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르게이 예세닌 (번역: 벨랴코프 일리야)
후회하지도, 부르지도, 울지도 말라
- 세르게이 예세닌
후회하지도, 부르지도, 울지도 말라.
하얀 사과나무 꽃구름이 사라지는 것처럼
모든 것들 또한 지나가리라.
시들어 가는 황금빛에 감싸인 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으리라.
이제 너는 전처럼
그렇게 심장이
서늘하게 고동치지도 않을 것이며,
맨발의 자작나무 숲도
나를 들판으로 유혹하지 못하리라.
방랑의 넋이여!
너는 이제 드물게
내 입술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구나.
사라진 나의 신선함이여,
눈의 생기와 감정의 범람이여.
이제 나는 욕망에 인색해졌노라.
오, 나의 삶이여,
네가 내 꿈이었던가?
마치 나는 이른 봄날 아침에
분홍빛 말을 타고 달린 것만 같구나.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덧없이 사라지나니,
단풍나무 잎사귀가
조용히 떨어지듯 스러져 가리.
그러니 영원히 축복이 있기를,
꽃피고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모든 것들에게. (1922)
-번역: 벨랴코프 일리야, 《러시아의 문장들》
벨랴코프 일리야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16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러시아극동국립대학교 한국학과를 졸업한 뒤에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에서 사회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수원대학교 외국어학부 러시아어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양한 채널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있고, 한국 및 러시아 문학 작품을 양국에 소개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러시아 그림 에세이 <어딘가에 나의 서점이 있다>를 한국에 소개했다. 저서로는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2022)가 있다.
하얀 사과나무 꽃구름이 사라지는 것처럼
모든 것들 또한 지나가리라.
-세르게이 예세닌, <후회하지도, 부르지도, 울지도 말라> 中
나는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시보다 소설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나도 좋아하는 시인이 있는데, 바로 이 장에서 소개하는 세르게이 예세닌과 앞서 언급한 마야콥스키다.
예세닌의 언어는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적이고 뭉쿨하다. 읽을 때면 때로는 눈물이 흐르고, 때로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의 시에는 자연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의 감정을 자연과 비교하거나, 자연을 통해 표현한 구절이 많다. 다른 시인들에게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비유, 언어유희, 그리고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말투는 예세닌 시의 특징이다. 하지만 독특한 어투와 특정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그의 시를 정확히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그렇지만 러시아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 완벽한 번역은 아니지만 예세닌의 시를 소개했다. 소개한 시는 나이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담고 있다.
나이에 대한 러시아와 한국의 인식은 비슷한 점을 많이 공유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유교적 원리가 강한 한국에서는 나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형, 오빠, 누나, 언니 등의 호칭은 나이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반면 러시아어에서는 나이를 기준으로 한 호칭이 없다. 한국인이 보기에 러시아어는 어른에게 존경을 표하는 방법이 제한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럽, 특히 미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매우 보스적이고, 나이에 대한 존중이 엄격한 나라다. 내 경험을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만, 한국과 미국을 극단이라고 본다면 러시아는 그 중간쯤에 있다. (중략)
러시아와 한국의 또 다른 차이점은 젊음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에서는 젊을 숭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를 먹는 일이 마치 죄인인 것처럼 나이를 숨기려고 애쓴다. 피부 관리에 신경 쓰고, 옷도 유행에 맞춰 입으려고 한다. 아이돌 문화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긴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만 보고 싶어 하고, 젊은 사람만 좋아한다. 나이를 먹었다고 조롱하거나 비꼬기도 한다. 예를 들어 "너 그새 많이 늙었네!"라는 말로 친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는다. 나이를 존중한다는 유교 문화에서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보이는데, 실재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나 역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런 면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러시아인들은 각자 나이에 맞는 매력이 있다고 믿는다. 젊을 때는 세상을 다 바꿀 것 같은 힘과 패기가 매력이지만, 노년기에는 인생의 '황금기'로서 그동안 쌓아 온 지혜와 현명함이 매력이다. 그런 이유로 "너 나이 먹었구나!"라는 표현은 러시아에서 매우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철이 들었다', '현명해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반면 "젊어 보인다"는 말은 러시아에선 부정적인 뉘앙스에 가깝다. 젊게 보이거나 동안(童顔)인 사람은 그만큼 철이 들지 않았거나, 아이처럼 어리석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다."아주 젊어 보이세요!"라는 말은 여자에게는 모르지만 남자에게는 분명한 모욕이다. (중략)
세르게이 예세닌은 인생의 단계를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는 이 시에서 젊음을 사과나무와 비교하는데, 이는 러시아에서 봄의 상징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에서 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개나리가 생각나듯, 러시아에서 봄은 꽃이 피는 사과나무로 상징된다.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날씨가 다가온다는 확실한 징후가 바로 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연한 색깔의 사과나무 꽃이다. 이는 봄의 절정을 상징하며, 예세닌은 이 따뜻함과 기대감으로 넘치는 계절을 풋풋한 젊음에 비유했다.
젊음은 봄날의 사과나무에서 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꽃구름과 같다. 하지만 꽃이 피고 꽃잎이 떨어지듯, 젊음도 빨리 지나가 버린다. 그렇다고 이를 후회하거나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오듯, 젊음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늙음이 다가온다. 예세닌은 늙어 가는 과정을 노란 단풍에 비유했다. 여름이 끝나고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었을 때, 우리는 기나긴 여름을 아쉬워하면서도 공기가 맑아지고 시원해지는 가을 또한 아름다운 계절로 반긴다.
인간의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는 방식은 예세닌의 독창적인 접근은 아니지만, 이를 예세닌만큼 아름답고 섬세하게 표현한 시인은 러시아에서도 드물다.
<여기까지 글은 벨랴코프 일리야의 책『러시아의 문장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P.S. 세르게이 예세닌의 시 <후회하지도, 부르지도, 울지도 말라>에 대한 번역시를 벨랴코프 일리야 번역을 포함해 세 편을 다 읽어 보았다. 나에게 나머지 두 편은 일리야의 번역에 한참 뒤져 보였고, 마음에 감동이 뒤따르지 않았다. 러시아인의 피가 흐르는 번역이라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 읽어 본 러시아 번역시 중 가장 '멋지다'라는 생각을 했다. 고마워요 벨랴코프 일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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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벨랴코프(Илья Беляков, 주민등록상 한국 이름: 벨랴코프 일리야, 1982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