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전수와 러시아의 수용
프랑스 상징주의와 러시아 '은의 시대':
영혼의 조응과 언어의 혁명
1. 전수와 수용:
'데카당스'에서 '상징'으로
러시아 상징주의의 서막은 1890년대 초, 프랑스 문학의 새로운 기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발레리 브류소프(Valery Bryusov)와 콘스탄틴 발몬트(Konstantin Balmont)에 의해 열렸습니다.
∎ 언어의 음악성: 프랑스 상징주의자들이 주창한 "음악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De la musique avant toute chose)"는 베를렌의 원칙은 러시아 시인들에게 언어의 논리적 의미보다 음향적 가치(Sonority)를 우선시하게 만들었습니다.
∎ 교감의 미학: 보들레르가 제시한 가시적 세계와 불가시적 세계 사이의 '조응' 개념은 러시아 시인들에게 일상의 비속함 너머에 존재하는 '진정한 실재'를 탐구하게 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브류소프는 프랑스 시인들의 형식을 모방하며 시적 기교를 극단으로 끌어올렸고, 발몬트는 러시아어 특유의 모음과 자음을 활용해 음악적 황홀경을 구현했습니다. 이 초기 단계는 프랑스의 '데카당스'적 취향을 수용하며 러시아 시문단의 구태의연한 사실주의 전통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2. 변용과 심화:
제2세대 상징주의와 '소피아'
프랑스 상징주의가 주로 언어적 실험과 개인의 내면 탐구에 머물렀다면, 알렉산드르 블로크(Alexander Blok)와 안드레이 벨리(Andrey Bely)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제2세대 상징주의자들은 이를 형이상학적, 종교적 층위로 격상시켰습니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의 철학을 수용하여, 프랑스식 상징주의를 '신성한 지혜(Sophia)'를 찾기 위한 도구로 변모시켰습니다.
아침 안개 속에서 불신하는 걸음으로
나는 은밀하고 놀라운 해변으로 갔네.
아침 노을이 마지막 별들과 싸우고
아직 꿈은 날고 있는데, 꿈에 사로잡힌
영혼은 알려지지 않은 신께 기도했네.
ㅡ솔로비요프, 「아침 아개 속에서」 부분
∎ 상징의 이중성: 러시아 시인들에게 상징은 단순한 수사학적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상계(realia)에서 본질계(realiora)로 나아가는 통로였습니다.
∎ 신화 창조(Mythopoesis): 말라르메가 언어의 순수성을 추구했다면, 러시아 상징주의자들은 시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려는 '신비주의적 과업'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블로크의 『아름다운 여인에 관한 시』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몽환적 분위기를 러시아 정교회의 여성적 지혜 숭배와 결합시킨 정점으로 평가받습니다.
3. 미학적 유산:
시적 언어의 현대화
프랑스 상징주의가 러시아 시문단에 끼친 가장 구체적인 영향은 '시적 언어의 자율성'을 확립한 것입니다.
∎ 자유시(Vers libre)의 도입: 고전적인 각운과 율격에서 벗어나 감정의 흐름에 충실한 리듬을 실험하게 되었습니다.
∎ 다의성(Ambiguity)의 미학: 명확한 묘사 대신 암시와 환유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현대적 시 쓰기 방식이 정착되었습니다.
∎ 총체 예술로의 지향: 시를 음악, 회화와 결합하려는 말라르메적 시도는 스크랴빈의 음악이나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Ballets Russes)와 같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 전반으로 확산되었습니다.
4. 비판적 성찰과 결론
물론 러시아 상징주의가 프랑스의 단순한 복제본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시인들은 프랑스의 개인주의적 고립주의를 넘어 사회적, 종교적 공동체 의식을 결합하려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상징주의라는 거울이 없었다면, 러시아 문학이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중세적 감성과 근대적 자의식을 통합한 '은의 시대'를 구가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프랑스에서 발원한 상징주의의 물결은 러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의 영혼과 만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하는" 현대 시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러시아 문학이 지닌 심오한 형이상학적 깊이와 유려한 음악성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샤를 보들레르와 알렉산드르 블로크
예술을 위한 예술과 삶을 구원하는 예술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와 알렉산드르 블로크(Alexander Blok)는 각각 프랑스와 러시아 상징주의의 정점을 상징하는 인물들입니다. 이 두 시인의 관계는 '감각의 전이'가 어떻게 '영성(Spirituality)의 추구'로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입니다. 두 시인의 대표적인 시 구절을 통해 그 영향과 변용의 지점을 심층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보들레르의 '감각' vs 블로크의 '신비'
보들레르는 현대 도시의 타락과 추함 속에서 미(美)를 발견하려 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시 「교감(Correspondances)」은 상징주의의 성전과 같습니다.
