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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a Kim Nov 07. 2023

나의 판타지에게_응답하라 2008_(1.)

학교를 마치고, 미술학원을 마치고 집에 왔다. 당시 서울 소재의 특수중학교_예술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학교는 그다지 면학 분위기가 좋지 못한 곳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그런 학교의 분위기 특성상, 소위 말하는 '찐따'가 되고싶지 않아서, 또래보다 일찍 화장을 시작했고, 치마를 줄였으며, 그렇다고 망가진 애들처럼은 되고싶지 않았기에 무서운 선배들을 피했고 몰래 뒤에서 문제집을 풀며 실기를 연습했다. 그 당시 해당 학교의 면학 분위기상, 선생님들에게 대들고 수업시간에 mp3를 듣는 것이 대세의 흐름이었다. 나는 그에 맞춰, 내일은 땡땡이를 치고 롯데월드를 가야지라며 친구들을 꼬시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그림 실기 레슨을 받고, 그러다가 지루하다 싶을 때 땡땡이를 치고 서울 시내나 놀이공원을 가서 노는 일종의 일탈들이 그 시절의 나에겐 쳇바퀴같은 일상에 한 줄기 낙이었다.



어린 시절 공부를 꽤나 잘 했지만, 공부만큼은 너무 무료하고 따분해. 마치 찐따들의 세계 같아-라고 생각했던 나는, 첫째 지망으로 아이돌을 꿈꿨고, 둘째 지망으로는 미술작가를 꿈꿨었다. 사춘기로부터 통칭 중2병이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린 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 당연히 부모님의 입장으로서는 보수적인 시선에서, 딸에게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허용한다-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에 따라 나는 미술로 예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야 초단아, 내일은 안 될 것 같애 -_- 지대 짱나. 나 저번에 땡땡이 치고 롯데월드 간 거 담탱한테 걸렸자나. 니도 조심해. 이제 중3되는데 한 번 더 걸리면 벌점 졸라 높게 준대 ㅡㅡ"



애석하게도, 내가 기다리던 답장은 아닌, 친구의 경고섞인 거절이었다.



죽어도 숙제하기 싫은 날, 학원도 가기 싫은 그런 날, 나는 다시 호그와트에 접속했다. 때는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오는 시점, 언제나 그들만의 환상세계를 누리는 저 너머의 사람들은 늘 그들끼리 복작복작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크리스마스 맞이 호그와트 메인 모델 이벤트였다. 많은 표를 받은 사람에게 호그와트의 대문에 본인의 예쁜 모습으로의 홍보사진(?) 과 같은 것이 걸릴 수 있는, 그시절 얼짱문화에 미쳐있던 우리 또래 여자애들에게, 특히 보아, 동방신기 등을 보며 아이돌을 꿈꿨었던 나에게는 정말 가슴 설레는 이벤트였다.



조금은 우습지만, 이 이벤트가 날 데뷔시켜주는 것도 아니지만 욕심이 생긴 이상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싸이월드에 올렸던 기존 사진들을 재탕하는 것 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엄마 몰래 집을 뒤져보았더니, 유치원 때 썼을 법한 작은 산타모자가 나왔다. 부스스한 샤기컷 머리에 억지로 얹듯이 끼워넣었다. 당장 분장을 할 수는 없기에 널브러진 옷가지로 산타 자루를 연출했다. 예쁘게 보이고 싶기에 수염을 붙일 수는 없으니까, 그 시절 필수 무기였던 고양이 코 분장을 포토샵으로 장착! 반윤희를 보면서 연습해왔던 알록달록 손글씨도 추가!

일명 "호그와트 얼짱산타" 가 되기 위한 기이한 조합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예쁜 척을 가득 뽐낸 내 사진은 1등으로 선정되었고, 호그와트라는 가상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앞에 화려한(?) 신고식을 마쳤다. 2006년 겨울,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친목 요청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재미있게 형성된 무리에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호그와트 카페에서 기숙사 배정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 수연이에게조차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긴 것만 같았다. 현실에서는 동방신기를 덕질하며 화려한 아이돌을 꿈꾸었던, 종종 소소한 일탈을 넘어선 어떤 것을 꿈꾸던 일상의 중학생이, 호그와트 마법학교라는 판타지 소설 속 가상세계의 한 인물이라는 새로운 자아로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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