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벨라 아흐마둘리나
침묵
벨라 아흐마둘리나
그토록 강하고 현명한 자 누구인가?
내 목에서 목소리를 빼간 자 누구인가?
목구멍의 검은 상처는
소리를 여위어도 설워할 수 없구나.
3월, 너의 소박한 업적은
칭송과 사랑받아 마땅하지만
내 언어의 나이팅게일은 죽었고
그의 정원은 사전이 되었다.
-오, 노래하라-
내 입은 강설과 절벽과 관목에게 사정한다
나는 소리친다 그러나 침묵이 입김처럼
입술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영감-벙어리 영혼이
단숨에 순간을 집어 삼킨들
영혼의 해방을 어찌할거나
다만 내가 뱉은 말만이 구원하리라.
나는 숨을 몰아쉬고 헐떡거리고 거짓을 말한다
그러나 노래할 수 없는
눈 속 나무의 광채에
아직은 침묵을 지키리라.
끓어 넘치는 맥박을 잠재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내가 숨 가쁘게 노래하는 모든 것의
영원하고 완전한 화신이 되리라.
나는 그토록 말이 없었고
그토록 모든 말의 이름을 사랑했고
갑자기 죽은 듯 피곤해졌다.
그러니 독자여, 나를 찬미하는 노래 부르라.
석영중 옮기고 엮음,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中
벨라 아흐마둘리나의 시 <침묵>은 시인으로서 겪는 창작의 고통과 언어의 한계,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된 예술적 순간을 아주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1. [시평] 언어를 잃은 자의 역설적인 노래
이 시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상실감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인은 그 침묵을 통해 더 깊은 존재의 핵심에 다가갑니다.
■언어의 죽음과 사전: "나이팅게일(노래)은 죽었고 그의 정원은 사전이 되었다"는 구절이 압권입니다. 생동감 있게 날아다니던 시어들이 이제는 박제된 단어들의 집합인 '사전' 속에 갇혀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시인에게 언어의 상실은 곧 존재의 위기입니다.
■침묵의 형상화: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입가에는 동그란 입김(침묵)만 맺힙니다. 이는 표현하고 싶은 내면의 뜨거움과 그것을 담아내지 못하는 외부적 한계 사이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구원으로서의 노래: 시인은 결국 "내가 뱉은 말만이 구원하리라"고 선언합니다. 비록 지금은 숨이 가쁘고 거짓을 말하는 것 같은 고통 속에 있지만, 이 침묵의 시간을 견뎌냈을 때 비로소 대상의 '영원하고 완전한 화신'이 될 수 있다는 예술적 의지를 드러냅니다.
■독자에게 건네는 손: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독자에게 자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청합니다. 이는 시인의 고독한 투쟁이 결국 타자(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완성됨을 시사합니다.
2. 벨라 아흐마둘리나(Bella Akhmadulina)의 생애
벨라 아흐마둘리나(1937–2010)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뉴 웨이브' 시인 중 한 명입니다.
■혈통과 배경: 타타르족 아버지와 러시아-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이국적인 외모와 독특한 음색, 귀족적인 풍모는 그녀를 당대 최고의 스타 시인으로 만들었습니다.
■해빙기의 기수: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 스탈린 사후 찾아온 '해빙기'에 예브게니 옙투셴코(그녀의 첫 남편이기도 함),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등과 함께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서 시를 낭송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예술적 고집: 정치적 구호보다는 개인의 내면,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 예술가의 실존적 고민에 집중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당국으로부터 '비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끝까지 자신의 예술적 지조를 지켰습니다.
3. 작품의 배경: 왜 '침묵'인가?
이 시가 쓰인 배경에는 두 가지 중요한 층위가 있습니다.
■시대적 압박: 소비에트 연방 체제 아래서 시인은 끊임없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진실을 말할 수 없을 때, 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저항은 '침묵'이었습니다.
■예술적 완벽주의: 아흐마둘리나는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어 극도로 결벽증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녀에게 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영혼의 떨림을 완벽하게 치환해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상태는 '목구멍의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침묵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감상 포인트
이 시를 읽을 때, 시인이 관중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때로는 비명처럼, 때로는 속삭이듯 낭송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녀에게 침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응축된 에너지를 견디는 시간입니다.
해빙기(The Thaw)
벨라 아흐마둘리나가 활동했던 '해빙기(The Thaw)'는 스탈린 사후, 소련 사회에 잠시 찾아왔던 자유의 바람과 문화적 황금기를 일컫습니다. 이 시기의 시인들은 단순히 글을 쓰는 작가를 넘어, 젊은 세대의 정신적 지주이자 '록 스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흐마둘리나와 함께 '해빙기 시의 4인방' 혹은 그 이상으로 묶였던 주요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1. 예브게니 옙투셴코 (Yevgeny Yevtushenko)
아흐마둘리나의 첫 번째 남편이기도 했던 그는 해빙기를 상징하는 가장 대중적인 인물입니다.