"자연은 하나의 사원,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이
때로 모호한 말들을 흘려보낸다.
사람은 친숙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는 그곳
상징의 숲을 지나간다."
∎ 분석: 보들레르에게 '상징'은 향기, 소리, 색채가 서로 섞이는 감각적 상응입니다. 그는 물질세계의 파편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감지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관찰자이자 해독자입니다.
반면, 블로크는 이 감각적 상징을 러시아적인 '여성 숭배(Cult of the Feminine)'와 결합합니다. 그의 초기 걸작「아름다운 여인에 관한 시(Stikhi o Prekrasnoy Dame)」의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해는 저물고
무서운 세상의 지평선 위로,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떨림과 희망 속에
당신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옵니다."
∎ 분석: 블로크에게 상징은 단순한 감각의 일치가 아니라, 실제로 도래할 구원자에 대한 신비적 예감입니다. 보들레르의 '상징의 숲'이 정적인 공간이라면, 블로크의 상징은 역동적인 기다림과 종말론적 긴장감을 담고 있습니다.
2. '우울(Spleen)'의 전이와 변모
보들레르의 미학에서 중요한 '스플린(Spleen, 우울)' 개념은 러시아로 건너가 '토스카(Toska, 형언할 수 없는 슬픔)'와 만납니다.
보들레르: 저주받은 시인의 고독
보들레르의 시에서 우울은 탈출구 없는 도시의 감옥과 같습니다.
"낮고 무거운 하늘이
권태에 신음하는 정신 위에 뚜껑처럼 덮일 때..." (「우울 IV」 중)
블로크: 시대적 파국과 허무
블로크의 후기 시 「낯선 여인(Neznakomka)」에서 이 우울은 술집의 자욱한 연기와 타락한 일상으로 구체화됩니다.
"저녁마다 술집 위로
뜨겁고 거친 공기가 감돌고
봄의 썩은 기운과 더불어
주정뱅이들의 고함이 울려 퍼진다."
∎ 차이점: 보들레르의 우울이 개인의 실존적 고통에 집중한다면, 블로크의 우울은 러시아 제국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비극과 맞물려 있습니다. 블로크는 보들레르가 사용한 '권태'와 '추(醜)'의 이미지를 빌려와, 러시아 민중의 고통과 혁명의 전조를 노래했습니다.
3. 음악성의 구현: 언어라는 악기
프랑스 상징주의자 폴 베를렌은 "음악이 무엇보다 우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시인들은 이 원칙을 러시아어 특유의 풍부한 격변화와 모음 체계에 이식했습니다.
∎ 프랑스: 말라르메는 단어 사이의 '여백'과 '음영'을 통해 음악성을 추구했습니다.
∎ 러시아: 안드레이 벨리는 시의 운율을 수학적·음악적으로 도식화했으며, 블로크는 시의 리듬 자체가 '역사의 소리'라고 믿었습니다.
블로크의 대서사시 「열둘(The Twelve)」에서는 눈보라가 치는 혁명의 현장을 거친 의성어와 리듬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프랑스 상징주의가 개척한 '언어의 자율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시도입니다.
검은 저녁.
흰 눈.
바람, 바람!
인간은 제대로 서지 못한다.
바람, 바람!
모든 신성한 세상에!
ㅡ블로크, 「열둘」의 첫 연
결론: 감각에서 영혼으로의 도약
프랑스 상징주의가 러시아에 준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였습니다. 보들레르가 렌즈를 닦아 '상징'이라는 초점을 맞추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면, 블로크와 러시아 시인들은 그 렌즈를 통해 신(God)과 혁명, 그리고 러시아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별자리를 관측한 셈입니다.
