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날들

by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y 김양훈

유일무이한 날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나간 많은 겨울에 걸쳐

나는 동지의 날들을 기억한다.

저마다 반복될 수 없이 특이했고

저마다 다시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이 일련의 날들이 전부

우리에게 시간이 멈춘 것같이 보이는

그 유일무이한 날들을

점차 이루었다.


나는 그들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한다.

겨울이 한복판에 접어든다.

길들이 축축해진다. 지붕에서 물이 떨어지고

해가 얼음 위에서 데워진다.


연인들이 꿈인 듯

허둥지둥 서로에게 끌리고,

나무 꼭대기에서

둥지 상자들이 온기에 땀을 흘린다.

잠에 취한 듯 시곗바늘이

귀찮아서 시계 문자판을 빈둥대고,

하루가 세기보다 길게 이어지고

포옹이 끝날 줄을 모른다. (1959)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끝까지 살아있는 존재』(최종술 옮김, 민음사 2021)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만년의 걸작, <유일무이한 날들>(Edinstvennye dni)은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1년 전인 1959년에 쓰인 작품입니다. 이 시는 노시인(老詩人)의 평온하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간의 영속성과 찰나의 소중함을 동시에 노래하고 있습니다.

1. 시적 배경:

폭풍 뒤의 정적과 '페레델키노'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스테르나크의 생애 마지막 시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시련 이후의 평온: 1958년 소설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소련 당국의 거센 압박으로 수상을 거부해야 했던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 근교의 작가 마을인 '페레델키노'에서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註]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페레델키노(Peredelkino)는 1930년대부터 조성된 유서 깊은 작가 마을(다차 단지)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고리키 등 유명 문인들이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했던 곳으로,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를 집필한 집(박물관)과 묘지가 잘 보존되어 있어 러시아 문학 기행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파스테르나크는 1939년부터 1960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파스테르나크 박물관

▪만년의 자연관: 외부 세계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의 순환(동지와 해동)을 관조하며, 시인은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했습니다.

▪동지(冬至)의 상징성: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는 역설적으로 다시 빛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시인은 이 시기를 정지된 시간처럼 느끼며 그 안에서 영원을 발견합니다.

2. 시평:

정지된 시간 속에서 피어난 영원

반복과 유일함의 변증법

1연에서 시인은 매해 반복되는 겨울의 동지를 "반복될 수 없이 특이했고, 다시 수없이 되풀이되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유일성'과 '보편성'의 결합입니다. 매 순간은 단 한 번뿐인 기적이지만, 그것이 모여 영원한 생의 흐름을 만든다는 깨달음입니다.

해동(解凍)의 이미지와 생명력

3연과 4연에서 묘사되는 '축축해진 길',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 '온기에 땀을 흘리는 둥지 상자'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이미 봄의 기운이 태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차가운 현실(겨울) 속에서도 사랑과 생명(봄)은 멈추지 않는다는 낙관주의적 태도를 반영합니다.

사랑으로 멈춰버린 시간

마지막 연에서 시곗바늘이 빈둥대고 하루가 세기보다 길게 느껴진다는 묘사는 이 시의 백미입니다.

▪주관적 시간의 확장: 물리적 시간은 흐르지만, 연인들의 포옹과 같은 충만한 감정의 순간에는 시간이 그 의미를 잃고 정지합니다.

▪영원으로의 승화: 파스테르나크에게 '유일무이한 날'이란 단순히 달력 위의 하루가 아니라, 존재의 기쁨이 극대화되어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 '신성한 찰나'를 의미합니다.

3. 총평

<유일무이한 날들>은 파스테르나크가 평생 추구해 온 '삶에 대한 경외'가 집약된 시입니다. 그는 시를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당신은 시간을 멈출 만큼 빛나는 '유일무이한 순간'을 살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비극적인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파스테르나크는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연인들의 포옹 속에서 영원을 읽어내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습니다.


