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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콩 Dec 14. 2021

희우 작가님께 쓰는 편지

10년간의 루푸스 신염 투병기 <당연한 하루는 없다>를 읽고


안녕하세요 희우 작가님,

새로 쓰신 신간 <당연한 하루는 없다>를 읽고 왔습니다.


사실은 서평을 쓰겠다고 한 것을 조금 후회하였음을 먼저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듣던 '루푸스', '신장 투석', '신장 이식'같은 것들을 직접 겪어내고 살아오신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먹먹하여 제 부족한 언어로 말을 보태기가 조심스럽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루푸스 신염을 앓으며 살아오신 상처 많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 책이 마치 제겐 편지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작가님과 저는 참 닮은 점이 많더군요. 어린 날에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아 스스로를 불태우며 꿈에 매달리는 모습. 그렇게 달리기만 하다가 결국 맞닥뜨린 병이라는 큰 벽에 괴로워하며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과거 나 자신을 원망하다가도 이내 다시 안아줄 수밖에 없는 마음. 그리고 끝내는 병이라는 녀석도 '나'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을 속으로 다독여야 했습니다.




류마티스 일기를 쓰며 독자님들이 제게 보내주시는 응원과 사랑은 늘 감사했지만 사실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아프면서 살다가 느낀 것을 적은 것뿐인데, 마치 자신의 일처럼 발 벗고 달려와 안아주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내 이야기가 그만한 가치가 있나?' 하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독자님들의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경쟁을 요구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정자가 앞다투어 난자를 향해 달려가고, 그중 선택된 정자 단 하나만이 수정되어 생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났더니 세상은 그보다 더 크고 끝이 없는 경쟁의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앞서 달려 나가기에도 부족한 이 시간에, 빠른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저 멀리 뒤처진 존재들의 말을 왜 우리는 귀 기울여 듣게 되는 것일까요? 왜 그들의 담담한 삶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 그냥 '공감'이라던가 '응원'이라던가 하는 단편적인 단어로 담을 수 없는 이 몽글몽글한 감정은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하나쯤 가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때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자신이 밉지만, 막상 다시 돌아가 그를 마주한다면 무거운 짐을 진 내 어린 모습이 안쓰러운 마음에 안아주고 싶을 겁니다. 


저는 작가님의 이야기 속에서 20대 초 병을 처음 진단받았던 날의 저를 보았어요. 늘 원망하고 미워하던 아이였는데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 아이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달려가서 안아주고 짐을 나누어 들어주고 싶어요. 그러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그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작가님에게 대신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요. 그래서 지켜보는 독자는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딛는 작가님이 무너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는 거예요. 작가님이 결국 행복해지면, 그러면 과거의 나도 조금은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이카루스 같은 사람들인가 봅니다. 하늘 높이 나는 것을 좋아하여 태양 가까이 다가갔다가 밀랍 날개를 잃고 추락한 이카루스요. 재능도 있고 욕심도 많아, 병이 아니었다면 세상을 자유롭게 높이 날아다니며 결국은 태양을 닮으려 했을 거예요. 

하지만 결국 사람은 태양이 될 수 없기에, 날개를 잃고 떨어져 넘치던 재능과 용기는 빛이 바래 버렸지만, 이카루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라는 겁니다.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지 못한 응원과 위로를 서로에게 대신 건네며, 날개가 없으면 두 다리로 함께 의지하며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겠죠. 그렇게 우리는 작가님의 말처럼 '많이 울고 다시 일어나 천천히라도 줄곧 걸어' 날개는 없을지언정 '새로운 생으로 스스로를 이끌어' 걸어갈 겁니다.







'나는 너무 어렸고 달리는 법만 알았다. 몸이 괜찮은 선에서 최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싶었다. 그저 쉬라는, 툭 놓아버리라는 몸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공부하는 만큼 헬스장과 요가원에 꾸역꾸역 다니고 있으니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몸이 원한 건 공부든, 운동이든 힘을 빼라는 것이었을 텐데. 다시 돌아간다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 66p



'아파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데도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여전히 억울하고 서럽다. 그래도 한수희 작가가《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말하듯이, "나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애쓸 일은 없"으니까. 완벽 아니면 포기를 외치는 내게 열심히 할 수 없는 것은 몹시 비통한 일이지만,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대충 살자 다짐한다.' - 85p 



'만일 또다시 아픈 운명이 찾아온대도,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울면서 씩씩하게 어두운 터널을 뚜벅뚜벅 걷는 사람일 테니까. 그리고 틀림없이, 그때에도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줄 테니까. 내가 지나온 역사가 내게 그런 확신을 준다. 나의 서러운 울음은 이제 멎었다.'








저자 소개


희우

 울면서도 뚜벅뚜벅 어두운 터널을 걷는 사람. 전교 1등, 고등학교 최초 여성 학생회장, 서울대 합격까지. 오버 스펙으로만 살다가 열여덟에 희소 난치병 루푸스 신염을 만났다. 자신을 공격하는 면역계를 달래기 위해 열심히 살지 않으려 애쓴다. 아픈 몸과 그럼에도 성장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훌륭한 중재자가 되는 것이 단 하나의 소망. 악착같이 오늘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취미이다. 

스물일곱, 결국 양쪽 신장 모두 기능이 소실되어 복막 투석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병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며 몹시 외로웠기에 진한 고백을 여기 적어두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마음은 몹시 귀해서, 외로운 누군가의 곁에 자신의 울음이 조용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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