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세기 시문학과 이용악

이용악의 <北 쪽>을 읽으며

by 김양훈

北 쪽

이용악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尹永川 編 『李庸岳詩全集』(-附•散文) 中.

- 이용악 시집 『分水嶺』 수록 詩


이용악의 시 <북쪽>은 그가 왜 '북방의 시인'이며, 왜 러시아 은세기의 비극적 정서와 맞닿아 있는지를 단 6행으로 증명하는 걸작입니다. 이 시를 러시아 은세기의 감성으로 독해해 보면, 당시 두 나라 지식인들이 느꼈던 '얼어붙은 고향'에 대한 공통된 슬픔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 <북쪽>의 시각적·공간적 미학

이 시는 매우 절제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거대한 서사가 숨어 있습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공간의 중첩: 고향이라는 따뜻해야 할 공간이 '여인이 팔려간' 비극적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이는 식민지 조선의 가난 때문에 만주나 러시아 접경지로 팔려 가야 했던 민족의 수난사(Migration)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영겁의 시간: '얼어붙음'과 '풀림'의 반복은 절망이 일상이 된 긴 시간을 의미합니다.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이 시베리아의 동토를 보며 느꼈던 '광활한 허무'와 맥을 같이 합니다.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불면의 고통: 차마 눈 감고 외면할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는 지식인의 부채의식과 고통을 형상화했습니다.

2. 러시아 은세기와의 정서적 공명:
'슬픈 북방'

러시아 은세기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Aleksandr Blok)의 시들과 비교하면 이 시의 온도가 더 잘 느껴집니다.

□블로크의 러시아: 블로크는 러시아를 '나의 아내, 나의 조국'이라 부르며, 헐벗고 고통받는 러시아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동일시했습니다.

□이용악의 북쪽: 이용악에게 북쪽은 단순히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고난 받는 민중의 얼굴입니다. 팔려간 여인은 곧 유린당한 조국이자 고향입니다.

3. 언어의 절제:
'이솝의 언어'로서의 북쪽

이 시에는 '독립'이나 '일본' 같은 단어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팔려간 여인'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는 식민지의 비극을 직관적으로 깨닫습니다.

검열관에게는 그저 '가난한 농촌의 노래'로 보일 수 있지만, 당대 독자들에게는 '우리가 처한 얼어붙은 현실'로 읽히는 전형적인 이중 구조를 가집니다.

4. 러시아어적 감성으로의 변주

이 시의 마지막 구절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라를 러시아어로 옮긴다면, 아마도 "Сердце не знает сна(심장은 잠을 알지 못한다)"와 같은 비장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이는 은세기 시인들이 혁명의 전야에 느꼈던 그 팽팽한 긴장감과 닮아있습니다.

이용악의 시는 이처럼 한국어의 향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비극의 깊이는 러시아 문학의 광활한 비애에 닿아 있습니다.


이용악과 은세기 시문학의 접점
러시아 시문학의 '은세기(Silver Age, 1890년대~1920년대 초)'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상징주의, 아크메이즘, 미래주의가 만개하며 예술적 실험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이와 동시대인 한국의 1890년대부터 1920년대는 '근대시의 형성기'이자 '고난의 시대'였습니다. 러시아가 제국에서 혁명으로 이행하며 예술적 폭발을 경험했다면, 한국은 구한말의 혼란과 일제 강점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서구 문학을 수용하며 현대시의 기틀을 닦고 있었습니다.
1. 시대적 상황 비교

러시아(은세기1890년대~1920년대 초)-한국 (근대시 형성기1890년대~1920년대 중반)

□정치상황: 제정 러시아 붕괴, 1917 혁명-구한말, 경술국치(1910)-3·1 운동

□주요 경향: 상징주의, 미래주의, 탐미주의-계몽주의, 낭만주의, 상징주의, 신경향파

□문단 분위기: 현실 초월, 신비주의, 언어적 실험-민족 자각, 계몽, 상징적 저항, 비애와 허무

2. 한국의 동시대 주요 시인과 문단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블로크, 아흐마토바, 마야콥스키 등)이 활동할 때, 한국 문단은 크게 세 단계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① 개화기 및 신체시 시대 (1890년대~1910년대 초)

러시아에서 상징주의가 태동하던 시기, 한국은 전통 시조와 가사에서 벗어나 '창가'와 '신체시'를 통해 근대적 형식을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최남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를 통해 근대시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계몽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강조했습니다.

