드르 블로크와 '영원한 여성상'의 변주
러시아 상징주의의 거장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아름다운 여인(Beautiful Lady)' 모티프는 한국 시문학에서 흥미로운 변용을 거친다. 블로크에게 '여인'이 지혜(Sophia)이자 구원을 상징하는 형이상학적 실체였다면, 한국의 시인들에게 이는 잃어버린 조국 혹은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이상향으로 치환되었다.
한용운의 '님':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연애 시편들은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대상의 절대성과 구도적 자세는 러시아 상징주의가 추구했던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조우'와 맞닿아 있다.
김억의 번역과 수용: 러시아 문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던 김억은 러시아 시인들의 감상적인 어조와 상징적 수법을 한국어 리듬으로 이식했다. 이는 한국 시가 투박한 계몽의 언어를 벗어나 섬세한 내면의 음악성을 획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3. 음악성과 상징: '언어의 마술'로의 이행
러시아 상징주의자들은 폴 베를렌의 "무엇보다도 음악을(De la musique avant toute chose)"이라는 선언을 충실히 따랐다. 벨르이는 언어의 음성적 가치를 통해 우주의 조화를 드러내려 했다. 이러한 '시의 음악성'에 대한 강조는 한국 시인들에게 언어 조탁(鳥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박용철, 김영랑으로 이어지는 순수시 운동은 러시아 상징주의의 방법론적 성과를 한국적 가락으로 정착시킨 사례다. 이들은 시어의 의미보다는 울림과 잔상에 집중하며, 대상의 직접적인 묘사 대신 암시와 상징을 통해 독자의 직관에 호소했다. 이는 한국 현대시가 산문적 서술에서 벗어나 고유의 예술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4. 역사적 한계와 실존적 승화
하지만 한국 문단의 러시아 상징주의 수용에는 차이점과 걸림돌이 있었다. 러시아 시인들이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상징주의를 사회적 실천 혹은 종교적 완성으로 밀어붙였던 것과 달리, 식민지 조선의 시인들은 검열과 탄압 속에서 다분히 내면적이고 관념적인 세계로 침잠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이 남긴 유산은 강렬했다. 그들은 한국 시인들에게 '현실 너머를 꿈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시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영원을 포착하는 신비로운 매개체임을 알려준 것이다.
[결론] 미학적 연대와 현대적 계승
러시아 은세기 상징주의는 한국 근대 시사(詩史)에 '상징'이라는 강력한 미학적 무기를 소개해 주었다. 비록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그 철학적 깊이를 온전히 체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언어의 감각화와 형이상학적 사유의 결합은 이후 서정주, 유치환 등 한국 현대시의 거목들에게로 이어지는 자양분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블로크의 시린 겨울과 김소월의 애잔한 가락 사이에서 공통의 정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예술의 세계를 향해 던지는 고독한 외침이다. 러시아 상징주의가 한국 문단에 끼친 영향은 단순한 수용의 관계를 넘어, 슬라브적 우울과 조선의 한(恨)이라는 정서가 만나 이룬 미학적 연대였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상징주의의 정점이자 알렉산드르 블로크(Aleksandr Blok)의 초기 시 세계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여인에 관한 시편(Stikhi o Prekrasnoi Dame)』연작 중 가장 핵심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블로크는 이 연작에서 자신의 아내인 류보피 멘델레예바를 지상의 여인이 아닌, 신성한 지혜(Sophia)이자 구원의 표상으로 찬미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태양은 저물어가고,
지평선은 붉은 노을로 타오릅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의 영혼을 밝히는 빛,
침묵 속에서 당신의 발자취를 듣습니다.
세상의 소음은 멀리 사라져 가고
하얀 안개가 대지를 덮을 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성소에 서서
당신의 나타나심을 기도로 맞이합니다.
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영원한 신비여,
당신의 얼굴은 구름 뒤에 숨어 있으나,
나는 압니다, 당신이 이 어둠을 뚫고
빛나는 미소로 내게 오시리라는 것을.
