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처음엔 어색했던 아이들과의 관계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적응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작년에 전학 왔던 O를 보며 신규 때의 나를 떠올렸다. 속초라는 낯선 환경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진 기분.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했던 그때.
"친한 친구요? 그냥 다 두루두루 친하죠 뭐." 뭔가 낯가리는 듯한 태도를 지닌 O가 걱정되어 누구와 친한지 물어봤을 때, 태연한 말투와 달리 불안한 눈빛이 예전의 나와 닮아 있었다.
"처음엔 다 어색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져. 물이 그릇의 모양을 따라가는 것처럼." 내가 해준 말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위로가 된다. 지금 O는 사물함 위에 올라가 앉아서 다른 친구들과 주말에 시험 끝나고 서울로 놀러 갈 계획을 세우며 편하게 이곳에 적응했다.
적응이란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나만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곳에 어울리는 것.
퇴근 후 키친온유에서 전복리조또를 먹으며 생각했다. 나도 이제 속초에 적응했구나. 이 음식도, 이 풍경도, 이 사람들도 모두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헬스장에서 운동기구에 앉아 세트를 채워나갈 때와 요가매트에 누워 명상을 할 때, 둘 다 몸을 쓰는 건 같지만 느낌은 정반대다. 하나는 근육에 힘을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힘을 빼는 것. 요즘 아침마다 운동을 하면서도 가끔 그 반대편이 그리워진다. 청초호 앞 요가원에서 배웠던 완전히 다른 종류의 집중.
사바사나 자세로 누우면 요가매트의 거친 질감이 등을 통해 전해졌다. 매트 아래 나무 마룻바닥의 작은 틈새들이 등뼈 하나하나를 받쳐주는 것 같았다. 천장 위 형광등은 꺼져 있고,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달빛만이 방 안을 은은하게 채웠다.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세요." 요가샘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떠올랐다. 말이라기보다는 진동에 가까웠다. 그 진동이 귓속을 거쳐 가슴까지 스며들었다.
창밖에서는 청초호의 물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찰랑거리는 소리도 아니고, 출렁이는 소리도 아닌, 그냥 물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정도의 소리. 간간이 바람이 창틀을 스쳐 지나가며 내는 미세한 떨림도 섞여 있었다.
요가샘의 발걸음이 조용히 다가왔다. 슬리퍼 소리도, 맨발 소리도 아닌 양말 신은 발의 부드러운 마찰음. 그리고 이마 한복판에 떨어진 아로마 오일 한 방울. 라벤더였을까, 아니면 유칼립투스였을까. 향보다도 그 한 방울의 온도가 기억난다. 미지근하고 부드럽게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던.
그때 시간은 멈춰 있었다. 아니, 시간이 있다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몸은 바닥에 가라앉고, 마음은 어디론가 떠올랐다. 달빛처럼 투명하고 고요한 어딘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