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르게이 예세닌
지는 해의 붉은 날개
세르게이 예세닌
지는 해의 붉은 날개는 사라져 가고 있고,
울타리는 저녁 안갯속에서 조용히 졸고 있다.
서러워하지 마라, 나의 하얀 집이여,
또다시 너와 내가 혼자가 된 것을.
초승달은 초가지붕에서
시퍼런 날을 씻고 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지 않았고
호젓한 건초더미 뒤로
배웅하러 나가지도 않았다.
세월은 불안을 가라앉혀 주는 것.
세월처럼 이 아픔은 지나가리라.
입술도, 티 없이 깨끗한 영혼도
다른 사내를 위해서 그녀는 지키고 있는 것이다.
기쁨을 찾는 자는 힘이 없으며,
의젓한 자만이 힘으로 산다.
또 어떤 자는 구겨서 내던지리라,
젖어서 썩은 멍에처럼.
시름 속에서 내가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눈이 심술궂게 휘날리리라.
그리고 그녀도 우리 고을에 오리라
제 어린것의 몸을 녹이게 할 양으로.
털외투를 벗고 쇼올을 풀고,
나와 함께 불 가에 자리를 잡으리라.
그리고 차분하고 상냥하게 말하리라,
어린애는 나를 닮았노라고. (1916)
[詩評]
세르게이 예세닌(Sergei Yesenin)의 1916년 작, 「지는 해의 붉은 날개」는 러시아의 자연주의적 서정과 개인의 상실감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초기작품이다. 1916년은 예세닌이 서구화된 도시 페트로그라드¹에서 시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이자, 동시에 고향인 랴잔의 농촌 풍경에 대한 깊은 향수와 그곳에 두고 온 순수함에 대한 회한을 품고 있던 때이다.
이 시는 이별의 노래를 넘어, ‘운명에 대한 수용’과 ‘시간에 의한 정화’를 노래하는 한 편의 서정적 드라마다. 이 시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측면에서 시평을 해본다.
[註1] 페트로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으로,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사용되었다. 이 도시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으며, 레닌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로 개명되었다. 이후 1991년 소련 붕괴 후, 국민투표로 원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복원되었다.
1. 색채와 이미지를 통한 시간의 흐름
시의 도입부인 “지는 해의 붉은 날개”와 “시퍼런 날을 씻는 초승달”의 대비는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하다. 붉은색 노을이 사라지고 차가운 청색 달빛이 등장하는 과정은 단순히 시간의 경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뜨거웠던 사랑의 감정이 가라앉고, 차갑고 객관적인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화자(話者)의 심리적 전이를 상징한다.
특히 울타리가 ‘졸고 있다’거나 초승달이 ‘날을 씻는다’는 식의 의인화는 예세닌 특유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화자가 느끼는 고독을 적막한 농촌의 밤 풍경 속에 녹여낸다.
2. 상실을 극복하는 '인내'와 '세월'의 미학
이 시에서 가장 울림이 큰 대목은 “세월은 불안을 가라앉혀 주는 것”이라는 구절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내가 아닌 다른 사내를 위해 정조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화자에게 뼈아픈 현실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원망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기쁨을 찾는 자는 힘이 없으며,
의젓한 자만이 힘으로 산다."
이 구절은 예세닌이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일시적인 환희와 기쁨에 매몰되는 삶은 유약하지만, 고통을 견디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는 강인하다는 역설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의젓함'은 러시아 농촌 공동체가 가진 묵묵한 생명력과 닮아있다. 사랑의 아픔조차 “젖어서 썩은 멍에”처럼 내던질 수 있는 결단력은, 세월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임을 강조한다.
3. 상상을 통한 재회와 용서의 완성
시의 후반부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현재의 이별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겨울날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찾아오는 장면을 상상한다.
특히 “어린애는 나를 닮았노라고” 말하는 마지막 행은 이 시의 백미(白眉)다. 그녀가 낳은 아이가 화자를 닮았다는 것은 생물학적 친부임을 뜻하기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었던 영혼의 깊은 유대와 흔적을 의미한다. 화자는 자신을 떠난 여인이 다시 돌아와 불가에서 몸을 녹이는 미래의 꿈를 꿈으로써, 현재의 상실감을 용서와 자애로 승화시킨다.
총평: 고독을 응시하는 서정의 힘
「지는 해의 붉은 날개」는 청년 예세닌이 가졌던 고뇌와 성숙함이 함께하는 시편이다. 그는 사랑을 잃은 슬픔을 비극적으로 절규하기보다는, 눈 내리는 고향 집의 따뜻한 아랫목 같은 평온함으로 감싸 안는다.
이 시는 독자에게 묻고 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떠나간 사람인가, 아니면 그 사람을 놓지 못하는 나의 욕망인가? 예세닌은 '시간'이라는 약을 통해 상처를 응시하고, 그 상처 위로 '첫눈' 같은 축복이 내리길 기다린다. 결국 이 시는 상실을 겪은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불씨와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떠나간 사람인가, 아니면
그 사람을 놓지 못하는 욕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