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 왔능가

반가움의 감정

by 도톰한물티슈

외할머니댁 가지 말자. 속초로 엄마와 함께 오는 길, 엄마가 문득 말했다. 외할머니를 이런저런 일로 못본지 꽤 되어간다. 외할머니는 이제 큰외삼촌 댁에 계시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외할머니가 참 좋았다. 전라도 사투리의 정겨움과 따뜻함은 내가 말투가 쌀쌀맞은 경상도에서 자라서인지 더 크게 다가왔다. 외할머니는 차를 타고도 이제는 도착했겠다 싶어서도 한참을 더 가야하는 지극히 시골 구석에 사셨다. 내가 도착하면 언제 나와계셨는지 모르게 항상 밖에 나와계셨었다. 우리를 발견하면 항상 오메 왔당가~ 우리 강아지 왔당가~~ 해주는 우리 할머니. 외할머니댁으로 출발하면 최소 6시간이 걸려서, 가면 언제든 밥 먹을 때가 된다. 그러나 새벽중에 도착하더라도 할머니는 항상 강생이 왔다며 밥을 차려주셨다. 할머니가 차려준 콩밥에 파래나물을 주욱 늘여서 밥에 돌돌 감아 먹을 때면 바다의 내음이 꼭 여행 온 것을 실감나게 하는 것 같았다. 작은 게무침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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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안동 친할머니댁에서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친할머니댁은 옛날 초갓집 형태였는데, 집의 끝과 끝에는 부엌과 큰방이 각각 마루와 연결되어 있었다. 부엌과 큰방 사이에 있는 작은방에는 티비가 있었고, 그곳은 제사 후 남자들이 모여 밥상을 함께 하는 곳이었다. 큰방은 아직까지 아궁이에 땔감을 넣어 불을 때는 온돌 방식이었다. 친할아버지의 제사가 있었고, 제사를 다 지내면 작은 방에 모여서 남자 어른들과 친척 오빠들이 밥을 먹었다. 친할머니는 그게 당연한 사람이었고, 며느리와 손녀딸들은 부엌에서 그들이 다 먹고 난 뒤에 작은 상을 차려서 후다닥 해치우듯이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소중한 한 끼가 이렇게 하잘것 없는 대우를 받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때의 나는 이러한 가부장적인 문화가 자연스레 행해지고 있는 시골 동네가 너무도 지긋지긋해서 격한 울분에 차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게도 참 자의식 과잉이었던 때다. 원래 밥도 잘 안먹는 내가 소중한 나의 한 끼를 이런 곳에서 먹고 있다는 것을 알리면 작은 방에서 티비를 보며 정치와 사회에 대해 누구나 한 마디 할법한 말들을 하는 남자 어른들, 사촌 오빠들이 이 부조리를 깨달을 것 같았기 때문에 밥상 위의 다 식어빠진 조기 살점을 밥에 올려 맛대가리 없는 밥을 우걱우걱 맛있게도 씹어댔었다. 이 식탁에 앉은 이들의 희생과 노고, 우리 엄마와 할머니의 허리가 아파가면서 치른 제사가 작은 방 인원들의 안락한 대화 속에서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없어지는게 싫었다.


지금이라면, 그냥 물어봤을것 같다. 오메~ 왜 우리는 따로 먹는당가? 이런 방식에 어떤 아름다운 의미가 있는거냐고 한번쯤은 물어봤을듯 하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그렇게 커왔던 방식에 반기를 들고 물어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건 마치 파래가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바스러져버리듯, 나만 이 당연한 흐름에서 벗어나 목소리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이 어색하게 부서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외할머니가 지금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신다. 엄마는 내가 더 슬퍼할 것 같다며, 그런 모습을 보느니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두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외할머니를 보러가야 할 것 같았다. 나에게 반가움을 주셨던 할머니를 이제는 내가 더 반기러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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