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아빠를 쫓는 꿈을 또 꿨다. 복도 끝에서 시작된 추격은 늘 계단에서 끝난다. 깨고 나면 새벽 3시. 등줄기가 차갑다.
지난 겨울, 나는 고아가 될 뻔했다. 칼을 든 오빠가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면 견딜 수 없을 죄책감에 스스로를 해칠 게 뻔했으니까. 그 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온 가족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가 내 꿈속에 뿌리를 내렸다.
신기한 건 친구가 수원에서 와 함께 잘 때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자리의 숨소리만으로도 내 무의식이 안전해진다.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내 마음의 경계선이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
속초의 밤은 조용하다. 바다 소리가 들리는 밤도 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도 있다. 후자가 더 무섭다. 그런 밤이면 오빠의 얼굴이 꿈에 나타난다. 아프기 전의 그 얼굴로.
조현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의 낯섦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 별거 아닌 척하며 살아가지만, 꿈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로 계속 삶을 따라간다.
토요일 오전 10시. 알람을 세 번이나 끄고 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완벽히 계획 없는 하루를 보내기로 계획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귀찮아서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음들이 레이어처럼 쌓여 있었다. 집 앞 고물상에서 아저씨들이 뭔가를 나르는 소리, 때로는 빗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바다의 파도 소리. 공부하는 옛날에는 평화로운 풍경 속 평화로운 시간마저도 불안했는데, 여기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정오가 넘어서야 배고픔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냉장고를 뒤져봤지만 먹다남은 치킨과 샐러드주스가 전부다. 평소 같으면 마트에 가서 뭔가 제대로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었겠지만, 이날은 그런 에너지조차 없었다.
컵라면을 끓이면서 문득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시험 기간이 끝나고 나면 며칠 동안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던 기억. 그때는 그런 시간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필요한 휴식이었다.
오후 내내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씻고 나왔다.
게으름도 때론 필요한 영양분이다. 속초의 느린 시간이 가르쳐준 소중한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