이러한 비교 분석을 통해 보면, 러시아 상징주의는 프랑스의 영향을 자양분 삼아 '예술을 위한 예술'을 '삶을 구원하는 예술'로 승화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들레르의 '악(Mal)'의 꽃과
블로크의 '신비(Mystic)'의 장미
보들레르의 '악(Mal)'의 꽃과 블로크의 '신비(Mystic)'의 장미는 프랑스와 러시아 상징주의가 공유하는 미학적 뿌리와 그 줄기가 뻗어 나간 서로 다른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꽃'이라는 보편적 기표가 두 문화권에서 어떻게 치명적인 유혹과 형이상학적 구원으로 갈라지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보들레르의 꽃:
부패 속에서 피어난 인공의 미
보들레르에게 꽃은 자연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비유에서 완전히 이탈해 있습니다. 그의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에서 꽃은 '권태'와 '죄악'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피어나는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 인공성과 변태(Transformation): 보들레르의 꽃은 향기로운 생명체가 아니라, 차갑고 금속성 어린 '인공의 낙원'에 가깝습니다. 그는 자연적인 것을 불신했으며, 오직 인간의 고통과 타락을 통과한 예술적 연금술만이 추한 현실을 '꽃'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치명적인 향기: 그의 시어 속 꽃은 유혹적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내포합니다. 이는 근대 도시 파리의 퇴폐적인 아름다움과 시인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합니다.
Beauty = Pain + Art 라는 보들레르적 공식에서 꽃은 그 최종 결과물입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죽어가리
ㅡ어머니도, 젊음도,
아내는 변할 것이며 친구는 떠날 것이니.
하지만 그대는 다른 즐거움을 배우라.
차갑고 먼 극지(極地)를 바라보며.
ㅡ블로크,「지상의 모든 것은」
2. 블로크의 장미:
지상과 천상을 잇는 불타는 상징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블로크에게 장미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영원한 여성성(Eternal Feminine)'과 '혁명의 불꽃'이 결합된 고도의 형이상학적 상징입니다.
∎ 성스러운 장미 (The Mystic Rose): 초기 시에서 장미는 '아름다운 여인'의 현신입니다. 보들레르의 꽃이 지상의 진흙탕 속에서 피어났다면, 블로크의 장미는 천상의 지혜(소피아)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입니다.
∎ 피의 장미: 대서사시 「열둘」의 결말부에서 그리스도는 '장미 면류관'을 쓰고 나타납니다.
"진주 같은 이슬보라 속에서
하얀 장미 면류관을 쓰고
폭풍 앞을 걸어가는..."
여기서 장미는 보들레르식의 탐미주의를 넘어, 고통받는 러시아를 구원할 희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변모합니다.
3. 대비: 유혹의 꽃 vs 구원의 꽃
※ 구분: 보들레르 (프랑스 상징주의) -> 블로크 (러시아 상징주의)
∎ 핵심 기표: 악의 꽃(인공, 부패, 관능) -> 신비의 장미 (성스러움, 영원, 소피아)
∎ 정서적 배경: 권태 (Spleen), 우울, 고립 -> 종말론적 기대, 영적 갈망, 황홀경
∎ 시인의 역할: 저주받은 시인 (Poète maudit) -> 예언자, 사제, 신인협동(Theurgist)
∎ 미학적 귀결: 미의 자율성 (예술을 위한 예술) -> 삶의 변혁 (예술을 통한 구원)
결론: 지옥의 꽃에서 천상의 빛으로
보들레르가 꽃을 통해 '지옥의 밑바닥에서 발견한 새로운 것(Le Nouveau)'에 집착했다면, 블로크는 장미의 향기를 통해 '가까이 다가오는 신성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 했습니다. 프랑스 상징주의가 근대 도시인의 분열된 자아를 심미적으로 완성했다면, 러시아 상징주의는 그 자아를 초월적 합일의 세계로 이끌어 올리려 한 시도였습니다.
이러한 '장미'의 형이상학적 무게는 이후 아흐마토바나 만델슈탐 같은 아크메이스트(성수파)들이 "꽃을 다시 대지의 구체적인 사물로 되돌려 놓으라"고 요구하며 반기를 드는 미학적 반작용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북방(北方)'이라는 미학적 공유지
예세닌과 마야콥스키-백석과 이용악
상징주의라는 거대한 태양이 저물 무렵, 러시아 문학의 지평선 위로는 전혀 다른 두 갈래의 빛이 솟아올랐습니다. 바로 세르게이 예세닌의 '땅의 서정'과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의 '강철의 외침'입니다. 두 시인은 상징주의가 도달한 '형이상학적 모호함'을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으나, 그 대안으로 삼은 세계관은 정반대였습니다.
1. 세르게이 예세닌:
'장미'에서 '자작나무'로, 신비에서 혈육으로
예세닌은 블로크가 추구했던 천상의 신비를 러시아의 '흙'과 '동물'의 언어로 끌어내렸습니다.
