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나세카에서 카카벨로스까지, 짐 싸는 팁
기다리는 중
2023년 05월 30일, 25일차
Molinaseca(몰리나세카) → Cacabelos(카카벨로스), 알베르게 : Albergue Gallega
거리 : 22.9km
날씨 :흐림(최저 12, 최고 25)
호텔 조식이다.
빤 꼰 또마떼, 빵에 곱게 간 토마토와 올리브오일 섞어 만든 토마토(또마떼)를 곁들인다.
거기에 하몽과 치즈, 그리고 주스와 커피.
아침 식사 후 오늘의 길을 걷던 중이었다.
"아 참! 내 무릎 보호대"
언니가 침대 밑 바닥에 넣어 둔 무릎 보호대를 깜빡 잊고 나선 걸 알아챈 것이다.
언니는 알베르게까지 되돌아가고, 우린 기다리기로 한다.
(4km 지나 캄포 앞에서 길이 나뉠 때 직진하시면 campo 마을을 지나가게 됩니다. 오른쪽으로 도로 따라가면 폰페라다로 바로 가실 수 있고 길은 좀 더 짧습니다. 이쪽으로 가시면 차 조심하셔야 합니다.)
길이 두 갈래일 때의 선택은 항상 아름다운 길이었다. 오늘도 멀지만 이정표를 보고 폰페라다로 길을 잡았다.
분명 맞는 길인 줄 알았는데, 지나가던 현지인들이 차도 옆길로 가라고 손짓을 한다
자동차로 가던 사람도 차를 세우고는 이 길이 아니라고 저리 가라고 가리켰다.
확실한 의사소통이 안 되니, 이정표에 나타난 폰페라다를 묻지 못하고 일단 순례길은 여기가 아니라고, 저기라고 가리키는 현지 사람들 말을 듣기로 했다.
폰페라다 성이 웅장하다.
템플기사단이 머물렀다는 이곳 안쪽에 박물관이 있고, 성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망루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데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길 옆의 카페에서 쉴 목적으로 주스와 조각 케이크를 앞에 놓고 앉았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성을 끼고 오르면 되는데 한 발 먼저 간 사람들이 (이 길이 아닌가벼 라는 듯) 다시 내려오고 있다.
가던 길을 되짚어 온 사람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자, 현지인이 아래 길을 가리킨다.
그러나 내려오던 사람들이 원래 가던 길로 가면서 우릴 부른다. (여기로 가는 게 맞아 하면서)
우린 현지인을 따라서 아래로 향했다.
오르막을 택하느냐!, 내리막을 택하느냐! 누구 말을 듣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반 서클 정도 돌자 그들이 보인다. 그들은 힘들게 오른 너머 위에서 다시 계단으로 내려오려는 중이었다.
계단 위쪽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하니, 내려오는 길을 택하라며 알려주고 같이 걷던 현지인이 크게 웃는다.
빠르고 쉬운 길을 택한 우리가 대견하여 같이 웃는다. 유쾌하다.
그분과 우리는 웃음 속에 말을 넣었다. 말하지 않아도 웃음에 그것이 들어있다.
'길은 통할지언정 내가 가르쳐 준 길이 더 빨랐지!'
'그래 우리가 빨랐어. 덕분이야. 고마워.'
길가에서 체리를 파는 사람이 있다. 아침 일찍 자신의 집에서 따 왔으니 2유로에 1kg 정도 적당히 가져가란다.
체리를 사서 근처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 닦아 먹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순례길 옆길로 들어섰는데 집들이 이어진 곳이다. 한적한 곳이라서 누가 볼까 무서웠지만 실례를 했다.
그 뻔뻔함에 괴로웠다. 체리 장사 옆에 서 있던 동네 사람인 듯한 부인이 나를 봤을 리 없었건만 이맛살을 찌푸리는 것만 같았다.
아 걷다 보니 조금만 더 가면 카페가 있었는데 참을걸.
스스로 만든 모멸감은 오래갔다. 참을걸.
다시 짐을 싼다면
포트를 넣으리.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고, 계란을 삶고, 큐브 미역국, 된장국, 북엇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고 향수를 달래리. 라면을 끓이고, 파스타를 삶아 여기 슈퍼에서 파는 소스를 얹어 먹으리.
큰 카고 백을 준비하여 아침이면 가방에 넘치는 짐 때문에 지퍼를 여미느라 애쓰지 않으리. 비교적 싼 마트를 만나면 올리브병이랑 사과랑 바나나 다발을 사서 쟁여 넣으리.
여벌의 운동화 대신 호카 샌들을 준비하여 가볍게 걸으리.
