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안나 아흐마토바(1899-1966)
그리고 생각하기를
안나 아흐마토바¹
그리고 생각하기를
이곳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울리지 않을 것이니,
다만 구석기의 바람이
검은 문을 두드릴 뿐.
그리고 생각하기를
나는 홀로 이 하늘 아래 살아남았으니,
처음으로 내가 원했던 것은
죽음의 잔을 마시는 일.
이장욱 지음 『혁명과 모더니즘』
(러시아의 시와 미학) 中
[註¹] 안나 아흐마토바(Anna Akhmatova)의 본명은 안나 안드레예브나 고렌코이다. 고렌코는 러시아어 ‘고통(gore)’에서 유래한 단어다. 고리키는 이 단어로 만든 필명이지만, 아흐마토바는 본명이 고렌코, 즉 ‘고통’이었다.
작품의 배경과 시평
안나 아흐마토바의 본명인 ‘고렌코(Gorenko)’가 ‘고통(Gore)’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삶과 문학을 관통하는 가장 상징적인 열쇠입니다. 그의 시 〈그리고 생각하기를〉은 그녀가 겪었던 개인적인 비극이 어떻게 시대적 절망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작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배경:
‘침묵’이 강요된 시대
이 시는 아흐마토바가 겪었던 가장 어두운 시기, 즉 스탈린 체제 하의 대숙청기를 전후로 한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 고립: 당시 아흐마토바의 첫 남편 구밀료프는 처형되었고, 아들 레프는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녀 자신은 시집 출간이 금지된 채 감시당하며 사실상 ‘사회적 매장’ 상태에 있었습니다.
▪︎문명의 파괴: 아흐마토바는 러시아 혁명 이후의 혼란을 문명의 종말로 인식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인간의 존엄과 문화가 사라진 황폐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고렌코(고통)의 수용: 아흐마토바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죽음과 고통의 잔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마시고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2. 시평:
절멸의 풍경에서 피어난 비장미
‘구석기의 바람’과 문명의 회귀
제1연에서 화자는 “구석기의 바람”이 검은 문을 두드린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현대 문명이 파괴되고 인류가 원시적인 공포와 야만의 시대로 퇴보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거칠고 차가운 자연의 물리적 힘뿐입니다. 여기서 ‘검은 문’은 죽음, 혹은 소통이 단절된 감옥의 문을 상징합니다.
홀로 살아남은 자의 비극
제2연의 “나는 홀로 이 하늘 아래 살아남았으니”라는 구절은 단순한 생존의 기쁨이 아니라 ‘생존의 죄책감’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동료 시인들과 가족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혼자 남겨진 시인은 자신을 축복받은 자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형벌을 받은 증언자’로 설정합니다.
‘죽음의 잔’을 마시는 행위
화자가 원했던 것이 “죽음의 잔을 마시는 일”이라는 고백은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고난을 연상시킵니다. 이는 단순히 삶을 포기하겠다는 자살적 충동이 아닙니다. 이 비극적인 시대를 회피하지 않고, 그 독배(고통)를 기꺼이 받아들여 내면화하겠다는 비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절제의 미학
이 시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고 생각하기를”이라는 차분한 반복을 통해 처절한 슬픔을 객관화합니다. 극심한 고통(Gore)을 차가운 이성으로 정제해 내는 아흐마토바 특유의 ‘고전주의적 절제’가 돋보이는 지점입니다.
3. 요약 및 결론
이 시는 개인적 슬픔을 시대적 비극으로 확장시킨 작품입니다. 본명이 ‘고통’이었던 시인이 인간의 목소리가 사라진 ‘구석기적 황무지’에서 던지는 이 독백은, 역설적으로 가장 암흑 같은 순간에도 시적인 사유를 멈추지 않겠다는 저항의 기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