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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a Kim Nov 07. 2023

나의 판타지에게_응답하라 2008_(2.)

2007년,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어느새 가상현실에 빠져 호그와트의 강의를 읽고 숙제를 내면서, 재미없는 학교수업의 숙제는 빼먹는 더욱 더 뻔뻔해진 학생이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당시 불법다운로드 사이트와 마찬가지였던 파도, 소리바다 등지에서 받은 싸이월드bgm시리즈, 동방신기의 음악들로 가득한 mp3를 귀에 꽂고, "오늘도 나 수업 다 제꼈다" 라며 깔깔거렸다. 다가오는 고등학교 입시를 점점 더 피하고만 싶어졌고, 애초에 공부에 흥미조차 없었지만, 상위권이던 내게 본격 입시학년으로서 치고 올라오는 학생들을 보면 부담스럽고 어디론가 날아가고만 싶었다. 흔한 사춘기 어린 학생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부모님과 자주 부딫혔고, 내게 애착이 가는 어른은 어린시절부터 나를 많이 돌봐주시며 예뻐해주시던 우리 할머니 한 분 뿐이었다. 할머니의 암은 이 때부터 매우 심각해졌다. 여중생이 대부분이던 학창시절 당시 동창들은, 매일 싸우고, 이 친구와 붙었다 저 친구와 붙었다 하면서 멀어졌다 가까웠다를 반복했다. 그랬던 만큼 친한 친구는 자주 바뀌었고, 부류도 다양했다. 어린 나이 당시로서는 스트레스가 깊어져가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가 남소를 받으라고 하였다. 동방신기 화보, 영상, 팬픽, 하물며 미스틱 과자 봉지조차도 익숙했던 나는 남소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아이돌과 마법세계와 같은, 현실이 아닌 저 너머의 그 어딘가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이 때 음악계열의 친구인 은수와 친해졌다. 은수는 소위말해 '빽녀'로서, 연말 동방신기가 컴백하면 나를 음악방송과 시상식에 데려가 준다고 약속하였다. 나는 할머니의 병과, 잦은 뒷담과 마찰이 오가는 여중생들의 일상과, 그리고 입시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꿨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평화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그와트 속 가상세계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2007년 초, 나와 친해진 또래 학생들간의 싸움이 크게 일었다. 어느정도였냐면, 당시 조금씩 친해지던 단계였던 한 오빠가 호그와트 교수직에서 퇴출되는 사건이 있었던 것이 메인 뉴스였다. 사유는 07기수 간부 투표에서 투표 조작 건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퇴출한 반대 세력 쪽에서도 똑같은 조작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며 내게 유출한 증거 또한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누군가와 부딫히고 싸우는 것이 이미 현실에서도 힘들고, 스스로의 내적 갈등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였던 상황이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이를 방임하며 바라만 보았다. 이 때는 몰랐었다. 내가 그들과 어떠한 관계로 흘러갈 지.



일상에서 자주 만나던 친구가 내게 남자 소개를 권한 것을 거절했듯, 이 가상 판타지 세계에서도 정치 뿐 아니라 치정이 존재했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그 부류에 속하지 않았고, 않으려고 했다. 아이돌 세상에 몸담았던 나는 눈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 아니 착각하고 있었다. 이 때 학교, 동네 그리고 이 해리포터 세계 속의 많은 또래는 연애를 하고 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귀여니 소설이나 팬픽에서만 보던, 그런 것들은 현실로 다가온 순간 환상의 단절과 좌절만을 안겨 줄 것 같았고, 나는 연애조차 회피하고 싶었다. 시니컬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저런 게 어린 시절의 사랑이라는 걸까? 강의 교수직에서 퇴출된 송도윤오빠라는 사람을 위해, 한 언니가 나타나서 당시 주류를 꿰찼던 모두와 싸움을 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그 언니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내 사람이 당한 부당대우에 맞서는, 그 언니가 멋있어보였다. 당시 즐겨읽던 팬픽 속 남주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싸움박질을 일삼는 그런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하였다. 그 오빠가 지적이고 젠틀한 모습에 멋있어 보였지만, 그 오빠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싸워주는 언니, 박승희언니는 그 당시 내가 보기에는 정말 판타지 세계 속 히어로, 히로인같은 모습으로 비춰졌다. 자연스레 그들과 더욱 친해졌고, 당시 나는 해당 세계관에서 중간 나이였지만, 고작 한두살 언니오빠들의 멋져보이는 모습에 심취하여 그들의 세상에 나를 홀리듯이 던졌다.



송도윤오빠는, 입시, 할머니, 현실의 여러 고민들로 외강내유(_아니, 그저 센척으로 무장한 여린 나)의 상태였던 나의 싸이월드 방명록에 일기장처럼 자주 편지를 써주었다. 젠틀한 이미지의 사람이었고, 이래서 승희언니가 좋아했구나 싶었으면서도, 뭔가 묘하게 안 보이면 찾게 되고, 자주 보고싶은 느낌의 사람이었다. 언니랑 잘 되길 빌어주고 응원해주면서도, 이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동경인지 끌림인지 아리송한 가운데 연락을 주고받았다. 종종 이루어지는 모임에서도, 잘생기거나 튀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러다, 승희언니가 거절당하고 다른 오빠의 고백을 받아서 사귄다는 소식을 언니로부터 직접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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