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시험이 끝난 후 도서관에서 나올 때의 그 허무함. 며칠 동안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시험이 끝나자마자 찾아오는 공허감.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나.
집에 돌아와서도 공허함은 계속됐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별로 배고프지도 않은데 뭔가를 먹고 싶어했다. 결국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속초의 밤바다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파도만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라졌다. 그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며 깨달았다. 공허함도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을.
공허함은 다음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오늘의 공허함이 내일의 충만함을 위한 여백일 수도 있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공허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도 삶의 한 부분이니까. 때로는 비워두는 것도 용기다.
#공허함도 삶에서 필요한 # 속초에서 보낸 시간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의 인생 모토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이다.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조금씩 비축해두지 않으면 중요한 때에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따라 공감된다.
오늘 헬스장에서 무리했다. 평소보다 무게를 10kg 더 올렸다가 어깨에 담이 왔다. 트레이너가 "처음엔 천천히 하세요"라고 했는데, 괜한 욕심을 부렸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C가 또 지각했을 때 "너 정말 성의가 없구나"라고 했다가, 아이 표정이 확 구겨지는 걸 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안 사정이 있었다. 성급하게 판단한 내가 무리했다. 조금만 기다렸으면 됐을 텐데.
동료 D선생이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요. 좀 여유를 가지며 해요"라고 했다. 무리하는 걸 남들도 보고 있었나 보다. 운동도, 수업도, 학생 지도도 다 적당히 해야 하는 건데, 왜 자꾸 과하게 하려 할까.
속초에서 4년째 살면서 깨달은 건, 이곳의 속도에 맞춰 사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 뭔가 하려고 하면 오히려 안 된다. 바다를 보며 걸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오늘부터는 좀 더 천천히 해보자. 운동도, 수업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무리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적당한 속도와 온도가 가장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