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영운 Apr 06. 2024

다시 타임슬립_서녀명란전 1

应是綠肥紅瘦 푸른 잎은 짙어지고 붉은 꽃은 진다는 걸

 <서녀명란전>은 중국 드라마 <녹비홍수>의 원작소설이다. 

중드 마니아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인생작으로 <녹비홍수>를 꼽는 이가 많다. 나 역시 그렇다. 드라마를 몇 번이나 보면서 원작소설이 있다는데 도대체 어떤지 너무나 궁금했다.


<서녀명란전>은 정치 법률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민법원의 서기였던 요의의라는 여자가 산사태로 죽었다 깨어났더니 고대 시대로 타임슬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요의의가 다섯 살 명란의 몸으로 깨어나면서 고대 시대에 적응해 가는 고군분투기이다.


<녹비홍수>는 북송 시대를 배경으로 서녀였던  명란의 성장과 사랑, 혼인 후의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에피소드들의 순서나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 <녹비홍수>는 정통 고장극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서녀명란전>의 명란은 현대의 사람이었던 요의의가 통통 튀는 속마음을 표현해서 특이하게 느껴졌다. 사람 파악이 안 된 요의의는 계집종들을 A, B, C, D, E, F라고 칭하며 부르기도 했다. 계집종 A가 말했다. 계집종 B가 흥분하며 떠들었다. 계집종 C가 툴툴거렸다.





작가는 특히 <홍루몽>의 인물들을 많이 빗대어 이야기했다.


이제 첩들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설명할 사람은 당연히 그 이름도 유명한 임 이랑이다(꽃다발 증정, 일동 박수!). 똑같은 임 씨라도 <홍루몽>에 나오는 임대옥과는 천지 차이였다. (p34)

성부의 혼란은 임 이랑의 득세에서 시작되었다. 임 이랑이 다른 집의 정실부인 자리를 마다하고 이랑이 되길 원한 것은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고, 다루는 법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녀는 얼빠진 우이저(<홍루몽>속 인물, 가련의 첩으로, 본처 왕희봉의 계략에 빠져 자살로 생을 마감함.)가 아니었다. (p73)


명란은 따뜻한 구들 위에 누워 작게 탄식했다. 사실 노대부인의 걱정은 기우였다. 지금의 신분을 받아들인 날부터 명란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주 정상적인 고대 세계였다. 신분 질서가 엄격하고, 봉건 질서가 뚜렷해서 막 나갈 수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 무작정 집을 나가 협녀가 될 수도 없었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창업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궁에 가서 살길을 모색하는 건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자신의 생활을 잘 돌보는 것뿐이었다.  (p167)


요의의 말고도 현대의 기억을 가지고 고대로 타임슬립한 인물은 한 둘이 아니다, 특히 또 다른 중드 <경여년>에서 범한의 생모인 엽경미를 알았다면 요의의도 앞에서 바랬던 협녀도 창업도 궁에서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엽경미도 현대의 기억을 가지고 고대로 온 사람인데 세상을 유람하다 사대종사 중 셋을 만났고 온갖 신기한 물건들을 만들어내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 끝에는 황실로 시집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공상궁이 상심에 빠진 노대부인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정안황후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오늘 노마님께도 해드릴까 합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고,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렸습니다. 우리 여인네의 일생은 쉽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면 그다음은 하늘의 뜻에 따를 일이지요. 부모가 낳아주고 길러준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가 어찌 이 생을 헛되이 쓰겠습니까? 어떻게든 잘 살 궁리를 해야죠. 단 하루를 살아도 잘 살아야 합니다. 노마님은 아직 숨이 붙어 있으니 잘 살아 내야지요. 불공평한 일을 보면 그 자리에서 말하고, 잘못된 것을 보면 그 자리에서 욕을 해야 합니다."  (p179)


고대나 현대나 여성의 삶은 녹록한 적이 없었다. 여자로 태어나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맡겨진 임무에 충실하며 살아왔다. 인생에 뜻하지 않은 폭풍을 만났을 때 이 말을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어찌 이 생을 헛되이 쓰겠습니까? 어떻게든 잘 살 궁리를 해야죠. 단 하루를 살아도 잘 살아야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깨져버려 ~ 오만과 편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