□이광수: 문학을 통한 민족의 계몽과 개조를 주장하며 초기 시 형식을 구축했습니다.

② 3·1 운동 이후와 동인지 문학 (1919년~1920년대 초)

러시아 혁명 전후의 대혼란기이자 은세기가 저물어가던 때, 한국 문단은 3·1 운동의 실패로 인한 절망과 허무를 바탕으로 세기말적 퇴폐주의와 낭만주의가 유입되었습니다.

□김억: 서구 상징주의를 적극적으로 소개했으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베를렌 등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 시에 '상징'과 '내면의 정서'를 이식했습니다.

□주요한: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는 <불놀이>(1919)를 발표했습니다.

□『백조(白潮)』 동인 (홍사용, 박종화, 이상화 등): 낭만주의적 비애와 영탄, 현실 도피적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이 시기 낭만주의가 저항 의식으로 승화된 대표작입니다.

③ 서정시의 완성 (1920년대 중반)

□김소월: 민요적 율격을 바탕으로 한국적 정서를 근대적 시 형식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스승인 김억이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 문학에 해박했던 점은 흥미로운 연결고리입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1926)을 통해 불교적 명상과 저항 정신을 결합하며 한국 현대시의 형이상학적 깊이를 더했습니다.

3. 은세기 시인들과의 흥미로운 접점

러시아 은세기의 거장 알렉산드르 블로크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비주의와 현실 사이를 고뇌했다면, 한국의 이상화나 김억은 식민지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상징과 비유를 통해 고통받는 자아를 드러냈습니다.

특히 192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신경향파(KAPF) 문학은 러시아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 문학(미래주의 포함)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예술의 목적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은세기가 끝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넘어가던 러시아의 상황과 맞물려 있습니다.

※참고: 한국 문단에서 러시아 문학은 주로 일본을 통해 중의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김억이나 양주동 같은 문인들은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은세기 전후의 서구 상징주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한국 문단에 소개했습니다.


1930년대 후반
조선시단의 詩三才
이용악, 오장환, 서정주 세 시인은 1930년대 중반부터 등장하여, 앞서 언급한 1920년대의 습작기적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극복하고 한국 현대시의 예술적 완성도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인물들입니다.
러시아 문학에 비유하자면, 은세기의 거장들이 언어의 실험을 끝내고 각자의 독보적인 '신화'를 구축했던 단계와 유사합니다. 이들은 '생명'과 '현실의 비극'을 노래하며 한국 시문학의 층위를 깊게 만들었습니다.
1. 이용악 (유랑과 북방의 정서)

이용악은 러시아와 인접한 '북방(함경도/만주)'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은세기 러시아 시인들이 보여준 '국경의 황량함'과 유사한 비극적 미학을 지닙니다.

□특징: 일제 강점기 유랑민들의 비참한 삶을 서사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대표작: <오랑캐꽃>, <낡은 집>

□문단적 위치: 감상적인 비애에 머물지 않고, 민족의 고통을 객관적인 묘사와 서사적 구성을 통해 예술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날카로운 북방의 이미지는 러시아 문학의 겨울 분위기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2. 오장환 (도시의 병리적 묘사와 비판)

오장환은 당시 '시단의 천재'로 불리며,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경계를 넘나든 시인입니다.

□특징: 근대 도시의 퇴폐적인 풍경과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병리적인 이미지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문명에 대한 환멸을 강하게 드러내며, 당시 한국 문단의 가장 전위적인 목소리 중 하나였습니다.

□대표작: <성벽>, <헌사>

□문단적 위치: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30년대 삼재(三才)'로 불렸으며, 은세기 미래주의자들이 기성의 권위를 파괴했던 것처럼, 기존의 서정성을 부정하고 추악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추(醜)의 미학'을 선보였습니다.