전원적 상징의 탄생: 상징주의의 장미가 온실 속의 관념적 미학이었다면, 예세닌의 꽃은 러시아 평원에 핀 자작나무와 들꽃입니다. 그는 자연을 관조의 대상이 아닌, 자신과 피를 나눈 '혈육'으로 대했습니다.
애니미즘적 전이: 예세닌에게 동물과 식물은 신의 상징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슬퍼하는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의 시에서 짐승의 눈물이나 나무의 비명은 상징주의적 암호가 아니라, 문명에 짓밟히는 '마지막 농촌 시인'의 실존적 절규였습니다.
향수와 파멸: 도시화와 혁명의 소음 속에서 그는 사라져 가는 농촌의 정서를 '상징'화했습니다. 이는 구원으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비극적 애가로 기능합니다.
2.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꽃'을 짓밟는 '노란 셔츠'와 거대한 확성기
마야콥스키는 보들레르의 우울과 블로크의 신비를 한꺼번에 파괴하며 등장했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상징주의의 언어를 '부르주아의 장식물'이라며 냉소했습니다.
파괴적 은유와 하이퍼볼(Hyperbole): 그의 시에서 은유는 대상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낡은 세계를 부수는 '망치'입니다. "내 혀는 자욱한 연기 속에 갇힌 불"이라거나, "해를 불러다 함께 차를 마시는" 식의 거대한 과장은 상징주의의 섬세한 정취를 압살합니다.
도시와 기계의 미학: 꽃이 차지하던 자리에는 철강, 증기선, 공장의 굴뚝이 들어섭니다. 특히 그가 완성한 '계단식 시(Ladder poetry)'는 시적 리듬을 시각적 타격감으로 전환하며, 정적인 상징주의적 명상을 동적인 '혁명의 행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래주의적 선언: 그는 시인이 예언자(상징주의)나 서정적 농부(예세닌)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는 '노동자'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은유는 개인의 내면이 아닌 '거리'를 향해 울려 퍼지는 확성기였습니다.
미학적 변모의 궤적
※구분: 상징주의 (블로크 등)->예세닌 (이미지즘/전원)->마야콥스키 (미래주의)
∎ 핵심 상징: 천상의 장미, 안개, 밤->자작나무, 황소, 대지->구름(바지를 입은), 강철, 톱니바퀴
∎ 공간의 성격: 성당, 내면의 심연 - > 사라져 가는 농촌, 숲->소란스러운 도시, 광장, 공장
∎ 언어의 질감: 음악적, 모호함, 다층적->민속적, 감각적, 애수->파괴적, 직설적, 금속성
∎ 시적 태도: 투시 (Clairvoyance)->공감 (Empathy)->선동 (Agitation)
3. 변모의 끝: 북방의 고독과 눈보라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극단적인 미학이 결국 '눈보라'라는 러시아 특유의 정서 속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예세닌은 문명에 밀려난 농촌의 고독을 눈 덮인 평원에서 찾았고, 마야콥스키는 구세계를 쓸어버리는 혁명의 에너지를 거친 폭풍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북방적 정서'는 이후 국경을 넘어, 가혹한 시대를 견디며 자기만의 언어를 조각했던 동아시아의 시인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유랑하는 영혼들이 숲과 대지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시적 비애는 예세닌과 닮아 있고, 무너지는 시대를 파괴적인 언어로 기록하려 했던 열망은 마야콥스키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징주의의 '꽃'은 예세닌에 의해 '대지의 뿌리'로 돌아갔고, 마야콥스키에 의해 '미래를 향한 포탄'으로 재제조된 셈입니다.
격동의 시학과
미학적 도화선
러시아의 '은의 시대(Silver Age)'에서 혁명기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학은 1920~30년대 한국 근대 문학사, 특히 '북방'이라는 공간적 특수성과 '리얼리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던 시인들에게 강렬한 미학적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예세닌의 전원적 비애와 마야콥스키의 강철 같은 외침이 한국의 북방 정서 및 리얼리즘 시학에 투영된 양상을 세 가지 핵심 지점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1. 예세닌의 '비극적 전원'과
백석·이용악의 '북방적 비애'
예세닌이 노래한 러시아 평원의 자작나무와 짐승들의 눈물은 한국의 북방 시인들에게 '사라져 가는 고향'을 노래할 미학적 문법을 제공했습니다.
