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 해당 글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근거합니다.
학창 시절, 우리가 종 치기 직전에 제일 많이 했던 말.
“야, 다음 시간 뭐야?”
누구는 체육이라서 신나고, 누구는 수학이라서 한숨 쉬던 그 평범한 질문. 그렇지만, 이 질문을 가만히 뜯어보면 좀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다. 우리가 매일 보는 그 빽빽한 시간표가 사실은 지식들이 목숨 걸고 싸워서 살아남은 최종 생존자 명단이라는 것이다.
1. 시간표는 거대한 링이다
학교라는 링 위에서 지식들은 매번 데스 게임을 벌인다. 심판은 시대적 요구라는 녀석이다. 이 심판은 아주 냉정해서, 아무리 수천 년 동안 대접받던 지식이라도 “요즘 애들한테 쓸모없는데?” 싶으면 가차 없이 링 밖으로 던져버린다.
한때는 한시를 읊고 붓글씨를 쓰는 게 인싸의 필수 조건이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취업할 때 코딩 한 줄 더 아는 게 낫지, 공자님 말씀이 밥 먹여주냐?”
말 한마디에 고전들은 구석탱이 선택과목으로 밀려나 짐을 싸고 있다.
2. 들어오려는 자 vs 버티려는 자
새로 링 위에 올라오는 신입들도 만만치 않다. 코딩, 경제, 미디어 같은 애들이 “나 없으면 미래에 굶어 죽어!”라며 어깨를 들이 민다. 그럼 원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과목은 자리를 사수하느라 진땀을 뺀다.
우리가 배우는 과목들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누군가는 꼭 가르칠 내용이라고 우기고, 누군가는 그건 불필요하다고 소리치며 싸운 결과물이다. 결국 우리가 교과서를 펼치는 건, 그 치열한 난투극에서 살아남은 승자들의 얼굴을 구경하는 셈이다.
3. 유통기한 지난 지식을 배우고 있다면?
1. 자기주도적인 사람
2. 창의적인 사람
3. 교양있는 사람
4. 더불어 사는 사람
- 2022 개정 교육과정 인재상 -
교육과정은 개정을 거치면서 그 시대에 걸맞는 인재상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인재상에 맞게 필요한 역량을 설정하고, 그 역량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과목을 선택한다.
시대적 요구에 발 맞추는 교육과정이 저 먼 시대의 역사나 윤리, 고전을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인재가 되고, 해당 역량을 갖추기 위해 지난 세월 쌓아온 인문학적 지식이 아직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교 교육은 과거에서 쌓아올린 지식 및 지혜와 현대 사회의 지식과 기술이 조화되어 있다.
즉 대대로 중요했던 지식도, 현대 사회를 이끄는 지식도 같은 기준을 통과한 녀석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게 지금 애들한테 필요한 내용이야?”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켜온 교육 내용도, 아무리 한 시대를 이끌었던 기술이라고 해도 저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학교라는 링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다음 시간 뭐야?”
당신이 오늘 배울 그 과목은, 과연 내일의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녀석일까? 아니면 조만간 링 밖으로 퇴출당할 운명일까?
기본적으로 학교의 교과목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국영수사과와 음미체라는 준말이 생각날 것이다. 이는 보통 교과라고 명명하며 보통 교과란 학생들의 기본 학력 보장, 기초 소양 함양을 위해 선별된 과목이다.
보통교과의 종류
기초: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탐구: 사회 과목, 과학 과목
체육 및 예술: 체육, 음악, 미술
생활 및 교양: 기술, 가정, 제2외국어, 한문, 교양 등
각 교과를 영역별로 세분화해서 나누면 꽤나 길어지게 되고, 교육과정별로 명칭도 늘 변화하고는 하였으니, 이번에는 생략하도록 하자. 이번에 논의할 것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소제목에 맞추어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속 교과목이 어떻게 바뀌었고, 그 이유는 무엇임지 조명해보려고 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시기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1. 긴급조치시기(1945-1946)
2. 교수요목기(1946-1954)
3. 전면개정 시기(1954-2007)
- 1차 교육과정에서 7차 교육과정까지 분류 가능
4. 수시개정 시기(2007-)
- 2005 교육과정부터 실시, 현재 2022 교육과정
해당 시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1. 긴급조치시기
: 갑작스러운 광복으로 일제강점기의 교과를 우리말로 옮겨서 교육한 시기
2. 교수 요목기
: 미군정기 교육과정으로 실라버스(syllabus)라고도 한다.
- 현재의 교육과정은 교육 목표나 방법 그리고 교육 내용과 평가 방법 등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나, 이러한 실라버스는 어떤 과목을 몇 시간 가르칠지 기술한 강의 계획서 수준이었다. 초창기의 교육과정인데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교육 연구가 이루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전면개정 체제
: 교육과정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서 선보이는 체제로 1-7차 교육과정에 해당
4. 수시개정 체제
: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교육과정이 수시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판단, 이전 교육과정을 현 시대에 맞게 개정하여 발표. 이 시기부터는 2005개정처럼 연도를 붙여서 명칭을 붙임.
그렇다면 긴급조치시기부터 현대의 2022개정 교육과정까지 긴 시간동안 어떤 과목이 살아 남고, 어떤 과목이 도태되었을까?
우선 긴급조치시기는 갑작스러운 광복과 함께 국민성을 부활시키는 게 선수 업무였다. 긴 일제강점기로 인하여 조선어인 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황국신민 즉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어린 세대가 많았던 것이다.
