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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영운 Apr 04. 2024

깨져버려 ~ 오만과 편견

난 말이야, 오만은 아주 흔한 결점이라고 생각해. (p35)

<오만과 편견>을 읽고 난 후 2006년에 개봉한 나이틀리(엘리자베스역) 주연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500페이지 이상의 책을 128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었으니 내용면에서 다소 부족함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요 내용만 진액처럼 뽑아서 영상화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누군가가 자꾸 연상되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인 조였다.


<오만과 편견>은 영국에서 제인 오스틴이 1813년에 발표한 소설이고, <작은 아씨들>은 미국에서 루이자 메이올컷이 1868년에 발표한 소설 다. 55년의 차이는 있지만 동시대에 발표된 소설의 인물들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만과 편견>은 다섯 자매, <작은 아씨들>은 네 자매 정도의 차이랄까. 소설의 주인공이 둘째라는 점도 자존심 강한 성격이나 똑 부러지는 행동, 영리한 머리까지 닮아있다. 양쪽 집안의 맏언니인 제인과 메그도 막내인 리디아와 에이미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잘 구현해 냈다. 특히, 소설의 도입 부분부터 어쩌면 적날하기까지 한 베넷부인의 돈을 향한 솔직한 심경을 잘 드러냈다. 신선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 청년 이름이?"

"빙리요."

"결혼은 했답디까?"

"아유, 여보! 미혼이지요. 당연히! 미혼에다 1년 수입이 4~5천 파운드나 되는 재력가라잖아요. 우리 딸아이들한테 얼마나 잘된 일인지!"

"무슨 소리요? 그게 우리 애들하고 무슨 상관이기에?"

"아이참, 이 양반이 진짜 속 터지게! 그 청년이야말로 딱 우리 사윗감이라는 걸 알면서 이러시네."

"그럴 속셈으로 이 동네에 이사를 온다는 거요?"

"속셈이라니! 말도 안 돼,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하지만 빙리 씨가 우리 딸 중 하나한테 푹 빠질 가망이 꽤 높잖아요. 그러니 그이가 이사를 오거든 당신이 곧장 가서 안면을 터요." (p10)


결국은 베넷부인의 뜻대로 빙리가 이 집안의 맏사위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재력가에 미혼이면 무조건 딸들 중 누군가와는 사랑에 빠질 거라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딸들의 미모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재력가에게 딸들을 시집보내고 싶어 했던 베넷 부인의 심경도 나름 이해가 간다. 당시 영국에는 한사상속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는 재산 상속 시 모든 재산을 장자에게 물려주며, 장자가 없을 때는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물려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딸들밖에 없었던 베넷부인 입장에서는 남편이 죽고 나면 모든 재산이 친척인 콜린스에게 간다는 사실이 늘 불안으로 따라다녔을 것이다.


다음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다아시가 자신의 오만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이다.


"당신한테 그런 인생철학은 필요하지 않을 텐데요. (중략) 난 평생 이기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 그랬어요. 어린 시절에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라 배웠지만 내 기질을 올바르게 고치라고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훌륭한 원칙들을 익혔지만 그것을 따를 때 오만과 자만을 삼가야 한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오랜 세월 외아들이었던 나를 부모님은 응석받이로 키우셨습니다. 좋은 분들이셨지만 (특히 선친께서는 정말 인정 많고 온후한 분이셨지요) 내가 이기적이고 건방지게 굴어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귀여워하셨어요. 부모님의 용인과 격려는 어린 내게 가르침에 가까웠습니다. 하여 난 오로지 우리 가문의 일원만 존중하고 나머지 세상 사람 모두를 업신여겼습니다. 나의 양식과 가치가 그들의 것보다 우월하다 여겼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지요. 여덟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겠지요. 사랑스러운, 사랑하는 엘리자베스! 당신은 내 은인이에요." (p557~558)


아, 이 얼마나 열렬한 사랑고백이며 통렬한 자기반성인가? 아마도 늘 자신감에 넘쳤던 다이시의 이런 고백에 엘리자베스는 마음을 더 빼앗겼을 것이다. 다아시의 말에서 부모님의 교육방식이 언급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교육에는 분명한 잣대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나라 말 중에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준다 라는 말이 있다. 실제 매를 친다는 의미보다는 자식의 훈육에 사정을 두지 말라는 뜻 일거다. 원칙을 지키고 오만과 편견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경계하고 지켜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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