백석과 예세닌: 토착적 정서의 고수-예세닌이 러시아의 농촌 공동체를 성스러운 공간으로 간주했듯, 백석은 평안도 방언과 민속적 소재(음식, 풍속)를 통해 근대화에 오염되지 않은 공동체의 원형을 재현했습니다. 두 시인 모두 도시라는 문명 공간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랑자'의 정서를 공유하며, 자연물을 의인화하여 자신의 고독을 투사하는 애니미즘적 경향을 보입니다.
이용악과 예세닌: 유랑과 혈육의 시학-이용악의 시에 등장하는 거친 북방의 추위와 가족의 해체는 예세닌이 느꼈던 '마지막 마을 시인'으로서의 상실감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세닌이 동물들을 '작은 형제'라 불렀던 것처럼, 이용악은 <오랑캐꽃> 등에서 변방의 소외된 존재들에게 지극한 연민을 보내며 이를 리얼리즘의 토대로 삼았습니다.
2. 마야콥스키의 '도시/혁명'과
임화의 '단편 서사시'
마야콥스키의 파괴적인 은유와 '계단식 시(Ladder poetry)' 형식은 한국의 초기 임화나 카프(KAPF) 작가들에게 시각적·청각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임화와 마야콥스키: 거리의 시학-임화의 초기작인 <우리 오빠와 화로> 등에서 보이는 '단편 서사시' 형식은 마야콥스키가 지향했던 '광장의 예술'과 궤를 같이합니다. 개인의 내면적 독백에서 벗어나, 청자(대중)를 향해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선동적 리듬을 도입했습니다.
형식적 실험 (계단식 시): 마야콥스키가 전통적인 각운을 깨고 행을 계단식으로 배열해 호흡의 휴지와 강세를 조절했듯, 한국의 리얼리즘 시인들도 시각적 배치를 통해 시에 역동성과 타격감을 부여하려 했습니다. 이는 정적인 서정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3. '북방(The North)'이라는 미학적 공유지
러시아 시인들에게 '시베리아'나 '눈보라'가 시련이자 정화의 공간이었듯, 한국 시인들에게 '함경도/간도'라는 북방은 식민지 현실의 모순이 극대화된 리얼리즘의 현장이었습니다.
※ 비교 항목: 러시아 시학 (예세닌/마야콥스키) -> 한국 북방/리얼리즘 시학
∎ 공간의 상징: 무한한 평원, 혁명의 광장 -> 유랑의 길, 거친 국경지대
∎ 정서적 핵심: 노스탤지어 vs 미래주의적 열광 -> 망향의 슬픔 vs 해방의 갈망
∎ 표현 기법: 과감한 하이퍼볼(과장법), 음악성 -> 거친 묘사, 방언의 활용, 서사성
결론: '꽃'이 '돌'과 '눈'이 되는 과정
상징주의의 '꽃'이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기표였다면, 이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시인들은 그 꽃을 북방의 '눈보라' 속에 내던지거나, 마야콥스키처럼 '길 위의 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세닌을 통해 한국 시인들은 식민지 민중의 보편적 슬픔을 노래할 서정적 근거를 얻었고, 마야콥스키를 통해 낡은 시대를 부수고 나갈 거친 호흡을 익혔습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시학은 한국 문학이 '나약한 감상'에서 벗어나 '역사적 실존'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미학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임화는 일제강점기 「담-1927」, 「네거리의 순이」, 「어머니」 등을 저술한 시인으로 평론가이자 문학운동가이다.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했으며, 영화와 연극에도 뛰어들었다. 1928년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였다. 1929년 「우리 옵바와 화로」 등의 시를 발표해 대표적인 프로 시인이 되었다. 1932년 카프 서기장으로 카프 제2세대의 주역이 되었다. 1935년 카프 해산계를 낸 이후 해방까지의 시집 『현해탄』과 『조선신문학사』를 간행했다. 1920∼1930년대의 프로문학과 해방 직후의 좌익문학을 논할 때 필수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존재이다.
우리 오빠의 화로
- 임화(林和)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¹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永男)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궐련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ㅡ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永男)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絲機)를 떠나서 백 장에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永男)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영남(永男)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 갔습니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永男)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슬ㅎ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永男)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 [조선지광] 83호(1929. 2)
[註1] 피오닐 : 러시아 말로 영어의 pioneer에 해당됨. '개척자, 선구자' 라는 뜻과 함께 '공산소년단원'(9세-14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