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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themoment Nov 10. 2022

아이의 학원 실패담. 그리고 교훈

폭풍같던 지난 여름방학


얼마전 띠링띠링

익숙한 번호의 문자가 왔다.

청담 어학원의 겨울학기 모집 문자였다.

7세~초6 겨울 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으니 얼른 등록하란다.

그 문자를 보고 있으니 작년에 아이에게 했던 큰 실수가 떠오른다.


작년 이맘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고 휴직 예정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워킹맘이라는 현실에 맞게

아이 일정을 세팅하고 있었다.

휴직을 1년 할지, 6개월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 기간은 아이를 학원 일정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간이라 생각했다.

즉, 내가 없이도 스스로 다닐 수 있도록 한 학기 정도 함께 보조하는 기간이 나의 휴직 이유였다.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어떤 학원의 시간이 몇시부터인지

아이의 일정과 맞는지 등을 체크하며 학원에 전화를 해보기도 하고 직접 방문해보기도 했다.


그 때 내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학원 시간과 셔틀버스의 운영이었다.

아이의 학원을 선택하는데, 오직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 시간과 셔틀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다.


학원은 아이가 특별한 일만 없으면 꾸준히 다녀야 할 것이그고

한번 선택하면 꾸준히 레벨을 올려가며 고학년 까지, 길게는 중고등 까지도

이어지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다.

이런 이유로 학원을 선택하는 데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함에도

그 때 나는 딱 7살 딸의 엄마 수준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최대한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고들 한다.

내 아이가 초1이라면 적어도 초등 고학년을 바라보며

학습 습관을 비롯한 생활 습관을 세팅해가야하고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라면 고등학교를 바라보며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7살의 엄마였던 나는

초등 1학년 아이의 학교 생활 전반과 인성, 생활 습관 등에 대해서는 염두해두지 않은채

오직 아이의 하교 후의 시간과

일하는 엄마인 나의 일과 일정에 방해받지 않도록

학원을 세팅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선택했던 영어 학원은 반학기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어떤 학원인지도 모르고 갔던 아이는

너무 많은 학원 숙제에 힘겨워했고

오고가는 시간에 체력이 방전되어 늘 짜증과 불평을 달고 살았다.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의 성향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오로지 '다른 아이들도 잘 다니고 있으니까'라는 이유로

내 아이 또한 문제없이 다닐 것이라 생각했다.

또 학원 차가 집 앞까지 오고 집 앞에 내려준다는 이유로

먼 거리를 오고 가는 아이가 얼마나 피곤하고 지칠지 생각하지 못했다.


작은 문제 하나가 연쇄적으로 불러 일으킨 것들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버거운 숙제는 아이를 힘겹게 했고,

점점 숙제시간을 미루게 된다.

잘 해오는 듯 했던 숙제를 미루는 날들이 많아지자

나는 아이를 닥달하게 되었고,

아이는 짜증과 분노로 마음을 표현했다.


계속되는 아이의 짜증과 분노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내 아이지만 자꾸 미워지는 마음이 들었고

집의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


그 무렵, 학원에서 보는 테스트 역시 아이에게는 스트레스 였을 것이다.

단어를 외워가거나 하진 않았으므로

매번 테스트에서 단어 철자를 쓰는 세문제는 틀려왔다.

틀려도 괜찮다고 했지만 시험지를 받아드는 아이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친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짖궂은 아이들이 툭 던지는 한마디는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


이 뿐 아니라 숙제중에 녹음하는 시간만 되면

동생의 목소리 때문에 excellent가 나오지 않았다며

짜증내기 일쑤였다.


이런 저런 일들로 힘겨운 나날들임에는 분명했다.


나 또한 첫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버겁고 힘들었고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남편에게까지 전해졌다.

뭔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변화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빠짐없이 숙제를 해가고 있는 상황과

학원에서 들려오는 피드백이 칭찬일색이었고,

때가 되면 레벨을 올리며 아이를 끌어주는 시스템은

아이의 영어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질게 터졌다.


아이에 대한 나의 태도에 변화가 없었기에

여름 방학이 되어서도 내 생활에 침해받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수영 특강 등 다른 일정을 넣기 시작했다.

아이는 힘들어했고 아이와 나는 폭발해서 싸웠다.


그 후 한달은 매우 힘겨웠다.

아이는 나에게 선언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외출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충격이었고 무서웠다.

평생 아이가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모든 것을 재정비 해야했다.


그 1순위는 아이와 나의 관계였다.

학원을 그만두고 함께하는 시간을 늘였다.

혼자 앉아서 하라고 지시만했던 공부시간을

나란히 앉아서 함께 하게 되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 남는 시간은 함께 책을 읽었다.

아이의 마음도, 내 마음도 단단함이 우선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힘겨운 여름방학이

감사하기만 하다.


잠시 힘겹게만 느껴졌던 첫째와의 관계가

더없는 사랑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관계가 우선이다.

아이의 공부는 아이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전혀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아이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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