(연작 『아름다운 여인에 관한 시편』 중)
[詩評]
1. 시적 상징과 미학적 해설
이 시는 19세기말 러시아를 휩쓴 솔로비요프(Vladimir Solovyov)의 형이상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블로크에게 '여인'은 단순히 연모의 대상이 아니라, 타락한 세계를 정화하고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여성적 신성(Eternal Feminine)'이다.
.•지평선과 노을: 이는 현세(지상)와 초월적 세계(천상)가 만나는 경계 지점을 의미한다. 블로크는 이 경계에서 '여인'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기다림과 예감: 상징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취'가 아니라 '예감(Anticipation)'이다. 여인은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인은 직관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확신한다.
.•신비주의적 분위기: 안개, 침묵, 성소와 같은 시어들은 이 시가 단순한 연애시가 아니라 종교적 제의(Ritual)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註]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Vladimir Solovyov)는 러시아 은세기 문학뿐만 아니라 러시아 종교 철학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다. 블로크를 비롯한 상징주의 시인들은 그의 철학을 문학적 언어로 번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로비요프 형이상학의 핵심 개념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만물일체론 (Vseinstvo, All-Unity):
솔로비요프 철학의 근간은 "세상의 모든 만물은 신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이다.
신과 인간, 정신과 물질, 천상과 지상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문학적 영향: 상징주의 시인들이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물질)를 통해 보이지 않는 본질 세계(신성)를 감각하려 했던 근거가 되었다.
2. 소피아 (Sophia, 신성한 지혜):
솔로비요프 형이상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시적인 개념이다
.•정의: 소피아는 '신의 지혜'이자 '우주의 영혼'이다. 그녀는 신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여성적 원리로 간주된다.
•역할: 타락하고 분열된 세계를 다시 신성한 '만물일체'의 상태로 되돌리는 중재자다.
•문학적 영향: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이 '소피아'를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시적 형상으로 구체화했다. 시인들에게 소피아는 영감의 원천이자 구원의 여신이었다.
3. 신인성 (Bogochelovechestvo, God-manhood):
인간이 단순히 피조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빛을 받아들여 '신과 닮은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예술)를 신성한 작업으로 격상시켰다.
•문학적 영향: 시인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예언자'이자 '사제'라는 자각을 심어주었다.
[요약]: 왜 상징주의자들에게 중요했는가?
솔로비요프는 현실을 "진리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로 보았다. 상징주의자들은 그의 철학에 따라 시적 상징(Symbol)이야말로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소피아(진리)'에 도달하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라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은 한국 문단에 들어와, 고통스러운 식민지 현실(분열된 세계)을 극복하고 영원한 가치(님, 조국, 이상향)를 찾으려는 구도자적 시 정신의 철학적 바탕이 되었다.
2. 한국 문단에 미친 영향: '님'의 형이상학
이러한 블로크의 '아름다운 여인' 모티프는 한국 근대 시인들에게 '절대적 타자에 대한 갈구'라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한용운과의 조응: 한용운의 '님'은 블로크의 '여인'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떠나갔으나 내 안에 살아있는 존재,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만날 영원한 실체로서의 '님'은 블로크가 추구한 형이상학적 여인상과 궤를 같이한다.
•여성적 어조의 채택: 블로크가 스스로를 '기다리는 자' 혹은 '낮은 곳의 종'으로 설정했듯이, 한국의 초기 상징주의 시인(김억, 주요한 등)들도 자신을 수동적이고 애절한 화자로 설정하여 절대적 존재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3. 언어적 특징: 음악성과 색채
블로크는 시에서 '소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러시아어 원문에서는 종소리나 바람 소리를 연상시키는 모음의 반복을 통해 황홀경(Ecstasy)을 만들어낸다. 한국 문단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1920년대에 이르러 시의 내용보다는 리듬, 음영, 뉘앙스를 중시하는 '순수시'적 경향이 싹트게 되었다.
참고: 블로크는 이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아름다운 여인'이 '거리의 매춘부'나 '낯선 여인(The Unknown Woman)'으로 타락하거나 변모하는 과정을 그리며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이 변화의 과정 역시 한국 지식인들이 겪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식민지 지적 방황)와 유사한 궤적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