■특징: 목소리가 크고 외향적이며, 사회적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 대표작: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다룬 <바비 야르(Babi Yar)>가 유명합니다.
■영향력: 거대한 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열정적으로 시를 낭송하는 '스타디움 시인'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2.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Andrei Voznesensky)
건축학을 전공한 배경 덕분에 시의 구조와 형식에서 매우 혁신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특징: 언어의 리듬과 시각적 배치, 실험적인 메타포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아흐마둘리나가 서정적이고 고전적이었다면, 보즈네센스키는 현대적이고 전위적이었습니다.
■관계: 아흐마둘리나와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예술적 동료가 되어주었습니다.
3. 로베르트 로즈데스트벤스키 (Robert Rozhdestvensky)
해빙기 시인들 중 가장 남성적이고 힘 있는 서사시를 썼던 인물입니다.
■특징: 명확하고 힘 있는 어조로 시민들의 일상과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그의 시는 노래 가사로도 많이 만들어져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4. 불라트 오쿠자바 (Bulat Okudzhava)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러시아 '바드(Bard, 음유시인) 음악'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특징: 기타를 치며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의 시들은 아흐마둘리나의 귀족적인 시풍과는 또 다른 인간적인 따뜻함과 비애를 담고 있었습니다.
■연대: 아흐마둘리나는 그를 정신적인 스승처럼 여기며 깊이 존경했습니다.
해빙기 시인들의 공통점과 의의
■활동 무대: 서재가 아닌 광장과 경기장. 수천, 수만 명이 시 낭송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언어의 변화: 선전 구호가 아닌 '개인의 진실'과 '내면의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 문화: 이들은 당시 소련 청년들에게 서구의 비틀즈 못지않은 문화적 아이콘이었습니다.
"우리는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를 살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의 시를 손으로 베껴 쓰고 암송하며,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습니다. 아흐마둘리나는 이 거친 남성 시인들 사이에서 가장 섬세하고 순수한 '시의 사제' 같은 역할을 담당하며 해빙기의 한복판을 지켰습니다.
아흐마둘리나와 옙투셴코
벨라 아흐마둘리나와 예브게니 옙투셴코는 1950년대 소련 문단의 '골든 커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사시이자,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영화 같은 드라마였습니다.
1.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의 시 대결"
두 사람은 고리키 문학대학교의 촉망받는 학생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옙투셴코는 이미 스타 시인이었고, 아흐마둘리나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후배였습니다.
■시로 시작된 유혹: 옙투셴코는 그녀의 목소리와 시적 재능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악기 같았고, 그녀 자체가 하나의 시였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길거리 데이트: 돈이 없던 가난한 학생 시절, 두 사람은 모스크바 거리를 끝없이 걸으며 서로에게 자신의 시를 읊어주었습니다. 행인들은 이 아름다운 커플이 주고받는 시적 대화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2. '차이코프스키 홀'의 전설적인 낭송회
1950년대 중반, 두 사람은 수천 명의 관중이 모인 공연장에서 시를 낭송했습니다.
■극명한 대비: 키가 크고 제스처가 화려했던 옙투셴코가 사자처럼 포효하며 시를 읽으면, 가녀린 아흐마둘리나는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고전적인 리듬에 맞춰 노래하듯 시를 읊었습니다.
■문화적 충격: 대중은 이 두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에서 '정치적 선전'이 아닌 '인간적 사랑과 고뇌'를 발견했습니다. 이들의 사랑은 해빙기 자유의 상징 그 자체였습니다.
3. 결별의 상처와 문학적 승화
이들의 결혼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1954~1959). 두 사람의 강한 예술적 자아와 시대적 압박은 갈등을 낳았습니다.
■아이러니한 이별: 옙투셴코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에 질투와 외경심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시적 유산: 이혼 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시를 썼습니다. 특히 아흐마둘리나의 시 <내 거리에 무슨 일이(Po moei ulitse…)>는 이 시기의 상실감을 담은 걸작으로, 훗날 러시아의 국민 영화인 <운명의 아이러니>의 삽입곡으로 쓰이며 전 국민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4. 말년의 재회: "그녀는 나의 구원이었다"
수십 년이 흘러 백발이 된 옙투셴코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벨라를 놓친 것이다. 그녀는 내 시의 가장 엄격한 심판관이자, 유일한 뮤즈였다."
아흐마둘리나가 2010년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미국에 머물던 옙투셴코는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며 그녀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비록 현실에서는 끝났지만, 러시아 문학사에는 '해빙기를 불태운 가장 뜨거운 불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흐마둘리나가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 <내 거리에 무슨 일이>의 구절을 함께 감상해 보시겠어요?
https://youtu.be/tMhn37YIHBw?si=Cgu0PkeiEWQNHGm1
벨라 아흐마둘리나의 <내 거리에 무슨 일이(По моей улице…)>는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고독을 '거리'라는 공간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이 시는 훗날 러시아의 국민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The Irony of Fate)>에 노래로 삽입되어,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인들이 이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흥얼거리는 국민적인 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