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관찰 노트 vol.2-2, 기술이 바꾸는 교육

컴퓨터와 AI가 학교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1. 콤퓨타? 그게 뭔데?

“콤퓨타? 그게 뭔데?”


“컴퓨터요.”


“아니, 그러니까 그 쇳덩이가 뭐 하는 물건이냐고.”


“그게… 엄청나게 빠른 계산기 같은 거라던데요.”


“주판 놔두고 뭐 하러? 손가락이 굳었드나?“


“그거보다 수만 배는 더 빠르대요. 앞으로 세상천지가 다 이걸로 돌아갈 거라나 봐요.”


“뭔 소리고. 타자기랑 주판이면 세상 돌아가는 데 지장 없다.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학교에서… 이제 이거 안 배우면 낙오자 된대요. 나라에서 시키는 거예요.”


“…학교에서? 나라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주판알 튕기는 소리보다 정교하고, 타자기의 반복적인 타건음보다 불안한 ‘미래'라는 이름의 공포가 안방까지 침투한 순간이었다.


예전 컴퓨터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모습

정보 컴퓨터 과목을 아는가? 몇몇 사람들에게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배운 것일 테고, 몇몇 사람에게는 컴퓨터실에서 몰래 게임을 하던 추억이 있는 과목일 것이다.


컴퓨터는 6차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재량 활동의 일환 및 고등학교의 실업 과목으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7차 교육과정 시기부터 ‘정보 사회와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컴퓨터 과목은 초등학교 실과, 중학교 기술가정의 일환으로 다루어지고, 고등학교에 이르러서도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으로 다룰 뿐이었다.


이 시기 컴퓨터 교육은 그리 전문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해당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전문성도 높지는 못했겠지만, 그것을 배우는 학습자의 컴퓨터 친화도가 몹시 낮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컴퓨터가 도입된 6차 교육과정 시기는 1992년으로 해당 시기의 컴퓨터 보급률은 매우 낮았다.

1991, 1992년의 가전제품 보급률(국가통계포털)

비율로만 따지자면 1992년 당시 컴퓨터는 5가구에 1대가 있을 정도로 생경한 물건이었으며, 이 물건이 자녀의 학습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로 확장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면 컴퓨터는 더 요상하고 어려운 물건이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배우는 사람에게도 고역이었던 컴퓨터 과목은 컴퓨터의 대체 불가능한 기술로의 발달과 보급률 상승에 따라 점차 전문적인 교과가 되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컴퓨터 교과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궤를 함께 한다. 당시 정부가 지식 기반 정보화 대국 정책을 추진하면서 인터넷PC 보급 사업을 실시하였다.


기존에는 천리안 등의 PC 통신(전화 회선으로 접속하는 정보 통신 서비스)가 주를 이뤘으나,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연결되는 인터넷 통신망을 가정마다 보급한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를 보급하기 위해 서민들을 위한 적금 상품을 출시하고, 적금 가입 후 초기 2회분을 납입하면 컴퓨터를 미리 보급해주는 등 혜택은 꽤나 파격적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과 더불어 인터넷 기술의 성장은 산업 사회 전반을 흔들어두었으며, 수기로 모든 일을 처리하던 아날로그 사회의 시대는 지고 디지털 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해당 시기를 3차 산업혁명으로 지칭하기도 하는데, 컴퓨터의 발달로 종이 문서화 되어 있던 정보가 데이터라는 개념으로 공유가 자유롭게 되고, 해당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게 되면서 컴퓨터는 삶 속 깊숙하게 자리하게 된다.


학교가 사회를 예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점차 중요성을 인정받은 컴퓨터 과목은 정보과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이름이 명명되었다.


학교에서 그 학문이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과목이 필수 과목인지, 일주일에 그 과목을 배우는 수업 시간(시수)은 몇 시간인지를 고려해보면 된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이미 정보 교과는 중학교는 필수, 고등학교는 정보, 인공지능 기초 두 과목 중 하나가 선택 과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래의 정보 교과는 어떻게 그리고 얼만큼 교육이 이루어질 것인가


정보 교과가 더욱 중요시 되고 그러다보니 교육의 시간을 더욱 할애해서 교육의 양을 늘릴 것은 자명해보인다. 그렇다면 교육 내용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데 영 재주가 없는 편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가장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면 역시 AI 기술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당 기술은 정보 교과 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의 영역을 잠식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생성형 AI가 세상에 이미 나와 있으며, 많은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AI는 많은 사회의 초년생이 해야 하는 역할인 정보 수합과 저장, 정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몇몇 산업에서는 신규를 채용하지 않는 등의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하였다.


감히 예측하건데 우리는 생성형 AI 기술에 무지한 상태로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손이 빚어내는 디테일의 미학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주판이 계산기에 밀려서 사라졌고, 타자기가 컴퓨터에 밀려서 사라지듯이, 끝내 인간의 손도 어느 정도는 대체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2. 그럼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지?

1900년대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 사회

많은 이들이 예측하듯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성형 AI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만의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 몇몇 이들은 인간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직업인 성직자나 교사, 상담사 등을 고르기도 하고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인을 고르기도 한다.


이런 예측은 누가 어느 지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므로 여기에서 더 논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미래 사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어떤 영역을 갈고 닦을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생성형 AI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생성형 AI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비유하자면 그것은 폐가식 도서관과도 같다. 폐가식 도서관이란 개가식 도서관과 달리 책이 공개되어 있지 않고 사서나 시스템에 해당 책을 문의했을 때 대여해주는 시스템을 갖춘 도서관이다.


이런 도서관의 특징은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제목을 보고 우연히 책을 빌려서 읽는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기본적으로 그 책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책이 이 도서관에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해당 정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도 이와 같다. AI는 대량의 정보를 모두 보유하고 있고, 이를 어떻게 연결해서 제공할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를 활용하는 인간이 어떤 질문을 해서 무슨 정보들을 어떻게 연결할지 제공해야만 해당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제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책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인간이 암기의 부담에서 일정 부분 자유로워진 것처럼 누르면 대답하는 편리한 도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제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가령 역사 과목에서 임오군란이 언제 벌어졌는가를 묻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가장 하급의 방법이라고 상정하자.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미래 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한 걸음 나아가 임오군란이 현대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일깨워주는지, 군사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군인에게 주어지는 봉급이 어떤 영향 관계를 도출해내는지를 질문하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그럼 이런 식견이나 사고 방식은 어떻게 익혀야 하는가? 의외로 그 대답은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찾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고 그 연결고리를 찾아 질문하는 능력은 다시 통합적인 사고로 돌아가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어느 정도 유명하지만 첨단 산업의 꽃인 실리콘밸리의 근무자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첨단 기술을 직접 교육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녀를 발도르프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에 재학시키며, 해당 학교는 인문학과 예술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개별성을 길러내는 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기술이 더욱 발달하고, 사용자 친화적이 됨에 따라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르치는 것은 점점 무의미해질 것이다.


chat gpt의 화면

생성형 AI는 대부분 비슷한 사용구조를 가진다. 대화창에 궁금한 것을 입력하고 전송한다. 그리고 답변을 확인한다.


이 간단한 과정을 굳이 배울 필요가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기술이 전해주는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거나 더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 유의미한 정보를 도출하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 그 자체의 사용 방법은 간단해지고, 우리가 배우고 지향해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찾게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학교 교육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그 미래가 너무 비관적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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