3. 서정주 (생명력과 원시적 본능)

서정주는 초기작에서 보들레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인간의 원죄 의식과 원시적인 생명력을 탐구했습니다.

□특징: 『화사집』(1941)을 통해 악마주의적이고 탐미적인 경향을 보였습니다. 뱀, 피, 관능 등 강렬한 소재를 사용하여 한국어의 감각을 극치로 끌어올렸습니다.

□대표작: <화사>, <자화상>

□문단적 위치: '생명파'의 핵심 인물로서, 관념에 매몰되어 있던 당시 문단에 '몸'과 '생명'의 역동성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는 러시아 은세기의 아크메이즘(Acmeism) 시인들이 상징주의의 모호함에 반대하며 사물의 구체성과 생명력을 강조했던 흐름과 맥을 같이 합니다.

4. 1930년대 중후반 문단의 지형도

이 시기 한국 문단은 더 이상 서구 문학의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고도의 상징과 세련된 언어 기법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핵심 키워드-러시아 은세기와의 접점)

□이용악: 유랑, 북방, 서사성-고난 받는 민중의 역사적 비극성 (네크라소프적 전통)

□오장환: 문명 비판, 불안, 전위-도시의 소외와 문명 파괴 (미래주의적 감각)

□서정주 : 관능, 원죄, 언어의 마술-언어적 조탁과 생의 본능 (아크메이즘 및 탐미주의)

이 세 시인은 러시아 은세기가 스탈린 체제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듯, 한국 문단이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1930년대 말~40년대 초)로 급격히 얼어붙기 직전 한국 현대시의 황금기를 장식했습니다.


1930년대 조선의 三才와
은세기의 거장들과의 비교
이용악, 오장환, 서정주 세 시인을 러시아 은세기의 거장들과 매칭해 보면,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예술적 방법론을 택했던 두 나라 문학의 흥미로운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구체적인 비교 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용악 & 세르게이 예세닌
(향토애와 유랑의 비극)

이용악은 러시아 은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농민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깊은 정서적 유대를 공유합니다.

□공통점: 두 사람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 자의 상실감을 노래했습니다. 예세닌이 산업화되는 러시아에서 사라져 가는 농촌의 아름다움을 애도했다면, 이용악은 식민지 수탈로 인해 북방(만주)으로 떠도는 유랑민의 고난을 그렸습니다.

□미학적 장치: 이용악의 <오랑캐꽃>이나 <낡은 집>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북방의 냉기는 예세닌의 시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광활하고 시린 눈밭과 닮아 있습니다. 두 시인 모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슬픔'을 지극히 서정적이면서도 서사적인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2. 오장환 &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파격과 도시적 불안)

오장환의 전위적인 감각은 러시아 미래주의의 기수 마야콥스키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공통점: 기존의 낡은 서정성을 거부하고 '도시의 병리적 현상'에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마야콥스키가 혁명 전 러시아 도시의 추악함을 거친 언어로 공격했듯이, 오장환 역시 『성벽』(1937)을 통해 근대 문명의 불결함과 불안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미학적 장치: 오장환은 당시 한국 문단에서 가장 파격적인 '추(醜)의 미학'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마야콥스키가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라고 선언하며 보여준 기성의 미학적 질서에 대한 반항과 궤를 같이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시대를 앞서가는 모더니스트였습니다.

3. 서정주 & 니콜라이 구밀료프
혹은 콘스탄틴 발몬트 (아래 참조)
(생명력과 조탁된 언어)

서정주의 초기작 『화사집』의 세계관은 러시아 아크메이즘(Acmeism)의 창시자 니콜라이 구밀료프나 상징주의의 탐미주의자 발몬트와 비교됩니다.

□공통점: 모호한 관념 대신 '구체적인 사물'과 '강렬한 생명력'에 집중했습니다. 구밀료프가 아프리카 사파리를 여행하며 원시적인 생동감을 노래했듯, 서정주는 뱀, 피, 관능과 같은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과 원죄를 탐구했습니다.