두꺼운 울 양말 대신 얇은 여름용 울 양말을, 신축성 좋고 몸에 잘 붙는 속옷을, 발의 피로를 푸는 패치와 꿀잠을 위한 온열 안대를 넉넉히 준비하리.
무거운 스틱은 버리고 가벼운 4단 스틱을, 두꺼운 장갑도, 배낭은 좀 더 작은 것으로 준비하리.
빨랫비누 대신 향기 좋은 세탁용 세숫비누를, 잘 씻은 사과와 체리를 넣을 비닐팩 한 다발을 준비하리.
그러나 세안용 비누 한 장, 비옷(버닝칸 판초, 비치마, 스페츠), 캡모자, 비상용 영양제(공진단, 비타민), 화장품(에센스와 영양크림), 얇은 구스 침낭, 잠옷 대용 내복, 원피스 하나, 반바지와 면티, 자외선 차단이 되는 구멍 뚫린 마스크, 얇은 패딩, 반달 베개, 삼선 슬리퍼, 샤워용 수건은 꼭 다시 챙기리.
그리고 쓰임이 없었던 헤드랜턴, 맥가이버 칼, 보온 병, 공책은 두고 오리.
15kg짜리면 족하다.
안녕!
순례길의 여정이 마냥 좋았고 좋다.
아침이면 침대 난간에 널어 놓은 마른 빨래를 개키고 넣어 카고 백을 여미며 출발을 알리지.
배낭엔 사과와 바나나를 넣고 짊어지고, 장갑, 모자, 마스크, 스틱을 챙겨 길을 시작하는 거야.
하루에 대략 6시간~8시간을 길 위에 있게 되는데, 도중에 카페에서 착즙 오렌지 주스, 아침을 먹지 않은 경우엔 또르띠아와 빵 조각, 커피를 먹거나 점심 식사를 하기도 해.
길을 걷는 내내 좋은 날씨에 감사하고,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과 들꽃과 가정집 정원의 꽃들에 반하면서.
나란히 걸을 때도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도 있는데, 혼자일 때는 속으로 외는 주문과 기도로 채워서 좋고, 함께 할 때는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아.
사진을 찍거나 발걸음에 집중하면서 걷다가 마주치는 현지인과 유럽인 들에게 '올라', '부엔 까미노' 인사를 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순례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들이 주는 인상으로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기도 하면서.
오후 3시 반이면 문을 닫는 씨에스타 때문에 점저를 먹거나, 오후 7, 8시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여행 초반엔 저녁 6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해서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래서 배가 고파 잠이 들지 않는 기이한 경험도 한 거야.
걷기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누울 때면 비가 쏟아지는 날들이 3일째 이어지고 있으니 엄청나다. 날씨 덕이 커.
호텔이 예정된 날엔 꿀잠을 예상하며 좋아하고, 그 날이 지나면 몇날 며칠을 호텔로 가는 그날을 기다린다.
선착순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정해진 자리에 누우면 하루를 잘 보낸 스스로를 칭찬하거든.
발이 저리거나 발목이 아프거나 다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자고 나면 괜찮으니 아직은 젊다고 자부하면서.
코 고는 소리와 기침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깨기도, 잠 못 들기도 하지만 괜찮아.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행장을 꾸리는데 별 무리 없이 해내는, 나 뿐만 아니라 모두 잘 해내는 걸 확인하면서 경외감이 들지.
변비로 고생한다는 소리는 듣질 못 했으니 걷는 것은 순환을 돕는다는 확신이 들어.
물을 많이 마신 까닭에 소변 자주 마려운 나는 난감한 꼴을 피하려고 물을 줄이고 또 줄이고 있어.
아니라면 길가 으슥한 곳을 찾아 소변을 볼 수밖에 없는데, 순례길 중 이것이 젤 어렵고 어렵거든.
누가 서양 부부 중 길에서 주저앉은 여자 옆에서 머쩍게 웃는 남자를 봤대.
나도 나뭇가지가 한 쪽만 가리는데도 다 가려진 냥 바지를 내리는 프랑스 여자들도 봤지만 말야, 상관없지 뭐.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산티아고까지 쓰레기를 줒으며 가노라 했던 사람이 말한 거야.
그래서 휴지를 쓰지 않거나 썼다면 가져가야 된다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어.
일정이 막바지에 다다라 많은 경험이 쌓이고 있어.
이 모든 걸 채곡채곡 넣어 둘께.
인생 길을 가다가 어떤 것을 꺼내어 쓰게 될지 모를 일이잖아.
딸, 너도 많은 경험이 따르길 축복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