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지는 건 꼴사납다.

by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y 김양훈

유명해지는 건 꼴사납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유명해지는 건 꼴사납다.

유명세가 높여 주는 게 아니다.¹

고문서 보관소를 만들어선 안 된다.

원고 걱정에 벌벌 떨어선 안 된다.


창작의 목적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²

찬사가 아니다, 성공이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이 모두의 입술에

오르내리는 건 수치다.


참칭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광활한 대지의 사랑을

결국 자신에게 끌게, 미래의 부름을

듣게 살아야 한다.


전 생애의 장소와 장을

난외에 표시하며

종이 사이가 아니라 운명 속에

공백을 남겨야 한다.


무명 속에 잠겨야 한다.

지척이 보이지 않을 때

세상이 안갯속에 몸을 숨기듯

무명 속에 네 걸음을 감춰야 한다.


다른 이들이 한 뼘 한 뼘

네 길의 생생한 자국을 따를 것이다.

승리와 패배를

너 자신이 구별해서는 안 된다.


단 한 부분도

얼굴을 버려서는 안 된다.

살아 있어야, 오직 살아 있어야,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여야 한다. (1956)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시선집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 中.


[주 1]「갈라디아서」 2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이 한 말을 연상시키는 구절. “유명하다는 이들이 어떠했든 그들 속에 내게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살로 삶을 마감한 마야콥스키의 운명과는 다른 시인의 길에 대한 생각이 이 연상과 결부되어 있다.
[주2]「갈라디아서」 4장을 연상시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햄릿」과 유리 지바고의 다른 시들에서 전개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닥터 지바고의 모티브가 된 얼어붙은 대지와 ‘탁자 위의 촛불’.
작품의 배경과 시평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이 시는 예술가의 윤리와 삶의 태도에 대한 가장 준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언서 중 하나입니다. 소설 『닥터 지바고』로 잘 알려진 그가 왜 그토록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로 추앙받는지 이 시를 통해 드러납니다.
1. 작품의 배경: 고독한 거장의 길

이 시가 쓰인 때는 파스테르나크가 소련 체제 아래에서 정치적 압박을 받으며 '내면적 망명' 상태에 있던 말년의 시기인 1956년 무렵입니다.

◇시대적 압박: 당시 소련의 문인들은 국가의 찬양 도구가 되거나, 대중적 인기를 얻어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길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이를 '꼴사납다'라고 일갈하며 거부합니다.

◇마야콥스키와의 대비: [주석 1]에서 언급된 마야콥스키는 혁명의 나팔수를 자처하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으나 결국 권력과의 갈등 끝에 자살했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그런 '전시용 삶' 대신, 안갯속에 몸을 숨기는 '무명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예술적 생존을 도모했습니다.

2. [시평] "살아 있음"의 참된 의미

◇창작의 본질: 소유가 아닌 헌신

파스테르나크는 창작의 목적을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주석 2]가 설명하듯 기독교적 자기희생(케노시스, Kenosis)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술가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타인과 세상을 위해 소진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케노시스(κένωσις, '비움의 행위') 또는 '자기 비움'은 예수의 비움을 의미하는 기독교 신학 용어다.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비우며, 신적 의지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동사형으로 사용되었다.
케노시스의 엄밀한 의미는 학자에 따라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예수가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신의 신성한 뜻에 완전히 순종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신의 뜻에 순종했고,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러한 순종을 권장한다는 것이다. 보다 논쟁적인 의미로써는, 예수가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신적 능력을 자발적으로 제한하고 비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빌립보서의 "그는 하나님의 본성을 지니셨으나, 동등함을 주장하려 하지 않으셨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예수가 자신의 신적 지위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해석은 예수의 신적 권능을 지나치게 축소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키백과>

◇무명의 미학: 안갯속의 걸음

"무명 속에 네 걸음을 감춰야 한다"는 구절은 역설적입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당대의 박수 소리에 취하지 않고, 마치 안갯속을 걷듯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면 후대의 사람들이 그 "생생한 자국"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승리와 패배의 초월

"승리와 패배를 너 자신이 구별해서는 안 된다."

이 구절은 이 시의 백미입니다. 세속적인 성공(승리)과 고난(패배)은 외부의 평가일 뿐, 예술가는 오로지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진실함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루드야드 키플링의 시 「만약(If)」에 등장하는 구절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으로, 내면의 단단한 중심을 강조합니다.

3. 요약 및 결론

•탈(脫)유명세: 대중적 허영심과 기록에 대한 집착을 버림

•운명의 공백: 종이(문자)가 아닌 삶(행동)으로 증명하는 예술

•살아 있음: 체제나 명성에 매몰되지 않은 순수한 생명력의 유지

결론적으로, 이 시는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하는 현대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진실한 예술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는 결국 노벨 문학상 수상마저 거부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이 시의 가르침대로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로 남았습니다.


만일(If)

루드야드 키플링


만일 네가 모든 걸 잃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하고

-또한 그들의 의심을 인정해야 할 때

네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리면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속임을 당하더라도 속임으로 답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너무 선한 체 너무 현명한 체 않는다면


만일 네가 꿈을 꾸면서도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어떤 생각을 하면서도

-그 생각을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승리와 재앙을 만나더라도

-그 협잡꾼들을 똑같이 대할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악인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 진실을 참으며 들어줄 수 있다면

혹은 만일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낡은 연장을 들고 서서 다시 세울 수 있다면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걸고

-단 한 번의 내기에 걸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심장과 신경과 힘줄이

-너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지속할 수 있다면


만일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도

-네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너무 의존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60초의 춤추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면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너의 것이며

그리고 더욱이

너는 한 사람의 어른이 될 것이다.

내 아들아!


"시가 예뻐서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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