1. 대한 독립 만세, 긴급조치시기의 상황
이때 일제강점기에 금지되었던 조선어 과목과 국사(한국사) 과목이 부활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슬프지만 국어를 조선어라고 불러야 오해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시기 국어는 일본어를 지칭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국어 과목은 조선어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조선을 강제 점령하며 조선총독부를 통해 교육 내용을 직접 관리하였다. 이 때 교육은 뛰어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충실한 황국 신민(준일본인)으로서 조선인을 개조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국어를 조선어 과목으로 명명하고 조금씩 학교에서 밀어낸 수준이었다면 1940년대에는 완전히 조선어 과목을 교육과정에서 삭제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1941년 초등, 1943년 중고등 교육에서 조선어를 삭제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더욱 암담한 것이 있다. 일제 강점기가 1910년부터 1940년대까지 넘어오면서 30년이 넘는 시간을 강제 점령당하면서, 젊은 세대는 이제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조선어 구사를 어려워하게 된 것이다.
이때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소설은 치숙(채만식)이 있는데 주인공인 어린 아이는 당고모부 아저씨를 어리석을 치, 아저씨 숙자를 써서 어리석은 아저씨로 인식한다. 앞길은 생각 안 하고 사회주의 사상만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은 퍽이나 똑똑해서 일본인 밑에서 일을 하며 내지(일본) 사람과 결혼하고 이름도 내지 사람처럼 바꾸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소설의 어린 아이를 우리는 매국노다. 오히려 네가 어리석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38년 당시 어린 아이는 조선이 주권을 빼앗겼을 때 태어나, 황국신민으로서 살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라는 민족성이 없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아이가 특히나 이기적이거나 못난 게 아니라 그 당시 어린 세대는 대개 그랬을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으로 갑작스럽게 독립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조선스러움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조선어와 한국사를 부활시키고, 이들의 명칭을 국어와 국사로 변경한 것은 단순한 교육 내용의 추가와 명칭 변경 이상의 감동이었다.
두 과목은 민족의 말과 얼(정신)을 새로운 세대에게 교육시켰고, 나라 잃은 민족에게 두 과목은 단순한 교육 내용과 과목을 넘어 독립의 상징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일제강점기 학교에서 교육된 수신 과목이다. 수신이란 명칭에 집중하면 기본 윤리를 배우는 과목이나, 일제강점기의 교육 내용을 보면 황국신민화를 위한 교과목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 수신 교과서의 1단원과 2단원 내용을 살펴보면, 단원명은 ‘우리나라1, 우리나라2’(일본)이고 교육 내용은 친황가를 소개하고 이에 충성하도록 세뇌한다.
천황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일본 신화 최고 신, 태양의 여신)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태양신의 손자)의 후손이다.
조선이 원해 합병하고 천황이 은혜를 베푸니 일본 제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
그렇기에 일제강점기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조선어와 한국사를 부활시킴과 동시에 수신 과목을 없앨 필요가 있었다. 단순 도덕 과목이 아니라 사상주입, 세뇌였다는 것이다.
2. 국가라는 이름의 강제, 3-4차 교육과정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와 300m 떨어진 종로구까지 침투하였다. 이 사건의 충격은 국가 보안, 국방에 대한 필요성을 불러 일으켰고 국가 주도 하에 교련 과목이 신설된 계기가 된다.
1. 교련 과목의 신설 및 교육 내용
보통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진 교련 교과는 국방과 우리의 책임이라는 정신 교육이 남녀 공통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남성은 제식과 더불어 실전 전쟁을 대비하는 과목을 배웠고 여성은 이를 보조하기 위한 구급법을 배웠다.
신설된 교련 과목은 누가 가르쳤는가? 교련 과목의 교사들은 사범대생이 아닌 예비역 중위-소령 출신 중에서 임용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이 맡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과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교련 과목은 일면 타당한 듯 보이나, 비판을 받는 지점도 많이 존재한다.
(1) 국방에 대한 교육을 넘어 군부 독재를 옹호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2) 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사람을 교사로 채용하였다.
사람마다 물론 다르겠지만, 몇몇 교련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군부를 옹호하는 사상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심각한 경우는 1960-1970년대 자행되던 군대의 부조리(폭력 등)를 그대로 학교에 이식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련은 필요에 의해 도입되었으나, 오히려 교육을 받는 국민에게 교육과 정부에 대해 반감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제5공화국(전두환 대통령)이 막을 내리며 1988년 폐지가 결정되고, 이후 점차 교육과정에서 밀려나다가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실시되며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수신 과목의 폐지와 조선어 한국사의 부활
교련의 신설과 폐지
이 두 가지 사례는 공통적으로 교육은 이를 받아들이는 학습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유지되지 못하며, 학교의 교육 내용은 당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반영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산물인가?
아니, 어쩌면 사회 상황과 요구를 정직하게 담아낸 정치적인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에 비판적으로 대답할 필요가 있다.
교과 목록과 내용은 성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제 문학 강독 노트도 읽으시는 분들은 기시감이 드실 겁니다. 저는 보통 글로서 소통을 하지 작가의 말을 남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말이 나왔다는 것은 뭔가 안내드릴 말씀이 있다는 것이죠...
네, 분량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학교의 수업 내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 기준에 따라 어떤 과목이 교육과정에서 선택되고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일반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해방 직후부터 최근까지의 내용을 모두 다루려다가 글이 무한정 길어지면 저도 밀도 있는 글을 쓰기 어렵고 독자 분들도 피로할 것 같아서 두 편에 나눠서 올리고자 합니다.
다음 편에는 비교적 최근을 다루고자 합니다. 기술과 과학의 발달 국민 정서의 현대화로 어떤 과목이 사라지고, 생기게 되었는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주관이 섞이겠지만, 자료에 근거해서 작성하기 위해 논문, 책, 관련 기사를 열심히 읽고 쓰고 있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