□미학적 장치: 서정주는 한국어의 형용사를 가장 아름답고 섬뜩하게 조탁한 '언어의 마술사'였습니다. 이는 은세기 시인들이 언어 자체의 음성적 아름다움과 상징적 깊이에 집착했던 '예술 지상주의적 태도'와 매우 흡사합니다.


콘스탄틴 발몬트

콘스탄틴 드미트리예비치 발몬트(Константи́н Дми́триевич Бальмо́нт, 1867~1942)는 러시아의 시인이자 번역가다.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학생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되었다. 초기 작품 <시집>(1890), <북방의 하늘 밑에서>(1895), <정적>(1898), <태양같이 되리>(1903)를 내놓으며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얻었다. 초기에는 혁명에 동정적이었으나 1905년 파리로 망명, 세계 각지를 여행하였다. <오시리스의 나라>(1914), <흰 건축가>(1914), <뱀의 꽃, 멕시코 여행소식>(1910)은 여행의 소산이다. 또한 이집트·멕시코·페루·인도 등지의 시를 수집하여 번역하였다. 한때 귀국하여 10월 혁명을 찬미하다가 다시 망명하였다. 이 밖에도 연작시(連作詩) <복수자의 노래>(1907)가 있다.
요약 및 비교

한국 시인-러시아 시인: 비교-키워드-예술적 특징

•이용악-예세닌: 유랑, 향토, 비애-민중의 고통을 서사적으로 승화

•오장환-마야콥스키: 전위, 도시, 파괴-기성 문학의 질서를 거부하는 실험성

•서정주- 구밀료프 : 생명, 원시, 조탁-관능적 소재와 정교한 언어 미학

흥미로운 사실

러시아 은세기는 1917년 혁명 이후 스탈린의 검열로 인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단일 체제로 강제 통합되며 막을 내립니다. 한국의 1930년대 후반 문단 역시 일제의 '국민문학' 강요와 검열로 인해 이용악은 침묵하거나 변방을 돌았고, 오장환과 서정주는 각기 다른 고뇌의 길을 걷게 됩니다. 두 나라의 황금기 문학이 모두 정치적 전체주의에 의해 억압받았다는 역사적 평행이론이 존재합니다.


러시아와 한국시인들이
창간했던 문예지 비교
Mir Iskusstva (World Of Art) – Brett
러시아의 『예술의 세계(Mir Iskusstva)』와 한국의 『문장(文章)』, 『시인부락(詩人部落)』은 모두 각 나라의 문학사에서 '예술적 자율성'이 정점에 달했을 때 탄생한 잡지들입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시대적 숙명은 사뭇 달랐습니다.
1. 러시아의 『예술의 세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선언

1890년대 말 디아길레프 등이 주도한 이 잡지는 러시아 은세기의 문을 연 상징적 매체입니다.

□성격: 철저한 탐미주의와 범 유럽주의입니다. "예술은 정치나 사회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원칙이었습니다.

□특징: 시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 모든 예술의 통합을 꿈꿨습니다. 러시아의 낙후된 예술을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세련된 귀족주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결말: 이들의 자유로운 실험은 1917년 혁명 이후 '사회에 복무하는 예술'을 강조하는 볼셰비키 체제와 충돌하며 해체됩니다.

『문장』은 1939년에 이병기, 이태준, 정지용이 편집을 맡아 창간된 문예 잡지이다. 1941년 강제 폐간.
2. 한국의 『문장』과 『시인부락』: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예술"

1930년대 중후반, 한국의 잡지들은 일제의 압제가 극에 달하던 시기에 '한국어의 최후 보루' 역할을 했습니다.

① 『시인부락』 (1936) - 서정주, 김광균 등

□성격: 생명파와 낭만주의의 결합입니다. 서정주가 주도한 이 잡지는 인간의 본능과 생명력을 강렬하게 탐구했습니다.