시곗바늘과 포옹
파스테르나크의 시에서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은 물리적인 시간이 심리적인 시간, 혹은 영적인 시간으로 치환되는 지점입니다. '시곗바늘'과 '포옹'의 묘사를 중심으로, 이 시가 어떻게 찰나를 영원으로 정지시키는지 심도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시곗바늘의 빈둥거림:

"시간의 탈아(脫我)“

"잠에 취한 듯 시곗바늘이 / 귀찮아서 시계 문자판을 빈둥대고"이 구절은 파스테르나크 특유의 의인화와 감각적 전이가 절정에 달한 부분입니다.

▪기계적 시간의 무력화: 시계는 본래 엄격하고 규칙적인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시곗바늘이 '잠에 취했다'거나 '귀찮아한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냉혹한 기계적 질서를 인간적인 나른함과 평온함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註]크로노스(Chronos)는 그리스어로 시, 분, 초 단위로 객관적이고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을 의인화한 신으로, 주로 큰 낫과 모래시계를 든 노인으로 묘사되며, 끊임없이 흘러가며 죽음을 가져오는 무기력하게 지나가는 시간(크로노스)을 뜻합니다. 즉, 크로노스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멈추지 않는, 정해진 질서에 따라 흐르는 시간을 뜻합니다.

▪권태가 아닌 충만: 여기서 '빈둥댐'은 할 일이 없어 지루한 상태가 아닙니다. 너무나 완벽하고 충만한 순간이기에, 굳이 다음 초(秒)로 넘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존재의 포만감을 의미합니다.

▪시각의 촉각화: 눈으로 보는 시계의 움직임이 마치 잠결에 몸을 뒤척이는 것처럼 묘사되어, 독자로 하여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고여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2. 세기보다 긴 하루:

"카이로스(Kairos)의 현현“

"하루가 세기보다 길게 이어지고"이 역설적인 대비는 파스테르나크가 평생 집착했던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註]카이로스(Kairos, Καιρός)는 고대 그리스어로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며, 단순히 흐르는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대비되는 중요한 철학적·신학적 개념입니다. 즉, 카이로스 (Kairos)는 수직적이고 질적인 시간입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기회의 시간', 혹은 주관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순간'을 뜻합니다.

▪질적 시간의 승리: '세기(Century)'는 거대한 역사의 단위입니다. 반면 '하루'는 개인의 소박한 일상입니다. 시인은 사랑과 관조가 있는 단 하루가 무의미하게 흐르는 백 년의 역사보다 더 밀도 있고 가치 있다고 선언합니다.

▪지바고의 철학: 그의 소설 《닥터 지바고》에서도 강조되듯, 인간은 거대한 혁명이나 전쟁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나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 같은 '지금 여기'에서 진정한 생을 영위한다는 믿음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3. 끝날 줄 모르는 포옹:

"영원과의 합일“

"포옹이 끝날 줄을 모른다."시는 마지막 줄에서 인간의 행위로 귀결됩니다. 왜 포옹은 끝나지 않을까요?

▪경계의 소멸: 포옹은 너와 나,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지는 행위입니다. 시간이 멈춘 '유일무이한 날'에 두 존재가 하나로 묶임으로써, 죽음조차 침범할 수 없는 영원성을 획득합니다.

▪동지의 역설과 희망: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지만, 동시에 빛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끝날 줄 모르는 포옹'은 어둠(겨울, 고립, 죽음)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생되는 생명력과 사랑의 온기를 상징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4. 요약:

시각적 이미지의 구조

이 시의 전개는 마치 카메라 렌즈가 광각(겨울 풍경)에서 접사(시계와 포옹)로 이동하는 듯한 구조를 가집니다. <시적 대상: 상태-의미>

▪지붕/얼음: 해동(解凍)-굳어있던 현실의 변화와 온기

▪둥지 상자: 땀을 흘림-생명의 태동과 유기적인 연결

▪시곗바늘: 빈둥거림-기계적 시간의 정지

▪포옹: 영원함-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완성

파스테르나크는 이 시를 통해 "인간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관조할 때,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시간의 주인이 된다"라는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