□러시아와의 비교: 『예술의 세계』가 추구했던 '순수 예술주의'와 가장 닮아 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시적 언어 그 자체의 마력과 인간 내면의 깊이에 천착했습니다.

② 『문장』 (1939) - 이태준, 정지용 등

□성격: 전통 회귀와 고전 미학의 재발견입니다. 일제가 한국어를 말살하려던 시기에 가장 수준 높은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며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러시아와의 비교: 『예술의 세계』가 유럽을 향해 눈을 돌렸다면, 『문장』은 오히려 우리 내부의 고전(청록파 등)을 발굴하며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이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역설적 저항이었습니다.

3. 결정적 차이:
'유희'인가 '생존'인가

(구분: 러시아 『예술의 세계』-한국 『문장』·『시인부락』)

□동기: 낡은 리얼리즘을 타파하고 새로운 미학 창조-검열 속에서 한국어와 정신을 보존

□지향점: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민족적 서정과 고전 미학

□적(敵): 보수적인 예술계와 아카데미즘-일제의 전시 총동원령과 언어 말살 정책

4. 비극적 평행이론:
잡지의 종말

이 잡지들의 끝은 두 나라 모두 '정치의 폭력'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은세기 잡지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국가 주도의 단일 교리에 의해 "부르주아 퇴폐주의"로 낙인찍혀 사라졌습니다.

한국의 『문장』 역시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당했습니다. 이후 문인들은 침묵하거나, 산으로 숨거나, 혹은 불행하게도 친일의 길로 접어드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러시아의 은세기가 '혁명'이라는 불꽃 속에서 산화했다면, 한국의 1930년대 문단은 '전쟁'이라는 어둠 속에서 질식당했던 셈입니다.


'이솝 우화적 언어'와
‘상징과 은유의 기법'
러시아와 한국의 시인들은 모두 서슬 퍼런 검열의 칼날 아래서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고도의 언어 전략을 발달시켰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이솝의 언어(Aesopian language)'라 불렀고, 한국의 시인들은 이를 '상징과 은유'라는 예술적 장치로 승화시켰습니다.
1. 러시아의 '이솝의 언어' (Aesopian Language)

이 용어는 19세기 풍자 작가 살티코프-셰드린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검열관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독자는 행간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도록 고안된 비유적 표현 체계입니다.

신화와 역사로의 도피: 검열이 심해지면 은세기 시인들은 당대의 이야기를 그리스 신화나 머나먼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치환했습니다.

□안나 아흐마토바의 전략: 그녀는 스탈린 체제 아래서 아들의 구명을 기다리며 쓴 시들을 종이에 적지 않고 지인들에게 외우게 했습니다. 그녀의 시 속 '남편의 죽음'이나 '차가운 감옥'은 개인의 비극인 동시에 러시아 전체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중적 장치였습니다.

2. 한국의 '상징과 은유': 침묵으로 외치기

일제 강점기 말기(1930년대 후반~40년대 초), 한국 시인들은 한국어 사용 자체가 범죄가 되던 시절에 '이솝의 언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였습니다.

① '북방'과 '유랑'의 은유 (이용악)

이용악의 시에서 '눈보라'나 '북쪽'은 단순히 지리적 배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권을 잃고 떠도는 민족의 시련을 의미하며, 시 속의 '낡은 집'은 붕괴한 조선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검열관에게는 가난한 농민의 노래처럼 보였겠지만, 독자들에게는 민족적 울분으로 읽혔습니다.

② '자연'과 '고전'으로의 은둔 (문장파 시인들)

정지용, 박목월 등은 시의 소재를 '산', '청노루', '구름' 등 지극히 탈속적인 자연으로 옮겼습니다.

□의도: 현실 정치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저항의 표현이었습니다. 일본어 시를 쓰라는 압박 속에서 끝까지 정교한 한국어로 '순수 서정'을 노래한 것 자체가 일종의 언어적 독립운동이었습니다.

③ '자화상'과 '원죄' (서정주)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여기서 '바람'은 개인적인 방황일 수도 있지만, 당시 식민지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불안정한 시대적 공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강조하는 방식은 거꾸로 비천하게 만든 시대를 고발하는 이솝적 기법이었습니다.

3. 두 나라 기법의 결정적 공통점

(기법: 효과-실제 사례)

•의인화와 상징: 직접적인 대상을 숨김-이육사의 '광야', 아흐마토바의 '진혼곡'

•행간의 읽기: 문장 사이의 침묵을 강조-오장환의 냉소적 어조, 블로크의 상징주의

•신화적 치환: 현재를 영원한 시간으로 옮김-서정주의 '신라', 러시아 시인들의 '희랍 신화'

4. 검열관을 속인 '침묵의 미학'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과 한국의 30년대 시인들은 모두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모순 속에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시는 더욱 압축되었고, 단어 하나에 수십 가지 의미가 담기는 '다의성(Polysemy)'이 확보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가혹한 검열이 두 나라의 시를 세계적인 수준의 은유와 상징의 예술로 단련시킨 셈입니다.


시인들의 저항:
망명과 절필
러시아의 은세기 시인들과 한국의 30년대 시인들은 각각 '혁명'과 '해방'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분기점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새 시대는 역설적이게도 이들 대부분에게 가혹한 비극이 되었습니다.
1.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의 운명:
'혁명의 배신'

러시아 혁명(1917) 초기, 많은 은세기 시인들은 낡은 세계가 무너지는 것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등장한 스탈린 체제는 예술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했습니다.

□비극적 자살: 미래주의의 기수 마야콥스키와 서정시의 대가 예세닌은 혁명 이후의 경직된 사회와 개인적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처형과 수용소: 아크메이즘의 영수 구밀료프는 반혁명 혐의로 총살당했고, 만델슈탐은 스탈린을 조롱하는 시를 썼다가 수용소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내적 망명과 침묵: 아흐마토바와 파스테르나크는 조국에 남았으나, 수십 년간 작품 발표를 금지당한 채 번역으로 생계를 잇거나 비밀리에 시를 쓰는 '내적 망명'의 삶을 살았습니다.

2. 한국 시인들의 운명: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덫'

1945년 해방은 찾아왔지만, 곧이어 닥친 분단과 전쟁은 한국 시인들을 다시 한번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월북과 숙청 (이용악, 오장환):

이용악과 오장환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월북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이 겪었던 것과 유사하게, 북한 정권은 이들의 '순수 서정'이나 '개인적 고뇌'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오장환은 전쟁 중 병사했고, 이용악은 1950년대 후반 '복고주의'와 '부르주아 잔재'라는 비판 속에 숙청되어 문단에서 사라졌습니다.

□친일의 굴레와 영광 (서정주):

서정주는 일제 말기 친일 행적으로 인해 평생 '역사적 책임'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한 문단의 거목으로 성장하여 한국어 미학을 집대성했습니다. 이는 조국에 남아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내 살아남아 고전이 된 러시아의 파스테르나크와 묘하게 대비됩니다.

3. 요약 비교:
혁명/해방 이후의 삶

(구분: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한국 30년대 시인들)

•정치적 압박: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요-이데올로기 선택 강요 (남/북)

•주요 비극: 총살, 수용소, 강제 침묵-월북 후 숙청, 친일 논란, 분단

•문학적 유산: 지하 문학(Samizdat)으로 전승-전후 한국 문학의 미학적 토대 형성

4. 이들이 남긴 미학적 승리

비록 육체는 파괴되고 삶은 얼룩졌지만, 이들이 '이솝의 언어'와 '상징'으로 벼려낸 시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스탈린 시대에 아흐마토바의 시를 암기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켰습니다.

한국인들은 교과서에서 이용악의 북방 정서와 서정주의 미문(美文)을 읽으며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체득했습니다.

결국 두 나라의 시인들은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을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월북 시인들의 운명과
서정주의 세계관
이용악, 오장환 등 월북 시인들의 북한에서의 행보와 서정주의 신화적 세계관은 각각 러시아 문학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의 강제 통합'과 '상징주의적 신비주의'라는 거대한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1. 월북 시인들의 운명:
'이솝의 언어'를 잃어버린 시들

이용악과 오장환은 해방 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북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러시아 은세기 시인들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엄격한 잣대였습니다.

□오장환의 절망: 오장환은 북한에서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시집 『붉은 기』 등을 펴냈지만, 그의 본질인 '퇴폐적 감각'이나 '도시적 불안'은 북한 체제에서 '부르주아적 병폐'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는 결국 정치적 숙청이 본격화되기 전 병으로 사망했으나, 만약 더 오래 살았다면 러시아의 예세닌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용악의 숙청: 이용악은 북한 문단에서 중책을 맡기도 했으나, 1950년대 후반 '복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숙청당했습니다. 그의 시에 흐르던 특유의 비애와 고독은 "혁명 과업에 방해가 되는 패배주의적 정서"로 낙인찍혔습니다. 이는 러시아의 안나 아흐마토바가 "수녀와 창녀의 혼합"이라는 모욕을 당하며 문단에서 퇴출당했던 사건과 매우 흡사합니다.

2. 서정주의 신화적 세계관:
러시아 상징주의와의 평행이론

서정주는 말년에 이르러 불교적 윤회 사상과 신라의 설화를 결합한 '신라초(新羅抄)' 등의 작품을 통해 독보적인 신화적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러시아 은세기를 지배했던 '신비주의적 상징주의'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신비주의적 합일: 러시아 상징주의의 거장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나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현실 너머의 존재인 '영원한 여성상(Sophia)'을 갈구했습니다. 서정주 역시 현실의 오욕을 씻어내기 위해 '신라'라는 가상의 영원한 공간을 설정하고, 그곳에서 인간과 신이 만나는 신비 체험을 노래했습니다.

□언어의 주술성: 서정주는 시를 단순히 의미 전달의 수단이 아닌, '귀신을 부르는 소리'나 '주문'처럼 사용했습니다. 이는 러시아 상징주의자들이 시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법적 도구(Theurgy)"로 보았던 태도와 일맥상통합니다.

□비정치적 도피인가, 미학적 완성인가: 서정주가 신화에 천착한 것은 현실의 정치적 논란(친일 및 독재 협력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내적 망명'의 성격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국어의 토속적 아름다움을 종교적 경지로 끌어올린 성취를 거두었습니다.

3. 비교 포인트:
'붉은 광장' vs '신라의 달밤'

(구분: 월북 시인(이용악·오장환)-서정주)

•비교되는 러시아 조류-사회주의 리얼리즘 (강제된 변신)-후기 상징주의 및 신비주의

•핵심 키워드: 집단, 혁명, 투쟁, 그리고 숙청-신화, 윤회, 영생, 그리고 고독

•문학적 태도: 시를 통한 사회 개조 시도-시를 통한 영혼의 구원과 미학적 완성

•한계: 개인의 서정성을 체제에 저당 잡힘-역사적 현실을 신화 뒤로 은폐했다는 비판

4. 결론:
은세기의 빛과 그림자

러시아의 은세기가 스탈린의 억압 속에서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같은 위대한 유산을 남겼듯, 한국의 동시대 시인들 역시 분단과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의 힘'을 증명하려 애썼습니다.

이용악은 역사적 비극을 끝까지 짊어지려다 꺾였고, 서정주는 신화적 영원성 속으로 숨어들어 언어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식민지 지식인의 불가능한 꿈'을 시로 써 내려간 것입니다.

"나의 청춘은 성벽 위에서 시들었다.
병든 나의 기억(記憶)은
성벽(城壁) 위에서 속절없이 흩어지는구나."
— 오장환, 『성벽』(1937)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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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은 이 시를 통해 "식민지의 화려한 도시(경성)에서 시를 쓰는 행위가 과연 건강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 대답이 바로 '병든 기억'이었던 것입니다. 이용악의 '북쪽'이 주는 서늘한 슬픔과 오장환의 '성벽'이 주는 병적인 불안 중, 당신의 마음을 더 강하게 파고드는 정서는 어느 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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